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들뢰즈 [자허마조흐 소개] 머리말

권순모
202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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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허-마조흐의 삶에 관한 주요 정보는 그의 비서 슐리히테그롤Schlichtegroll(『자허마조흐와 마조히즘』)과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여주인공 이름을 얻는] 그의 첫 번째 부인 완다(『회고록』)에게서 온 것이다. 완다의 책은 대단히 훌륭하다. 그 책은 종종 그 책을 표절하는데 그친 후대의 전기 작가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그것은 완다가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순진무구한 이미지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조흐가 마조히스트였으므로 완다가 사디스트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Leopold von Sacher-Masoch는 1835년, 갈리시아 의 렘베르크Lemberg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는 슬라브계, 스페인계, 보헤미안계이다. 그의 조상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관료였고, 그의 아버지는 렘베르크의 경찰 국장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폭동 장면과 감옥 장면을 목격하는데 이는 그에게 깊이 영향을 미친다. 그의 작품 전체는 제국 내의 소수집단 문제, 민족 문제, 혁명운동 문제, 즉 갈리시아인 이야기, 유대인 이야기, 헝가리인 이야기, 프러시아인 이야기 등등에 영향을 받는다. 그는 종종 농촌 코뮌의 조직화를 묘사한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정부와 지방 지주들에 대한 농민들의 이중의 투쟁을 묘사한다. 그는 범슬라브주의에 이끌린다. 그의 위인은 괴테와 푸시킨과 러만토프Lermantov이며, 그 자신은 소러시아의 투르게네프라고 불린다.
그는 먼저 그라츠Graz의 역사 교수이고, 역사 소설을 통해 문단에 데뷔한다. 그는 빠르게 성공한다. 그의 최초의 장르 소설 중 하나인 『이혼녀』(1870)는 미국에서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에서는 아셰트, 칼만-레비, 플라마리옹 출판사에서 그의 소설과 단편소설의 번역서를 출간한다. 그의 소설의 번역자 중 한 사람은 마조흐를 엄격한 모랄리스트, 민속 소설 및 역사 소설 작가로 소개하면서 작품의 에로틱한 성격은 조금도 암시하지 않는다. 그의 판타지는 슬라브족의 정신 탓으로 여겨져서 더 잘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리고 보다 더 일반적인 이유도 고려해야 한다. 19세의 “검열” 및 관용의 조건은 요즘과 많이 달랐다. 당시에는 유기체적이고 심리적인 정확성이 떨어지는 산만한 섹슈얼리티에 대해 더 많이 용인되었다. 마조흐는 민속적인 것, 역사적인 것, 정치적인 것, 신비주의적인 것, 에로틱한 것, 민족적인 것, 성도착적인 것 등이 긴밀하게 뒤섞여서 채찍질을 위한 성운(星雲)을 형성하는 언어를 구사한다. 그래서 마조흐는 크라프트-에빙Krafft-Ebing이 성도착을 지칭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마조흐는 유명하고 존경받는 작가였다. 1886년에 그는파리 여행을 하는데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다. 「피가로」지와 「레뷔 데 뒤 몽드」지는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고 그를 환대했다.
