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안전·영토·인구] 7강

권순모
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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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안전 영토 인구 7강]



1978년 2월 22일



▶ 사목의 분석 정리

그리스의 사유는 정치권력을 분석할 때 목자 모델에 거의 의존하지 않았고, 그리스에서는 ‘목자’는 고전기 이전 텍스트에서는 의례상의 호칭으로 사용되었고, 고전기의 텍스트에서는 행정관이 도시국가 전체에 행사하는 권력이 아니라 개인이 교육적 관계나 신체의 보살핌 측면에서 종교 공동체에 행사하던 국지적‧제한적 형태의 권력을 특징 짓는 데 사용되었다.



▶ 동방‧히브리 전통과 대비되는 그리스도교 사목의 특수성

3세기부터 제도화되고 발전된 그리스도교 사목은 우리가 이미 파악했던 사목과는 절대적‧근본적‧본질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히브리적/동방적인 사목의 재연도 변형도 연속도 아니다. 그 이유는 ① 그리스도교의 사유에 의해 풍부해지고 변형되고 복잡해졌고 ② 다른 곳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제도망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히브리인에게 신만이 목자였고 그들의 정치‧사회 체제에서는 목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안에서는 사목이 밀도있고 복잡하며 조밀한 제도망을 탄생시켰다. 이후 이 제도망은 교회 전체, 그리스도교 공동체 전체와 동일한 외연을 갖게 되었다. ③ 그리스도교에서 사목은 집단적‧개별적으로 인간의 일생에 걸친 매 단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기술이다.



▶ 통치성의 배경으로서의 그리스도교의 사목

사목은 정치‧교수법‧수사학이 아니며 인간을 통치하는 기술이다. 바로 이 점에서 통치성의 기원과 형성‧결정화‧발아 지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통치성이 16세기 말과 17-18세기에 정치 영역에 들어온 것이 근대 국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리스도교의 사목은 이 절차의 배경에 해당한다.



▶ 3-4세기 그리스도교 사목의 주요 특징

성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사제에 관하여』, 성 키프리아누스의 『서간집』, 성 아우렐리우스 암브로시우스의 『사제의 임무에 관하여』,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사목서』, 요하네스 카시아누스의 『담화집』과 『공동체 수도원 제도』, 성 히에로니무스의 『서간집』, 성 베네딕투스의 『규칙』, 『규칙들』에서 사목은 어떤 모습일까? 사목이 그리스의 행정관직만이 아니라 양치기, 목자, 훌륭한 목자라는 히브리적 주제와 구별되는 특징은 무엇일까?



추상적, 일반적, 이론적으로 사목을 정의할 경우, 이는 세 가지와 관련이 된다. ① 구원 : 사목은 개인과 공동체를 구원의 길로 안내하는 것을 근본적 목표로 설정한다. ② 법 : 사목은 개인과 공동체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들이 명령‧계율‧신의 의지 등을 실제로 따르는지 감시해야 한다. ③ 진실 : 특정 진실을 수용하고 믿고 공언한다는 조건에서만 사람들이 구원을 얻고 법에 스스로 복종한다. → 목자는 구원의 길로 안내하고, 법을 명하고, 진실을 가르친다. but 세 가지는 어떤 권력이든 하는 일로 플라톤이 말한 도시국가 기능이나 행정관의 기능과 동일하다.



▶ 구원과의 관계

그리스 도시 국가나 히브리족 모두에게 민중peuple과 우두머리‧인도자는 운명공동체이다. 역사 속 사건으로서의 나쁜 왕과 나쁜 목자는 도시국가나 공동체의 죄악 탓으로 여기거나 그것으로 정당화된다. 즉 공동체와 그 책임자 사이에 놓인 포괄적 관계, 공동 운명, 상호 책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사목에서는 전적으로, 역설적으로 분배적이다. 전적이라는 것은 목자란 만인의 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 목자는 만인, 총체로서의 공동체는 물론 개인의 구원을 보증해야 한다. 모두를 구원한다는 것은 전체를 구원하고 각자를 구원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분배적이라는 것은 전체를 구원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경우에 따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지 모를 한 마리의 양을 희생시킬 수 있음을 뜻한다.



