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5강

권순모
20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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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1976년 2월 4일-‘전쟁’과 ‘정치’ 계보학의 영국 사례


2020.3.10. 윤세병


“홉스가 쫓아버렸던 것은 이런 영구적인 내전과 시민적 투쟁의 담론이었습니다. 모든 전쟁과 정복의 뒤에 계약을 다시 놓고,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의 이론을 구해냈던 것입니다. 물론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의 이론을 구해냈던 것입니다. 물론 바로 그렇기에 법철학은 이에 대한 보상인 양 홉스에게 정치철학의 아버지라는 원로원적 칭호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국가의 심장부가 위협받을 때, 한 마리 거위가 잠자던 철학자들을 깨웠습니다.* 그게 바로 홉스였습니다.”(125쪽)


* 푸코가 홉스에게 ‘정치철학의 아버지라는 원로원적 칭호를 부여’라 표현한 대목은 흡사 로마의 원로원이 옥타비아누스에게 존엄자란 의미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 칭호를 부여한 것을 연상시킨다. 거위 이야기 역시 로마와 연결된다. 갈리아인(켈트족)의 침입으로 카피톨리누스(Capitolinus, 캄피돌리오) 언덕에 피신해 있던 로마 군인들이 잠든 사이 심야의 기습 공격을 받자 Juno(그리스 신화의 Hera) 여신의 신전에서 기르던 신성한 거위 떼의 울음소리에 의해 로마 군인들이 잠을 깨 갈리아인을 물리쳤다는 이야기이다. 홉스가 ‘신성한 파수꾼’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푸코는 홉스가 4강에서 언급했던 ‘로마적 역사’의 수호자, 즉 혁명적 담론을 가로막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반유대주의에 관한 대답



“한 사회 안에 존재하는 두 인종들 간의 전쟁관계로서의 권력관계에 관한 이런 정치적 분석은 …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실제로 정식화했고 정식화되고 있었죠.”(112쪽)



“종교적 유형의 오래된 반유대주의는 19세기에서야 국가인종주의가 구성됐던 바로 이 시기부터, 국가인종주의 속에서 재활용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국가는 국가에 침투해 자신의 몸에 유해한 요소를 도입하는 인종 또는 인종들에 맞서, 그리고 정치적인 동시에 생물학적인 이유에서 결국 내몰아야만 하는 인종 또는 인종들에 맞서, 인종의 완전성과 순수성을 확보하는 것으로서 나타나고 기능하고 (그렇게) 자처했습니다.”(112~113쪽)



토머스 홉스에게서의 전쟁과 주권

“토머스 홉스는 얼핏 보기에 전쟁관계를 권력관계의 기초와 원리로 파악했던 인물처럼 보입니다. …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 그것입니다.”(113~114쪽)

“주권은 근본적인 의지의 형태에서 출발해 구성됩니다. 그 형태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의지는 공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 주권은 언제나 아래로부터, 공포를 지닌 사람들의 의지에 의해 형성됩니다. … 동의이건 전투이건 부모-자식의 관계이건, 우리는 동일한 계열을, 즉 의지․공포․주권이라는 계열(조합)을 발견합니다. … 결국 홉스는 전쟁과 정치권력의 관계를 다룬 이론가이기는커녕, 역사적 현실로서의 전쟁을 배제하고 싶어 했으며, 주권의 발생으로부터 전쟁을 배제하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 홉스의 담론은 전쟁에 대한 일종의 ‘부정’입니다.”(122~123쪽)

“홉스가 논박이 아니라 제거하고 불가능하게 만들고 싶었던 이 전략적 맞수는 정치투쟁 안에서 역사적 앎을 기능하게 만드는 어떤 방식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리바이어던의 전략적 맞수는 동시대의 투쟁에서 이뤄지던, 어떤 역사적 앎의 정치적 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마디로 말하면, 홉스가 제거하고 싶었던 것은 정복, 또는 역사적 담론과 정치적 실천에서 이뤄지던 이 정복이라는 문제의 활용이었습니다. 리바이어던의 보이지 않는 적수는 바로 정복입니다.”(124쪽)



