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존재와 시간] 6절-8절

권순모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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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이기상 옮김, 까치, 1998.
Heidegger, Martin, Sein und Zeit, Tubingen: Max Niemeyer Verlag,1977.
발제: 김쫑 (1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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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의 설명 The Exposition der Frage nach dem Sinn von Sein


제2장 존재물음의 정리작업에서의 이중적 과제, 탐구의 방법과 개요


제6절 존재론의 역사를 해체해야 하는 과제 §6, Die Aufgabe einer Destruktion der Geschichte der Ontologie


현존재의 존재는 자신의 의미를 시간성에서 발견한다. 동시에 이는 현존재 역사성의 가능조건이다. 역사상이란 현존재 그 자체가 일어나는 ‘생기Geschehen (--> 미주 참조)’의 존재구성틀을 의미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세계사 같은 어떤 것이 가능해져 역사적으로 세계사에 속하게 된다. 현존재는 그렇게 ‘무엇으로 존재해온’ 존재 속에, 자신의 과거로서 존재하고 있다. 이는 현존재 자신의 미래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는’, 그의 존재 방식에서 자신의 과거이다. 그 자신의 고유한 과거는 현존재를 뒤따르지 않고 그를 앞서간다. 이러한 기초적인 역사성이 현존재 자신에게는 은닉된 채로 남아 있을 수 있고, 일정한 방식으로 발견될 수 있고, 나름대로 보호받을 수 있다. (38) 은닉된 채 남아 있다는 것은 역사학적 물음과 발견의 가능성이 거부돼 있는 셈이지만 그렇다고 현존재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결손적인 양태로서 현존재의 역사성에 대한 증명이다. 한 시대는 오직 그것이 ‘역사적’이기 때문에 비역사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존재물음의 정리작업은 역사적인 것으로서의 물음 자체의 가장 고유한 존재의미에서부터, 그 자신의 고유한 역사를 캐묻기 위한, 다시 말해 역사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 스스로 자신을 역사학적인 물음으로 이해하게끔 인도된다.(39)


하지만 전통은 그에게서 자주적인 처신, 물음과 선택을 뺏는다. 전통은 물려받은 것을 자명성에 맡기며, 거기에서부터 오는 전수된 범주들과 개념들이 부분적으로는 진정한 방식으로 길어내어지고 있는 그 근원적인 ‘원천들’로의 통로를 막는다. 전통은 심지어 그 유래 자체를 망각하게끔 만든다. 그럴 경우 현존재는 그 모든 역사학적인 관심과 그 모든 문헌학적을 사실적인 해석에 대한 열중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생산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게 한다.(40) 존재물음 자체를 위해서 그 물음의 고유한 역사에 대한 투명성이 획득되어야 한다면, 이 경우 경직화되어버린 전통을 느슨하게 풀고 전통에 의해서 시간화된 은폐들을 풀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해체는 존재론적인 전통을 떨쳐 버린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해체는 과거를 무Nichtigkeit  속에 파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전통을 그것의 긍정적인 가능성으로 그것의 한계를 표시하는 것이다.(41)


해체의 긍정적인 경향에 맞추어 제기돼야 할 물음은, 과연 존재론의 역사의 흐름에서 존재의 해석이 시간의 현상과 주체적으로 합쳐질 수 있었는가, 필연적인 ‘존재시성’의 문제틀이 원칙적으로 부각되었는지, 부각될 수 있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 자체 물음으로 처음 밀고 간 사람은 유일한 칸트이다.(42) 존재시성이라는 문제틀을 실마리로 삼아 해체의 과제를 수행하는 가운데, 칸트가 왜 존재시성의 문제틀에 대한 통찰을 얻는 데 실패했는지를 보면 첫째, 존재물음 일반의 소홀, 그것과 연관된 현존재에 대한 존재론의 결여, 둘째, 시간에 대한 그의 분석은 그 현상을 주체에 되돌려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수된 통속적인 시간이해에 방향을 잡고 있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칸트가 ‘초월론적인 시간규정’의 현상을 그것의 고유한 구조와 기능에 있어 산출하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존재 존재론의 소홀 때문이다. 이는 데카르트의 존재론적 입장을 넘겨받은 것인데, cogito sum, 즉 나는 사유한다, 나는 존재한다..에서 레스 코기탄스res cogitans, 즉 사유하는 사물의 존재 양식, 더 정확히 말해서 ‘나는 존재한다’의 존재의미인 것이다. (43) 데카르트는 cogito라는 절대적인 ‘확실존재’ 때문에 이 존재자의 존재의미에 대한 물음에 면제되었고, 또한 존재론도 두 번째 단계로 소급해 갔을 때에야 채워지기 때문에 존재물음 자체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데카르트는 자신의 <성찰>의 기초적 고찰을, 중세 존재론을 그가 흔들릴 수 없는 기초라고 설정한 그 존재자에게 옮겨 적용하는 방법을 끝까지 수행해 나간다. Res cogitans(사유하는 사물)는 존재론적을 ens(존재자)로 규정되는데, ens의 존재의미는 중세 존재론에게는 창조된 존재자를 ens로 보는 이해 속에 고정돼 있다. 신은 무한한 존재자로서 창조되지 않은 ens이다. 데카르트가 중세 스콜라 철학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44)


