위치확인
위치확인
.
[강의] 베버와 마르크스의 경제사 ― 믿는 자와 만드는 자
📑 개요
| 소개 | 카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 이름만으로도 벌써 유물론과 관념론을 대표하는 두 사상가의 대결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자본』과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의 제목만으로도 대립점이 드러나는 듯하다.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논의만 보아도 두 사상가의 이론체계는 강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 같다. 자본의 본원적 축적 과정에서 나타나는 생산자와 생산수단의 분리를 강조하는 마르크스의 주장과, 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선택적 친화성을 강조하는 베버의 입장은 각각 사회적 관계와 정신세계를 강조하고 있다는 데서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많은 연구들이 베버와 마르크스를 대비시켜 파악하고자 한다. 하지만 실제 베버는 그 자신이 ‘자본주의 정신’을 다룬다고 하여 반(反)마르크스(주의)적 혹은 반(反)유물론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니체와 함께 마르크스를 사상의 거장이라 높게 평가하기까지 했다. 전성우 등의 연구자들은 베버가 평생에 걸쳐 마르크스와 ‘생산적’인 대화를 통해 자신의 학술세계를 건설해나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베버와 마르크스를 대립시키고, 다른 한쪽에서는 베버와 마르크스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대립적인 연구 경향이 이어져 왔다. 어느 쪽이 옳은 걸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베버와 마르크스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여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접합될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대립하게 되는지를 다뤄야 한다. 기존의 연구사에서 아쉬웠던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마르크스와 베버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구성하여 어디에, 어떻게 접합시킬지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렇다 보니 연구자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베버와 마르크스를 자의적으로 접합시키거나 혹은 대립시키는 방식의 연구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이론사회학 연구자인 김덕영이 ‘베버의 마르크스화’라고 지칭하는 현상, 즉 베버 본래의 문제의식 혹은 당대의 역사적 맥락이 지워지는 일이 발생하거나 반대로 베버를 마르크스가 지닌 한계를 ‘극복’한 사상가로 해석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두 사상가의 생산적인 대화를 넘어 이론체계 사이의 교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각자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해 어느 지점에서, 어떤 논리적 한계 하에 접합될 수 있는지를 다뤄야 한다. 이 강좌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이론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한 『자본 이전의 세계』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베버의 이론과의 접합 가능성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예컨대 1강에서는 자본의 성립조건에 관한 마르크스의 논의를 전제로 하여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의 관계를 논해보고자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출현 조건을 다음과 같이 다루고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살아 있는 노동의 소유자가 자신의 ‘생존수단, 생활수단, 자기 보존 수단과 같은 살아 있는 노동의 조건들’과도 분리되어 노동능력만을 지닌 ‘단순히 주체적인 실존’으로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생산자가 ‘노동력 상품’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생산수단의 유무로만 계급을 판단하는 흔한 오해와 달리 전근대적 생산자가 근대적 임노동자로 재편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뿐만 아니라 ‘생활수단’과도 분리되어야 한다. 2) 다른 한편에는 그렇게 분리된 ‘노동의 조건들’이 하나의 부(富)로서 축적되어 ‘충분히 많은 사용 가치들’의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 이렇게 분리된 노동력 상품과, 생산수단 및 생활수단 등을 포함하는 ‘노동의 조건들’이 3) ‘지배 예속 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시장에서 화폐를 매개로 자유롭게 교환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교환을 매개로 한 생산의 조직화는 4) ‘직접적인 향유 또는 사용 가치의 창출’이 아니라 ‘가치 창출, 자기 증식, 화폐 창출을 최종적인 목적’으로 해야 된다. 다시 말해서 자본축적의 지향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손민석, 『자본 이전의 세계』, 바오, 2025.) 요약하자면 1)과 3)의 조건이 결합해 생산자가 ‘자유로운 노동력 상품의 소유자’인 임노동자로 존재해야 하고, 2)와 4)가 결합해 생산수단이 자본축적의 지향성을 지닌 ‘자본’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 둘이 자본주의적 시장에서 만나 결합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행해진다. 즉, 기존의 연구사에서 오해하는 바와 같이 생산자와 생산수단의 분리 및 임노동의 사용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임노동의 사용이 자본축적의 지향성과 결합될 때 비로소 자본주의적 임노동이 된다. 이것은 일종의 동어반복이다. 자본주의적 임노동이란 자본주의에 포섭된 임노동을 의미한다. 이 동어반복에 핵심이 있다. 