잉글랜드의 왕당파, 의회파, 수평파에게서의 정복 담론

“홉스가 대결한 적의 담론은 당시의 잉글랜드에서 국가를 분열시킨 시민적 투쟁 속에서 들려오던 담론입니다.(125쪽)

“첫째로 한편으로는 절대 군주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귀족에 맞서는 부르주아지의 정치투쟁이 일찌감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이것과 연결된 또 다른 현상으로 정복에 의한 오래된 분열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식이 몇 세기 전부터 아주 생생하게 대다수 민중에게 파고 들었습니다.”(126쪽)

“잉글랜드에서 정복의 현존과 효과를 특징지은 것은 반란들의 역사적 기억입니다. 이 반란들 각각은 아주 명확한 정치적 효과를 갖고 있었죠. … 의심할 바 없이 인종적 성격을 띠었습니다. … 거대한 사회적 대립을 한 인종(민족)의 다른 인종(민족)에 대한 정복과 지배의 역사적 형태로 코드화하는 것을 허용하는 일련의 요소가 있었던 것이죠. …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한편으로는 부르주아지와 다른 한편으로는 귀족·군주 사이에서 투쟁의 새로운 정치적 형태가 나타났을 때에도, 여전히 인종투쟁의 어휘로 표현되었습니다.”(128~129쪽)

“여러분은 인종 이론, 혹은 인종의 테마를 절대주의 왕정의 입장들 속에서는 물론이고 의회파 혹은 의회주의자들 속에서도, 수평파나 개척파의 훨씬 극단적인 입장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130쪽)



이항도식과 정치적 역사주의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법률,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주권 형태,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권력 유형이 자연법과 주권의 구성이라는 용어로 분석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편의 다른 한편에 대한 지배관계의 무한정한, 그리고 무한정하게 역사적인 운동으로서 분석되어야만 한다는 관념이 여기서 처음으로 정식화됐습니다.

제가 인종전쟁을 둘러싼 잉글랜드의 담론을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여기서 처음으로 하나의 이항 도식이, 어떤 이항 도식이 정치적 양식과 역사적 양식 위에서, 정치 행동의 프로그램이자 역사적 앎의 탐구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143쪽)

정치적 역사주의 “권력 관계에 관련되자마자 사람들은 사법 속에 있는 것도, 주권 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지배 속에 있으며, 역사적으로 비한정적이고 비한정적으로 두껍고 다수인 지배관계 속에 있다. 사람들은 지배에서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며, 따라서 역사로부터 나가지도 않는다.”


홉스가 제거하고 싶었던 것

정치적 역사주의=‘홉스의 가장 거대한 적수’

“반란의 논리적·역사적 필연성은 전쟁이 사회적 관계들의 영구적인 특질이며, 권력 제도와 권력 체계의 씨실이자 비밀이라고 폭로하는 모든 역사 분석의 내부에 기입됐습니다.”(144쪽)

“홉스의 작업은 정치적 역사주의 담론을 침묵시키기 위해 철학적-역사적 담론의 모든 가능성, 가장 극단적인 가능성조차도 (무기로) 동원하는 것이었습니다.”(145쪽)



정치적 역사주의의 두 가지 장애물

- 17세기의 철학적-법학적 담론

- 19세기의 변증법적 유물론

“변증법은 역사를 통해 보편적 주체의 구성, 화해된 진실의 구성, 모든 특수성이 마침내 그 질서정연한 자리를 갖게 될 법의 구성을 보증합니다. 헤겔의 변증법과 이것에 뒤따른 모든 변증법은 사회적 전쟁의 확인서인 동시에 선언이자 실천이기도 했던 이 역사적-정치적 담론에 대한, 철학과 법학에 의한 식민지화와 권위주의적 평정이었다고 이해해야”(3강, 80~81쪽)

“스스로를 계급투쟁으로 정의하기 위해 모든 인종 갈등의 흔적들을 지워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3강, 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