마조흐의 애정 취향은 유명하다. 곰인 체하거나 악당인 체한다. 사냥감이 되어 쫓기고 공격당하고, 벌을 받고 굴욕을 당하고 심지어 (모피를 입고 채찍을 든 풍만한 여인에게) 심한 신체적 고통까지 당한다. 하인으로 변장하고 물신(物神)과 가장복을 모은다. 구인광고를 내서 마음에 드는 여인과 “계약”을 맺고 필요한 경우 그녀에게 매춘을 시킨다. 안나 폰 코토비츠Anna von Kottowitz와의 첫 번째 모험/연애는 『이혼녀』에 영감을 주고, 파니 폰 피스토르Fanny von Pistor와의 두 번째 모험/연애는 『모피를 입은 비너스』에 영감을 준다. 그 후에 오이로레 뤼멜린Aurore Rümelin이라는 젊은 여성이 편지를 주고받는 애매한 상태에서 마조흐에게 접근해서, 완다라는 가명을 얻고, 1873년에 마조흐와 결혼한다. 그녀는 마조흐의 동반자가 되는데, 유순하면서 동시에 까다롭고 고루했다. 변장 역량이 마치 오해의 역량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조흐의 운명은 실망하는 것이다. 마조흐는 항상 부부관계 안에 제3자, 즉 그가 “그리스 사람”이라 부르는 자를 끼워 넣으려고 애쓴다. 그런데 그 전에 이미 안나 폰 코토비츠와의 사이에 가짜 폴란드 백작이 끼어든 바 있는데 그는 [백작이 아니라] 절도혐의로 수배중이고 중병에 걸린 약제사 보조임이 밝혀졌다. 오이로레-완다와의 사이에서는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2세가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는 흥미로운 모험/연애가 시작된다. 그 이야기는 이 책 뒷부분에 나온다. 거기서도 인물들의 분열, 가식/가면, 캠프를 도는 퍼레이드에 의해 그 모험/연애는 결국 실망으로 바뀌는 이상한 무도극이 된다. 끝으로 「피가로」지의 아르망Armand과의 모험/연애 ─ 완다는 독자 스스로 바로잡을 것을 각오하고 이 모험/연애를 아주 잘 이야기한다. 이 에피소드는 1886년 파리 방문의 원인이 되며, 또한 완다와의 결합의 종말을 표시한다. 그는 1887년에 아이들의 가정교사와 결혼한다. 미리암 해리Myriam Harry의 소설 『베를린의 소냐』는 말년의 마조흐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를 한다. 마조흐는 자신의 작품이 이미 망각 속에 묻힌 것을 괴로워하다가 1895년에 죽는다.
하지만 그 작품은 중요하고 색다르다. 마조흐는 그 작품을 하나의 사이클, 보다 정확히 말해 사이클들의 계열로 구상한다. 주 사이클은 『카인의 유산』으로, 사랑, 재산, 돈, 국가, 전쟁, 죽음 여섯 가지 테마를 다룰 예정이었다(이 중에 처음 두 부분만 완성되지만, 다른 테마들도 그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민담 혹은 민족 설화가 두 번째 사이클을 형성한다. 특히 마조흐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두 편의 느와르 소설 『영혼의 낚시꾼』과 『신의 어머니』는 갈리시아의 신비주의 종파들에 관련된 것으로, 거의 비할 데 없는 불안과 긴장의 수준에 도달한다. “카인의 유산”이라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그것은 인류를 짓누르는 범죄와 고통의 유산(遺産)을 요약하려고 한다. 그러나 [범죄의] 잔인성은 보다 더 은밀한 배경, 즉 카인이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어머니’의 차가운 이미지, 자연 혹은 대초원의 냉정함이라는 배경 위의 외관일 뿐이다. 그리고 이 엄한 어머니의 냉정함은 오히려 그로부터 새로운 인간이 나오게 될 잔인성의 변환과도 같다. 그러므로 “유산”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카인의 “기호”가 있다. 카인부터 그리스도까지 그것은 같은 기호, 즉 “인류라는 관념을 구현하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성적인 사랑도 재산도 조국도 싸움도 노동도 없는” 십자가 위의 ‘인간’으로 귀결되는 기호다. 마조흐의 작품은 독일 낭만주의의 역량을 상속받는다. 일찍이 환상과 서스펜스라는 수단을 마조흐처럼 활용한 작가는 없었다. 그에게는 사랑을 “탈성화(脫性化)”하면서 동시에 인류 역사 전체에 성적 의미를 부여하는 매우 특수한 방법이 있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1870)는 마조흐의 가장 유명한 소설 중 하나이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카인의 유산』 1권의 일부를 이룬다. 경제학자 레도 드 보포르Ledos de Beaufort의 번역본이 프랑스어와 영어로 동시에 출간되었다(1902). 그러나 번역이 매우 부정확했다. 우리는 오드 빌름Aude Wilm의 새로운 번역을 소개하면서 거기에 다음 세 개의 부록을 더했다. 첫 번째는 마조흐가 소설에 대한 자신의 일반적 견해와 자신의 특수한 유년의 기억을 설명하는 글이고, 두 번째는 마조흐가 파니 폰 피스토르와 완다 두 여인과 맺은 개인적인 사랑의 “계약”을 수록한 것이고, 세 번째는 완다 자허-마조흐가 루드비히 2세와의 모험/연애를 이야기하는 글이다.