자본축적이라는 ‘지향’, 교환가치의 획득을 추구하는 무제한적인 자본의 욕동이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는가. 마르크스는 이것을 논리적인 차원에서 섬세하게 분석하기는 하지만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내지는 않는다. 마르크스의 『요강』을 읽었을 리가 없건만(『요강』은 1939~1941년 출간, 베버는 1920년 사망) 베버는 바로 이 지점을 치고 들어간다.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을 지닌 대가들이 여기서 마주친다. 베버는 마르크스가 다소 추상적으로 다룬 부분을 세밀하게 다루고자 한다. 도대체 그 기괴한 정신, 베버가 ‘자본주의 정신’이라 부르는 그 기괴하기 그지없는 정신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베버는 이윤을 추구하는 욕망 자체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고 파악한다. 자본의 욕동이 기괴한 건 이윤추구의 욕망이 합리적 조직화와 결합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베버의 역사관이 드러나는데, 그는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역사를 모순의 연속으로 본다.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기괴한 사념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전근대적인 이윤추구로는 부족하다.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에 적응하기 쉬운 중국, 인도 등의 아시아적 정신, 속물적이며 상인적인 아시아인들의 습속과 정신세계는 자본주의 정신을 산출하지 못한다. 반대로 이윤추구를 부정하는 정신세계, 이윤추구와는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종교적 윤리체계에서 자본주의 정신과 선택적 친화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본다. 자본주의 정신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신교 윤리라는 새로운 정신세계, 그것도 자본주의 정신과 가장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그런 정신세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 강좌에서는 사회적 관계를 다루었던 마르크스와 종교문화권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각 문화권에 조응하는 인간형의 차이를 다루었던 베버가 경제사를 매개로 어떻게 접합될 수 있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1강에서 자본주의 정신의 탄생에 관한 논의를 한다면, 2강에서는 자본주의 정신의 배경이 되는 중세 도시의 시민층의 형성에 관한 마르크스와 베버의 경제사를, 3강에서는 중세 도시를 낳은 고대 도시의 특질에 관한 두 사상가의 경제사를 다루고자 한다. 그런 다음에 4강에서는 지금까지 다룬 서구정신사의 특질을 중심으로 아시아, 특히 인도와 중국의 종교문화와의 비교를 수행해보고자 한다. 마르크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론과 베버의 『도교와 유교』의 관계를 다뤄보려 한다. 마지막 5강에서는 이러한 종교문화와 그에 따른 인간형의 차이가, 법문화와 같은 상부구조의 문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그 끝에 우리는 죽음을 마주한 인간 정신의 두 유형에 관한 논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이론이 주로 경제사적인 맥락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에 상부구조에 해당하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소략하기 그지없다. 특히 종교문화와 같은 문제를 깊이 다룬 저작을 찾아보기 어렵다. 베버의 종교사회학과 경제사 이론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르크스와 베버의 접합을 통해 한 사회의 토대에서부터 상부구조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 대한 총체적인 파악을 가능케 하는 이론체계의 형성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 강좌를 통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이론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 |
| 일정 | 2026년 1월 7일 ~2월 11일 (6주)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 10시 |
| 장소 | 필로버스 세미나실 + 온라인 Zoom (*온라인/오프라인 동시 진행, 녹화 영상 제공) |
| 강사 | 손민석 작가 겸 칼럼니스트. 매일노동뉴스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조선후기 농민의 토지소유구조 및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심이 있다. 현재는 마르크스주의 역사이론 및 근대사회 인식을 연구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소경영생산양식'론을 중심으로 전근대사를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지록위마의 시대』(얼룩소, 2024), 『우리는 왜 대통령만 바라보았는가』(마인드빌딩, 2025), 『자본 이전의 세계』(바오, 2025) 등이 있다. |
| 교재 | ◼ 손민석『자본 이전의 세계』(바오, 2025) ◼ 막스 베버『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길, 2010), 『일반 경제사』(부글북스, 2020), 『경제와 사회』(박영사, 2025) 등 |
수강료 | 일반회원 15만원 | 청년회원(35세 이하) 10만원 |
신청 | 우측 상단(모바일은 하단) [신청하기] 클릭 |
📅 세부 일정
| 1주차 (1/07) | Intro 마르크스와 베버, 사상의 두 거장: 만드는 자와 믿는 자 |
| 2회차 (1/14) | 자본주의 정신, 그 기괴한 세계의 탄생 |
| 3회차 (1/21) | 봉건제는 자본주의 탄생에 필연적인 조건인가: 중세의 도시론 |
| 4회차 (1/28) | 노예제는 서구 특유의 현상인가: 고대의 도시론 |
| 5회차 (2/04) | 아시아와 유럽, 그 정신의 대극점: 아시아적 생산양식론과 종교문화 |
6회차 (2/11) | 예언자와 법 공동체: 농경민과 유목민의 정신세계 |
※ 세부 일정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
.