해체의 과제를 고대 존재론의 존재시성의 문제틀인 빛 속에서 해석해 보자. 플라톤에서 형성된 고대 존재론이 ‘대화술’이 되면서, 다시 말해 로고스의 해석학과 더불어, 존재물음은 더 근본적으로 파악할 수 가능성으로 보인다. 하지만, 존재를 '눈앞의 있음νοεῖν'으로 해석한 것은(파르메니데스에서..) 어떤 것을 순수하게 ‘현재화시킴’이라는 존재시적 구조를 만든 것이다. 그 안에서 자기를 내보이고 있는 존재자, 본래적인 존재자로 이해되는 그 존재자는 ,따라서, 그것의 해석을 지금 마주-대함에 대한 고려 속에서 얻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그 존재자는 현전성ουσια으로서 개념파악되어 온 것.(45) 그렇지만 이러한 그리스의 존재해석은 거기서 기능하는 실마리에 대한 아무런 뚜렷한 앎 없이, 시간에 대한 기초존재론적인 지식 또는 이해도 없이, 이러한 기능의 가능근거에 대한 통찰 없이 수행되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시간 자체가 여러 다른 존재자들들 가운데의 한 존재자로서 취해지고, 시간 자체를 그것에 드러나지 않게 소박하게 방향잡은 존재이해의 지평에서부터 그것의 존재구조에서 파악했다. 고대존재론은 곧 시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으로,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산출된 구조 안에서 움직이는 칸트의 시간파악으로 설명된다. (46)


제7절 탐구의 현상학적 방법 §7, Die phänomenologische Methods der Untersuchung


존재의 의미에 대한 주도적인 물음과 함께 탐구는 철학 자체의 기초적인 물음에 서게 된다. 현상학적인 것이 그것이다. 이 논구가 어떤 입각점을 서술해주는 것도, 어떤 방향을 지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현상학은 그것이 자기자신을 이해하고 있는 한, 그 둘의 어떤 것도 아니고 그 어떤 것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현상학이라는 표현은 일차적으로 일종의 방법개념이다. 그것은 철학적 탐구 대상들이 사태내용적으로 무엇인가가 아니라 오히려 철학적 탐구의 어떻게(방법)을 특징짓고 있다(47). 이는 ‘사태 자체로!’라고 정식화 될 수 있다. 우연성이 아닌 자명성을 고찰할 것이다. 현상학의 예비 개념으로 그 표현은 현상과 로고스라는 두 가지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48)


가. 현상의 개념 Der Begriff des Phänomens


현상은 ‘자신을 그 자체에 내보여주는 것’, ‘드러나는 것’(파이노메논)이다. 때때로 존재자(온타)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심지어 존재자가 그것이 그 자체에서 그것이 아닌 바로 그것으로서 자신을 내보여줄 있는 가능성도 성립한다. 이를 우리는 ‘가상’이라고 칭한다. 그리스어에서도 ‘파이노페논’은 ‘그렇게 보이는 것’, ‘겉보기의 것’, ‘가상’등의 의미를 지고 있다. 파이노메논(‘가상’)의 의미에 이미 근원적인 의미 ‘현상’이 두 번째 의를 기초짓는 것으로서 함께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현상’이라는 칭호를 용어상 파이노메논의 긍정적이고 근원적인 의미여 부여하고, 현상을 현상의 결여적 변양태인 가상으로서의 현상과 구별짓는다. (49) 순전히 나타남이라고 칭하는 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어떤 것의’ 나타남으로서의 나타남은 오히려 자신을 내보여준다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자신을 내보여주지 않고 있는 어떤 것이 자신을 내보여주고 있는 어떤 것을 통해서 자신을 알려온다는 것을 말한다. 비록 나타남이 현상의 이미에서 자신을 내보여줌이 아니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타남은 어떤 것이 자신을 내보여줌을 근거로 해서만 가능하다(50). 나타남이라는 표현 그 자체로 이중의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첫째, 자신을 ‘내보여주지 않음’인 자신을 알려옴의 의미에서의 나타남이 그것이고, 둘째, 알려고 있는 것 자체가 그것이다. (51) 자신을 내보여주는 것을 통해서 자기를 알려옴이라는 의미의 ’나타남’을 위해서 ‘현상’이 구성적인 한, 이 현상이 결여적으로 가상으로 변형될 수 있으며 그래서 나타남은 순전한 가상이 될 수 있다. 현상은 어떤 것을 만나는 탁월한 만남의 양식이다.(52)

