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안티 오이디푸스] 2장 4절

권순모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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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개의 인문학’ 【『안티 오이디푸스』 세미나】
─ 작성자 : Hermes


4. 등록의 분리/선택적 종합
분리/선택적 종합의 두 가지 사용 : 배타적·제한적 사용, 포함적·비제한적 사용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등록의 분리 종합에 끼어들 때, 이상적인 어떤 사용, 즉 제한적·배타적 사용을 부과/강요, 삼각형화의 형식과 혼동.
─ 근친상간 금지의 분화 기능에서 “이것 아니면 저것”의 지배 : ‘부모 아니면 자식’, ‘남자 아니면 여자’, ‘죽었거나 아니면 살아있음’
세 가지 가족 신경증 : 분화 기능 혹은 분리/선택적 종합의 오이디푸스적 결함[고장]
─ 공포증 : 부모인지 자식인지 모름, 강박증 :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모름, 히스테리 :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름
∴ 가족적 삼각형화 : 자아가 세대(부모-자식), 성별(남-녀), 상태(생-사)에 관해 그를 분화시키는[구별짓는] 좌표를 수용하는 최소 조건
cf. 종교적 삼각형화 : 삼위일체에서 남근 상징을 위해 여성 이미지의 소거/삭제 ─ 인물들이 분화되는 최대 조건이 문제(칸트의 신 = 선언적 삼단논법 의 아프리오리한 원리)

오이디푸스적 등록의 고유성 : 분리/선택적 종합의 배타적·제한적·부정적 사용의 도입.
cf. 분열증 : 오이디푸스 외의 특이한 교훈 제공, 분리/선택적 종합의 미지의 힘, 배타적·제한적이 아니라 긍정적·무제한적·포함적인 내재적 사용의 계시. 여전히 분리/선택적인데도, 분리/선택된 항들 중 하나를 다른 항에 의해 제한하지도 다른 항에서 배제하지도 않으면서 분리된 항들의 거리 전체를 긍정하는 분리/선택 : 최고의 역설 ─ “이것 아니면 저것” 대신에 “이것이든 저것이든, 어느 것이든지”
분열자는 남자이거나 여자이지만 양쪽에 있다, 즉 남자들 쪽에서는 남자, 여자들 쪽에서는 여자이다. 분열자는 죽었거나 살아 있지만, 두 상태 각각은 분열자가 미끄러지며 조망하는 거리의 끝에 있다. 분열자는 자식이거나 부모이지만 (분해불가능한 공간 속의 막대기의 양 끝처럼) 하나가 다른 하나의 끝에 있다.
∴ 분열자는 모순적인 것들의 종합을 분리/선택적 종합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선택적 종합의 제한적·배타적 사용을 긍정적 사용(무제한적·포함적 사용)으로 대체, 심화를 통해 모순적인 것들을 동일시해서 분리/선택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분할불가능한 거리의 조망을 통해 분리/선택을 긍정 : trans-sexué, trans-vimort, transparenfant. 두 반대물을 같은 것으로 동일시하는 게 아니라 두 반대물을 서로 다른 것으로서 서로에 관계시키는 것으로서의 거리를 긍정.

포함적 분리/선택 : 혈통/가계
분열증의 신 ≠ 종교의 신
클로소프스키 曰, 〈신 = 파생된 실재성 속의 배제와 제한의 대가〉 ⇔ 〈적(敵) 그리스도 = modification의 1인자, 주체가 통과/경유하는 모든 가능 술어의 이행을 결정〉(나는 신이다 나는 신이 아니다, 나는 신이다 나는 인간이다.)
인간-신의 기원적 실재성 속에서 ‘파생된 실재성의 부정적 분리/선택’을 넘어서는 종합이 문제가 아니라, 한 항에서 다른 항으로 표류하고 거리를 따라가면서 종합을 수행하는 포함적 분리/선택이 문제. 중요한 것은 호칭이 아니라 호칭의 사용. 의미가 문제가 아니라 사용이 문제. 기원적인 것도 파생된 것도 아닌 일반화된 표류.
분열자는 무제한적인 있는 그대로의 혈통/가계 질료를 해방시키고 오이디푸스 혈통/가계를 폭파, 분할 불가능한 거리의 절대적 조망.
신 = 등록 에너지, 모든 것은 기관 없는 신체 위에 있다, 기입되는 것도 기입하는 에너지도. 기관 없는 신체 위에서, 분리/선택된 항들이 모두 긍정됨과 동시에 분해 불가능한 거리들은 필연적으로 조망된다.