[강의] 베버와 마르크스의 경제사 ― 믿는 자와 만드는 자
📑 개요
| 소개 | 카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 이름만으로도 벌써 유물론과 관념론을 대표하는 두 사상가의 대결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자본』과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의 제목만으로도 대립점이 드러나는 듯하다.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논의만 보아도 두 사상가의 이론체계는 강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 같다. 자본의 본원적 축적 과정에서 나타나는 생산자와 생산수단의 분리를 강조하는 마르크스의 주장과, 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선택적 친화성을 강조하는 베버의 입장은 각각 사회적 관계와 정신세계를 강조하고 있다는 데서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많은 연구들이 베버와 마르크스를 대비시켜 파악하고자 한다. 하지만 실제 베버는 그 자신이 ‘자본주의 정신’을 다룬다고 하여 반(反)마르크스(주의)적 혹은 반(反)유물론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니체와 함께 마르크스를 사상의 거장이라 높게 평가하기까지 했다. 전성우 등의 연구자들은 베버가 평생에 걸쳐 마르크스와 ‘생산적’인 대화를 통해 자신의 학술세계를 건설해나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베버와 마르크스를 대립시키고, 다른 한쪽에서는 베버와 마르크스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대립적인 연구 경향이 이어져 왔다. 어느 쪽이 옳은 걸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베버와 마르크스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여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접합될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대립하게 되는지를 다뤄야 한다. 기존의 연구사에서 아쉬웠던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마르크스와 베버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구성하여 어디에, 어떻게 접합시킬지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렇다 보니 연구자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베버와 마르크스를 자의적으로 접합시키거나 혹은 대립시키는 방식의 연구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이론사회학 연구자인 김덕영이 ‘베버의 마르크스화’라고 지칭하는 현상, 즉 베버 본래의 문제의식 혹은 당대의 역사적 맥락이 지워지는 일이 발생하거나 반대로 베버를 마르크스가 지닌 한계를 ‘극복’한 사상가로 해석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두 사상가의 생산적인 대화를 넘어 이론체계 사이의 교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각자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해 어느 지점에서, 어떤 논리적 한계 하에 접합될 수 있는지를 다뤄야 한다. 이 강좌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이론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한 『자본 이전의 세계』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베버의 이론과의 접합 가능성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예컨대 1강에서는 자본의 성립조건에 관한 마르크스의 논의를 전제로 하여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의 관계를 논해보고자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출현 조건을 다음과 같이 다루고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살아 있는 노동의 소유자가 자신의 ‘생존수단, 생활수단, 자기 보존 수단과 같은 살아 있는 노동의 조건들’과도 분리되어 노동능력만을 지닌 ‘단순히 주체적인 실존’으로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생산자가 ‘노동력 상품’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생산수단의 유무로만 계급을 판단하는 흔한 오해와 달리 전근대적 생산자가 근대적 임노동자로 재편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뿐만 아니라 ‘생활수단’과도 분리되어야 한다. 2) 다른 한편에는 그렇게 분리된 ‘노동의 조건들’이 하나의 부(富)로서 축적되어 ‘충분히 많은 사용 가치들’의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 이렇게 분리된 노동력 상품과, 생산수단 및 생활수단 등을 포함하는 ‘노동의 조건들’이 3) ‘지배 예속 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시장에서 화폐를 매개로 자유롭게 교환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교환을 매개로 한 생산의 조직화는 4) ‘직접적인 향유 또는 사용 가치의 창출’이 아니라 ‘가치 창출, 자기 증식, 화폐 창출을 최종적인 목적’으로 해야 된다. 다시 말해서 자본축적의 지향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손민석, 『자본 이전의 세계』, 바오, 2025.) 요약하자면 1)과 3)의 조건이 결합해 생산자가 ‘자유로운 노동력 상품의 소유자’인 임노동자로 존재해야 하고, 2)와 4)가 결합해 생산수단이 자본축적의 지향성을 지닌 ‘자본’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 둘이 자본주의적 시장에서 만나 결합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행해진다. 즉, 기존의 연구사에서 오해하는 바와 같이 생산자와 생산수단의 분리 및 임노동의 사용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임노동의 사용이 자본축적의 지향성과 결합될 때 비로소 자본주의적 임노동이 된다. 이것은 일종의 동어반복이다. 자본주의적 임노동이란 자본주의에 포섭된 임노동을 의미한다. 이 동어반복에 핵심이 있다. 