나. 로고스의 개념 Der Begriff des Logos


로고스라는 개념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다의적이다. 로고스는 이성, 판단, 개념, 정의, 근거, 관계 등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말’이 어떻게 그런 식으로 변양되어 로고스가 모든 열거된 것을 의미하게 되며 그것도 학문적인 언어사용 내에서 그렇게 될 수 있는가. 로고스가 발언(판단)의 의미로 이해된다고 해도 얼핏 보기에 합당해 보이나 사실은 번역도 로고스의 기초적인 의미를 놓치고 있다. 오히려 로고스는 ‘말’로서 그 드러남을 향한다. 그러나 모든 ‘말’이 제시하며 보이게 해줌이라는 의미의 이러한 드러나게 함이라는 양태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청함도 드러나게 하고는 있지만 방식은 다르다. 구체적인 수행에서 말함(보이게 해줌)은 이야기함, 즉 낱말을 음성으로 발설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54).
그리고 로고스가 보이게 해줌이기에 로고스는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다. 여기서 모든 것은 ‘일치’라는 의미의 일종의 수정된 진리개념에서부터 해방되는 것에 달려 있다. 그것의 은폐되어 있음에서부터 끄집어내여 그것을 비은폐된 것이게 해줌, 즉 발견함이다. 같은 맥락에서 ‘거짓임’ 덮어 감춤이라는 의미로 속임을, 즉 어떤 것을 어떤 것 앞에 놓아서 그로써 그것을 그것이 아닌 그 어떤 것으로 내놓음을 말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의미가 있는 진리라고 일컬어도 안 된다.(55) 그리스어적 의미로 참은 아이스테시스, 감각적으로 인지, 받아들임의 뜻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로고스의 기능이 어떤 것을 단적으로 보이게 해줌에, 즉 존재자를 인지하게 함에 있기에 로고스를 ‘이성’의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

다. 현상학의 예비개념 Der Vorbegriff der Phänomenologie


현상과 로고스에 대한 해석에서 밖으로 끄집어 내면, 그것은 자신을 내보이고 있는 그것을, 그것이 자신을 그것 자체로부터 내보이고 있듯이 그렇게 그것 자체에서부터 보이게 해줌이라는 ‘현상학’이라는 형식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것은 앞에서 정형화시킨 준칙이었던 ‘사태 자체로!’가 표현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57). 현상학의 현상들 배후에는 본질적으로 다른 어떤 것도 서 있지는 않지만, 현상이 될 수 있는 그것이 은폐되어 있을 수는 있다. 그리고 현상들이 우선 대개 주어져 있지 않다는 바로 그 때문에 현상학이 필요한 것이다. 은닉되어 있음이 현상의 반대개념이다.(59) 그리고 현존재의 현상학은 낱말의 근원적인 의미에서 해석학인데, 그 의미에 따르면 그것은 해석의 업무를 지칭하고 있다.
철학의 근본주제로서의 존재는 어떤 한 존재자의 유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존재자에 다 상관된다. 보편성성은 존재와 존재구조는 모든 존재자를 넘어서 있으며 한 존재자가 가지는 존재하는 모든 가능한 규정성을 있다. (61) 존재는 단적으로 초월이다. 현존재의 초월은 그 안에 가장 근본적인 개별화의 가능성과 필연이 놓여 있는 한, 하나의 탁월한 초월이다. 존재를 초월로서 열어 밝히는 일은 모두 초월론적인 인식이다. 현상학적 진리는 초월론적 진리이다.(62)

제8절 논구의 개요 §8, Der Aufriss der Abhandlung


존재물음의 정리작업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의 과제로 갈라진다.


제1부: 현존재를 시간성으로 해석하고 시간을 존재에 대한 물음의 초월론적 지평으로 설명함
제2부: 존재론의 역사를 존재시성의 문제틀로 실마리로 삼아서 현상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의 근본특징들


상세하면,
제1부, 2부 각각 세 편으로 분류해서,
1부
1) 현존재에 대한 예비적 기초분석
2) 현존재와 시간성
3) 시간과 존재
2부
1) 도식론과 존재시성의 문제틀의 전단계로서의 시간에 대한 칸트의 학설
2) 데카르트의 cogito sum나는 사유한다, 나는 존재한다의 존재론적 기초와 사유하는 사물이라는 문제틀 안으로의 중세 존재론의 인수
3) 고대 존재론의 현상적 지반과 한계에 대한 판별체로서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에 대한 논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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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재의 움직임을 '생기Geschehen라고 하는데, 현존재의 이같은 생기구조가 역사성을 가능하게 한다고 함. 참고로 ‘언어’는, 인간이 자의로 처리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최고의 가능성을 좌우하는 '생기Ereignis'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기Ereignis란, 존재의 진리가 시원적으로 일어나서 존재 자체가 고유하게 경험되는 동시에, 이런 경험을 통해 인간의 본질도 진정으로 인간답게 고유해지는 그런 사건을 가리킨다. 존재사건이라 번역하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