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안티 오이디푸스] 2장 6절

권순모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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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이디푸스 세미나 2020.2.28./김정인】

2장 정신분석과 가족주의-성가족(聖家族)



6. 세 종합의 요약



오이디푸스 우언집

-니체는 아버지의 죽음, 신의 죽음을 둘러싼 담론에 종지부를 찍고자 함[∵신과 아버지의 생사와 관계없이 그들의 이름으로 의식적 무의식적 억압이 계속 되고 있음] “중요한 것은 신이 죽었다는 소식이 아니라 소식이 결실을 맺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 신의 죽음이 의식에 도달하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는 것은 ① 그것이 무의식에 전혀 중요하지 않고 ② 어떠한 중대한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음을 뜻함.

→ 신이나 아버지는 한 번도 실존한 적이 없음!

- 신과 아버지의 생과 사는 단지 믿음의 문제이고 사람들은 믿음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음. 죽은 아버지에 대한 알림은 최후의 믿음, 즉 <무신앙/무신론의 미덕에 대한 믿음>을 구성, 니체 曰, <이 폭력은 언제나 믿음, 지지물, 구조 …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즉 오이디푸스-구조의 필요를.



오이디푸스와 “믿음”

- 정신분석가는 ① 신화, 오이디푸스, 거세를 믿는다는 비난에 대해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믿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무의식 자체가 그것들을 믿는지 여부다”라고 답함.[→ 무의식에 믿음을 주입], ② 아버지의 문제=신의 문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세계의 연관이 끊겼다고 상정, 인간은 자연과 인간 외부에 있는 어떤 것에 의해 인간으로 생산되어야 한다고 가정함.

- 무의식 : ①생산의 순환 형식 속에 있는 생산과 재생산의 유일한 주체!

cf. 기관화된 신체는 생식을 통한 재생산의 대상이지 주체가 아님. 생식에 봉사하는 수단이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무의식의 자동-생산으로서의 섹슈얼리티에 봉사하는 것이 신체의 생식임.

② 예로부터 자기 안에서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고아!, 자연과 인간, 세계와 인간의 동일성 속에서 스스로 출생.

∴ 아버지/신을 긍정하던 부정하던 살리던 죽이던 동일한 것 : 무의식의 본성에 대한 하나의 동일한 오해

- 정신분석가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인간을 생각하는데 오이디푸스가 이런 식으로 인간을 생산하고 거짓된 무한한 진행 혹은 퇴행 운동에 구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함. “고락을 함께 하며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오이디푸스”(오이디푸스 우언집) → 오이디푸스 제국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사회적・경찰적 억압에 맡겨져야 하는 위험한 일탈자, 극좌파다!

-정신분석가의 부류 ① 사제-정신분석가, 존재의 치유 불가능한 불충분함을 노래하는 독실한 정신분석가. “오이디푸스는 우리의 비참함이지만 또한 우리의 위대함이기도 하다.” ② 테크노-정신분석가, 삼각형에 사로잡힌 수정주의자, 동일성, 조울증, 무한한 진행 하의 자유를 오이디푸스에 기입 “오이디푸스의 기본 구조는 아이가 부모와 함께 갖는 모든 삼각형적 경험으로 시간상으로 일반화되어야 할 뿐 아니라, 부모-아이 관계 외의 다른 삼각형 관계들로 공간상으로 일반화되어야 한다.”



의미, 그것은 사용이다

-무의식은 의미가 아닌 오직 “사용” 문제만 제기, 욕망의 문제는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가 아니라 <그것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임.

-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라는 물음이 붕괴하면서 욕망이 등장함. : 언어학자와 논리학자가 ‘의미’를 버린 한에서 언어 문제가 제기될 수 있었음. 언어의 최고 역량은 작품을 일정한 사용의 관할에 속하는, 일정한 효과를 생산하는 기계로 간주할 때 발견되었음.

-“의미란 사용에 다름 아니다”가 원리가 되기 위한 전제 : 비합법적 사용[사용을 가정된 의미로 돌려보내고 일종의 초월성을 복원]에 대비해 합법적 사용을 규정할 수 있는 내재적 기준을 가져야 함.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의 초월적 실행에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초험적 분석이 바로 내재하는 기준들의 규정임.

-분열-분석은 초험적인 동시에 유물론적인 분석으로 오이디푸스 비판을 이끌고, 오이디푸스를 자기-비판에까지 이끈다는 의미에서 비판적

: 형이상학적 무의식 대 초험적 무의식/이데올로기적 무의식 대 질료적 무의식/오이디푸스적 무의식 대 분열증적 무의식/상상적 무의식 대 비구상적 무의식/상징적 무의식 대 실재적 무의식/구조적 무의식 대 기계적 무의식/몰적 내지 군집적 무의식 대 분자적・미시심리적・미시논리학적 무의식/표현적 무의식 대 생산적 무의식 :을 탐구.