마조흐의 운명은 이중으로 부당하다. 이는 그의 이름이 마조히즘을 지칭하는데 쓰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의 이름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함과 동시에 그의 작품은 망각 속에 묻혔기 때문이다. 물론 사드의 작품에 대한 지식/조예를 보여주지 않는, 사디즘에 관한 책이 나오는 일이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사드는 점점 더 깊이 알려지고 있고, 사디즘에 관한 임상적 고찰에 사드에 관한 문학적 고찰이 활용되고 역으로 사드에 관한 문학적 고찰에 사디즘에 관한 임상적 고찰이 활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마조흐의 경우에 그의 작품에 대한 무지는 여전히 놀랄 만한 수준이다. 심지어 마조히즘에 관한 가장 훌륭한 책들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마조흐와 사드를 단지 많은 사례들 중 하나가 아니라 그들에게는 각각 ─ 한 사람은 마조히즘에 관해서, 다른 한 사람은 사디즘에 관해서 ─ 우리에게 가르쳐 줄 본질적인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마조흐의 운명의 부당함을 배가시키는 두 번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임상적으로 그가 사드의 보완물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드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마조흐에게는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은 이유가 아닌가? 그들은 섣불리 기호/징후를 뒤집기만 하면, 충동의 방향을 반대로 돌리고 상반되는 것들의 거대한 통일성을 사유하기만 하면 사드로부터 마조흐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통일성, 사도-마조히즘의 실체라는 테마는 마조흐에게 매우 해로웠다. 그는 부당한 망각만이 아니라 [사드와의] 부당한 상보성, 부당한 변증법적 통일도 겪었다.

사실 마조흐의 작품을 읽자마자 그의 세계가 사드의 세계가 아무런 관련도 없음을 직감하게 된다. 문제는 단지 테크닉이 아니라 너무도 다른 문제와 관심과 기획이다. 정신분석학이 오래전부터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변환의 가능성과 실재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반증으로 제시해서는 안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도마조히즘이라고 불리는 것의 통일성 자체이다. 의학은 증후군syndrome과 증상을 구별한다. 증상은 질병의 특수한 기호/징후인데 반해 증후군은 상이한 인과 계통과 가변적 맥락에 관련된, 합류점 혹은 교차점이다. 우리는 사도마조히즘의 실체 자체가 환원 불가능한 두 계통으로 분리되어야 하는 하나의 증후군이 아니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우리는 동일한 사람이 사디스트이자 마조히스트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마침내 그것을 믿게 되었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며, 사드와 마조흐를 읽는 것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임상적 판단은 선입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임상 밖에 위치한 점, 문학적인 점 ─성도착 명명의 시발점이 된 점 ─ 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두 작가의 이름이 성도착을 지칭하는 데 쓰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학적인 의미의) 비평과 (의학적 의미의) 임상은, 쌍방이 서로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는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도록 결정될지도 모른다. 징후학은 언제나 예술의 소관이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임상적 특수성은 사드와 마조흐에게 고유한 문학적 가치와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상반되는 것을 성급하게 결합하는 변증법 대신에 예술적 독창성들만큼 정말로 미분적인 메커니즘들도 끌어낼 수 있는 비평과 임상을 지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