자본축적이라는 ‘지향’, 교환가치의 획득을 추구하는 무제한적인 자본의 욕동이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는가. 마르크스는 이것을 논리적인 차원에서 섬세하게 분석하기는 하지만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내지는 않는다. 마르크스의 『요강』을 읽었을 리가 없건만(『요강』은 1939~1941년 출간, 베버는 1920년 사망) 베버는 바로 이 지점을 치고 들어간다.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을 지닌 대가들이 여기서 마주친다. 베버는 마르크스가 다소 추상적으로 다룬 부분을 세밀하게 다루고자 한다. 도대체 그 기괴한 정신, 베버가 ‘자본주의 정신’이라 부르는 그 기괴하기 그지없는 정신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베버는 이윤을 추구하는 욕망 자체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고 파악한다. 자본의 욕동이 기괴한 건 이윤추구의 욕망이 합리적 조직화와 결합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베버의 역사관이 드러나는데, 그는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역사를 모순의 연속으로 본다.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기괴한 사념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전근대적인 이윤추구로는 부족하다.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에 적응하기 쉬운 중국, 인도 등의 아시아적 정신, 속물적이며 상인적인 아시아인들의 습속과 정신세계는 자본주의 정신을 산출하지 못한다. 반대로 이윤추구를 부정하는 정신세계, 이윤추구와는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종교적 윤리체계에서 자본주의 정신과 선택적 친화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본다. 자본주의 정신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신교 윤리라는 새로운 정신세계, 그것도 자본주의 정신과 가장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그런 정신세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 강좌에서는 사회적 관계를 다루었던 마르크스와 종교문화권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각 문화권에 조응하는 인간형의 차이를 다루었던 베버가 경제사를 매개로 어떻게 접합될 수 있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1강에서 자본주의 정신의 탄생에 관한 논의를 한다면, 2강에서는 자본주의 정신의 배경이 되는 중세 도시의 시민층의 형성에 관한 마르크스와 베버의 경제사를, 3강에서는 중세 도시를 낳은 고대 도시의 특질에 관한 두 사상가의 경제사를 다루고자 한다. 그런 다음에 4강에서는 지금까지 다룬 서구정신사의 특질을 중심으로 아시아, 특히 인도와 중국의 종교문화와의 비교를 수행해보고자 한다. 마르크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론과 베버의 『도교와 유교』의 관계를 다뤄보려 한다. 마지막 5강에서는 이러한 종교문화와 그에 따른 인간형의 차이가, 법문화와 같은 상부구조의 문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그 끝에 우리는 죽음을 마주한 인간 정신의 두 유형에 관한 논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이론이 주로 경제사적인 맥락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에 상부구조에 해당하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소략하기 그지없다. 특히 종교문화와 같은 문제를 깊이 다룬 저작을 찾아보기 어렵다. 베버의 종교사회학과 경제사 이론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르크스와 베버의 접합을 통해 한 사회의 토대에서부터 상부구조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 대한 총체적인 파악을 가능케 하는 이론체계의 형성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 강좌를 통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이론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 |
| 일정 | 2026년 1월 7일 ~2월 11일 (6주)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 10시 |
| 장소 | 필로버스 세미나실 + 온라인 Zoom (*온라인/오프라인 동시 진행, 녹화 영상 제공) |
| 강사 | 손민석 작가 겸 칼럼니스트. 매일노동뉴스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조선후기 농민의 토지소유구조 및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심이 있다. 현재는 마르크스주의 역사이론 및 근대사회 인식을 연구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소경영생산양식'론을 중심으로 전근대사를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지록위마의 시대』(얼룩소, 2024), 『우리는 왜 대통령만 바라보았는가』(마인드빌딩, 2025), 『자본 이전의 세계』(바오, 2025) 등이 있다. |
| 교재 | ◼ 손민석『자본 이전의 세계』(바오, 2025) ◼ 막스 베버『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길, 2010), 『일반 경제사』(부글북스, 2020), 『경제와 사회』(박영사, 2025) 등 |
수강료 | 일반회원 15만원 | 청년회원(35세 이하) 10만원 |
신청 | 우측 상단(모바일은 하단) [신청하기] 클릭 |
📅 세부 일정
| 1주차 (1/07) | Intro 마르크스와 베버, 사상의 두 거장: 만드는 자와 믿는 자 |
| 2회차 (1/14) | 자본주의 정신, 그 기괴한 세계의 탄생 |
| 3회차 (1/21) | 봉건제는 자본주의 탄생에 필연적인 조건인가: 중세의 도시론 |
| 4회차 (1/28) | 노예제는 서구 특유의 현상인가: 고대의 도시론 |
| 5회차 (2/04) | 아시아와 유럽, 그 정신의 대극점: 아시아적 생산양식론과 종교문화 |
6회차 (2/11) | 예언자와 법 공동체: 농경민과 유목민의 정신세계 |
※ 세부 일정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
🔗 Related Article
상품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