욕망하는 생산의 내재적 기준

-정신분석의 이론적・실천적 거짓추리

① 연결 종합의 부분적・비종별적 사용은 오이디푸스적・총괄적・종별적 사용에 대립

- 총괄적・ 종별적 사용에는 ⅰ)두 국면-a.부모 국면과 b.혼인 국면-이 있고, a.오이디푸스 삼각형 형식과 b.오이디푸스 삼각형 형식의 재생산이 두 국면에 대응 ⅱ) 거짓추리로서의 외삽에 의지 : 오이디푸스의 형식적 원인을 구성, 그것의 비합법성이 조작/연산 전체를 짓눌렀음. 즉, 사슬 전체가 그것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는 전제군주 기표로서의 초월적 완전 대상을 추출해서, 욕망의 매 위치마다 결핍을 할당하고, 욕망을 법에 용접하고 박리라는 가상을 발생시키는 것.

② 분리선택적 종합의 포함적・비제한적 사용은 오이디푸스적・배타적・제한적 사용과 대립

- 제한적 사용은 ⅰ) a. 상상적 극과 b. 상징적 극을 가짐(∵오이디푸스에 의해 상관적으로 규정된 배타적인 상징적 분화와 미분화된 상상계 중 택일해야 함). ⅱ) 거짓추리로서의 이중 구속[이중의 막다른 골목, 이중으로 잡기]이라는 오이디푸스의 일처리 방식[과정을 중단, 공전]을 보여줌.

③ 접합 종합의 유목적・다의적 사용은 분리차별적・일대일대응적 사용에 대립

- 비합법적인 일대일대응 사용은 ⅰ) a. 분리차별을 통해 오이디푸스에 의해 언제나 전제되는 정의역[인종주의적・ 민족주의적・종교적...계기]과 b. 사상(寫像)을 통해 공역을 구성하는 가족적 계기가 있음. ⅱ) 거짓추리로서의 사상 : : 사회적 장의 규정과 가족 규정 사이에 일대일대응 관계를 설립하고, 그렇게 리비도 투자의 회전사영-영원한 아빠-엄마로의 사영-을 가능하고 불가피하게 만들어서 오이디푸스화 조건을 고착시킴.



욕망은 법, 결핍, 기표를 모른다.

- 욕망에 대한 세 가지 오류 : 결핍, 법, 기표→하나의 동일한 오류, 즉 독실한 무의식관을 형성하는 관념론으로 결핍은 존재의 불충분성, 법은 죄의식, 기표는 의미작용이라는 신학적 수행원들을 달고 다님.

- 구조주의 해석은 모든 믿음/신앙에 이의를 제기, 이미지들 위로 올라가고, 아버지와 어머니 기능만 남겨 두고, 금지와 위반을 구조의 연산자로 정의함. but 종교성 탈피는 쉽지 않고 무신앙으로서의 과학적 인식이 바로 믿음/신앙의 마지막 피난처임!

- 욕망에 결핍이 다시 도입되자마자, 욕망적 생산은 으깨지고 환상의 생산에 불과한 것이 됨. but [욕망의] 기호는 환상을 생산하지 않으며 실재의 생산이며 현실 속 욕망의 위치임.

- 욕망을 법에 다시 땜질하자마자 실제로 억압의 영원한 연산이 시작됨. but 욕망의 기호는 법이 아니라 역량의 기호임.

- 욕망을 기표에 종속시키자마자 욕망에는 다시, 거세라는 결과를 낳는 전제군주제의 멍에가 씌워짐. but 욕망의 기호는 결코 의미작용적이지 않고 거세라는 단일한 특질 속에서 의미화되지 않은 수많은 생산적 흐름-절단 속에 있음. 언제나 여러 차원의 기호-점, 점기호학의 기반으로서의 다의성임.



<당신은 햄릿으로 태어났나…?>

-정신분석 외에도 무의식을 오이디푸스화하고 죄의식을 느끼게 하고 거세하는 다른 힘들이 있음. but 정신분석은 이 운동을 뒷받침하고 최후의 사제를 발명함.

-a. 오이디푸스적 분석은 무의식의 모든 종합에 변환conversion을 보증하는 초월적 사용을 강제함. b. 분열-분석은 이 변환의 반대 방향으로의 전환reversion임. 무의식의 종합을 내재적 사용으로 되돌리는 것. 탈-오이디푸스화하고 아버지-어머니의 거미줄을 풀고 믿음을 풀어헤쳐 욕망 기계의 생산에, 그리고 전투적 분석이 행해지는 경제적・사회적 투자에 도달하는 것.

- “당신은 햄릿으로 태어났나? 오히려 당신 안에 햄릿을 태어나게 하지 않았나? 왜 신화로 돌아가는가?”→ⅰ) 신화를 포기함으로써 정신분석 안에 얼마간의 기쁨, 얼마간의 발견을 다시 넣은 것이 문제임. 미리 만들어 놓은 까닭에 정신분석은 매우 음울하고 슬프고 끝없는 것이 됨. ⅱ) 분열자의 슬픔은 사방에서 그를 옥죄는 오이디푸스화와 햄릿화의 힘들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데서 오는 것임. 작은 기쁨은 차라리 기관없는 신체 위로 달아나서, 그것 안에 틀어박히고 그것을 다시 닫아 버리는 것, 즉 과정으로서의 분열증화이지 임상 존재로서의 분열자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