배타적 분화와 미분화
등록의 분리/선택적 종합이 이르게 되는 결과 : 등록의 분리/선택적 종합의 두 가지 사용, 내재적 사용과 초월적 사용.
정신분석은 분리/선택의 그물망 속에 배제, 제한을 도입하고 무의식을 오이디푸스로 이동시키는 초월적 사용(오이디푸스화)을 뒷받침 ⇐ 오이디푸스[콤플렉스]에 의해 도입된 배타적 관계는 분화로 간주되는 다양한 분리/선택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그것이 부과/강요하는imposer 분화 전체와 그것이 가정/전제하는supposer 미분화상태 사이에서도 작용 : 오이디푸스[콤플렉스] 曰, “분화의 선[계통](아빠-엄마-나) 그리고 거기에 늘어서 있는 배타적인 것들을 따르지 않으면 미분화된 것의 캄캄한 밤 속에 떨어질 것이다.”
이 배타적 분리/선택(≠ 포함적 분리/선택)에서 부모 호칭은 〈기관 없는 신체 위에서 그리고 고아적인 무의식 속에서 주체가 통과하는 강도적 상태들〉이 아니라, 〈금지들보다 선재하지 않는 총괄적 인물들〉을 지칭. 이 금지들은 총괄적 인물들을 정초하고 분화시키므로, 금지의 위반은 분화 규칙의 상실 속에서 인물들의 혼동, 자아와 인물들의 동일시가 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그것이 지시/좌우하는 분화와 그것이 우리에게 공갈/협박하는 미분화상태 둘 다 창조. 분화를 창조하고, 그 이면으로서 미분화상태를 창조.

정신분석의 두 번째 거짓 추리 : 오이디푸스의 이중구속
베이트슨 曰, 이중 구속 = 서로 모순/상충되는 두 종류의 메시지의 동시 발신, 분열증화하는 상황, 난센스(러셀의 유형 이론).
들뢰즈&가타리 曰, 이중 구속(이중의 막다른 골목) = 전형적으로 오이디푸스화하는 일상적 상황 : 양자택일, 배타적 분리/선택은 어떤 원리와 관련해서 규정/결정되는데, 이 원리는 그것의 두 항 또는 두 부분집합을 구성하며, 이 원리 자체가 양자택일에 들어간다 : 정신분석의 두 번째 거짓추리.
∴ 이중 구속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전체, 이런 의미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하나의 계열로서 나타나거나 양극, 신경증적 동일시와 규범적 내면화 사이에서 동요. 임상실재로서 분열증자의 생산은 이 이중의 길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기관 없는 신체로 퇴각[되접힘].

오이디푸스는 매번 전염된다/퍼진다
프로이트 : 무의식을 이 이중의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었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이 이중의 막다른 골목과 불가분하다는 것을 의식.
오이디푸스의 한쪽 극을 떠나는 것은 다른 쪽 극으로 가기 위한 것, 신경증이든 정상상태[규범성]이든 오이디푸스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

 이중 구속에 대한 최초의 깊이 있는 분석 : 마르크스의 「유태인 문제」
─ 가족과 국가 사이, 가족 권한의 오이디푸스와 사회 권한의 오이디푸스 사이의 이중 구속.
정신분석은 무의식을 양쪽에 동여매는 것 외에 아무 데도 쓸모가 없다.
정신분석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진정한 해결(아버지의 지배로부터의 해방, 법 너머의 삶)을 가능케 한다고 생각하는 낙관론과 아버지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은 정신분석 바깥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 비관론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낙관론과 비관론 어느 것과도 함께할 수 없다. 분열분석은 [낙관론처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을 탈-오이디푸스해서 진정한 문제들에 도달하려는 것, “모든 법 너머의” 고아인 무의식의 영역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비관론처럼] 이 변화, 이 해방이 정신분석 바깥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믿지 않고 반대로 분석 기계를 혁명적 장치의 필수 부품으로 만드는 내적 reversion이 가능성을 믿는다.
경계는 상징계와 상상계 사이를 지나가는가
오이디푸스에 양극이 있는 듯 : 동일시를 가능케 하는 상상적 인물/형상의 극과 분화를 가능케 하는 상징적 기능/함수의 극
어쨌든 사람들은 오이디푸스화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발작으로서 갖거나 구조로서 갖거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양 극단, 최대치와 최소치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변적 이미지들의 미분화된 값을 향해 가는 것으로 간주하는지 상징적 기능들의 분화 역량을 향해 가는 것으로 간주하는지에 따라
─ 구조로서의 오이디푸스(기독교 삼위일체)와 발작으로서의 오이디푸스(가족적 삼위일체) : 언제나 반비례하는 양극, 이중의 막다른 골목(상징계 속의 구멍 ⇀ 상상계, 상상적 과오 또는 결함 ⇀ 구조) ∴ 상관적인 이중의 막다른 골목, 즉 무의식 전체를 쓸어갈 임무를 띤, 끝없이 한쪽 그에서 다른 극으로 돌려보내는 진자 운동이 문제.
진짜 본성의 차이 : 상징계와 상상계 사이가 아니라 ‘기계적인 것의 실재적 요소’(욕망하는 생산을 구성)와 ‘상상계와 상징계의 구조적 앙상블’(신화와 그 변이형만을 형성) 사이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두 가지 사용 사이가 아니라 무제한적인 포함적 분리/선택의 무오이디푸스적 사용과 배타적 분리/선택의 오이디푸스적 사용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