이 사목 권력에 그리스도교는 4개의 원칙을 추가한다. 1) 분석적 책임의 원칙 : 목자는 각각의 양이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에 대해 보고하고 질문받고, 조사받아야 한다. 목자는 각각의 양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2) 철저하고 즉각적인 전이의 원칙 : 목자는 자기 양의 선을 자신의 기쁨으로 간주해야 하고, 자기 양으로부터 비롯되는 악은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참회해야 한다. 3) 희생의 반전의 원칙 : 목자는 양을 구원하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목자는 타인을 위해 자신이 죽는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구원된다. 4) 교대적 대응의 원칙 : 양들의 약함이 공덕을 만들어 목자의 구원을 확보하는 것처럼, 목자의 잘못과 약함이 교화하는 요소이자 목자 스스로 양떼를 구원으로 이끄는 운동과 절차의 요소가 된다.



그리스도교의 목자는 공덕과 죄과의 치밀한 경제, 그러니까 점괄적ponctuel 요소, 전이의 메커니즘, 반전의 절차, 상반된 요소의 상호 뒷받침 등에 대한 분석을 전제로 하는 경제, 즉 최종적으로는 신이 그 안에서 만인의 공덕과 죄과를 판결하는 세밀한 경제 전체 안에서 행동한다. 구원의 생산은 전적으로 신의 수중에 놓이고 목자는 구원에 대한 최종적 확신을 갖지 못한 채 공덕과 죄과의 도정, 순환, 역전을 관리해야 한다. 그것은 공덕과 죄과의 경제라 부를 수 있다.



▶ 법과의 관계

그리스 도시국가 시민들은 법과 설득, 즉 도시국가의 명령 혹은 사람들의 수사(修辭)를 통해 지휘를 받아들였다. 그들에게는 복종이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두 개의 권역이 있는데 ① 법의 존중 : 민회의 결정, 행정관의 선고 등 만인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내려진 것이든, 개인에게 만인의 이름으로 내려진 것이든 명령을 존중하는 권역 ② 계략ruse의 권역 : 궁리해 계획된 행동과 효과의 권역, 인간이 다른 인간에 의해 끌려 다니고 설득당하며 유혹당할 때 사용되는 여러 가지 절차의 총체/의사, 철학자, 선생→법을 존중하는 것과 누군가가 자신을 설득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 즉 법과 웅변술이 존재한다.



그리스도교 사목은 그리스적 실천과는 완전히 다르고 이상한 복종의 심급을 조직한다. 그리스도교는 법의 종교가 아니라 신의 의지, 개별자 각각을 위한 신의 의지의 종교이다. 하지만 각각의 사례를 법률가보다 훨씬 더 배려하는 자로서 양을 이끄는 자와 양떼의 관계는 전면적인 의존관계이다. 전면적 의존 관계란 1) 법‧질서원칙‧이치에 합치하는 엄명에 대한 복종이나 이성에 의해 도출된 어떤 원칙이나 결론에의 복종이 아니라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하는 복종의 관계이다. 그리스도교는 이 개인적 관계에 영적인 일처럼, 물질적이고 일상적인 일도 목자에 내맡기도록 한다. 그리스도교의 복종은 누군가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맡기는 원칙이다. 가령 수도원 공동체에 들어가는 개인은 모두 상급자나 수사의 스승 등 누군가에게 맡겨진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에피소드와 모든 순간이 누군가에 의해 지휘되고 명령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통해 삶 전체를 코드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완벽한 복종이란 이치에 맞기 때문에 따른다든지, 맡겨진 임무가 중요하기 때문에 따른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한데도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복종, 곧 목자에 대한 양의 복종은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하는 전면적 복종이다. 복종하는 자, 즉 명령에 복종하는 자는 숩디투스subditus로 불린다. 말 그대로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바쳐진 자, 전적으로 다른 사람의 뜻이나 의지대로 되는 자를 뜻한다. 이것은 전면적 예속관계다. 2) 최종 목적이 없는 관계이다. 그리스도교의 복종에는 끝이 없다. 복종이 귀결되는 곳은 복종일 뿐이다. 사람들은 복종적이 되고 복종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복종한다. 그리스도교에서 복종의 실천이 취하는 결말은 겸손이다. 여기서 겸손이란 자기 자신이 최후의 인간임을 느끼고,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복종관계 역시 끊임없이 연장시키며, 각자 자산의 의지를 포기하는 데 있다. 또한 겸손하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의지가 나쁜 의지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종의 목표는 자기 의지를 죽이는 것이다.



아파테이아apatheia의 경우, 시기마다 의미가 다르다. 그리스에서는 제자가 철학교사가 만나 교사의 지도와 행동지침에 복종해 자신을 맡기는 것은 아파테이아, 즉 정념pathé의 부재라 불리는 무엇인가에 도달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정념을 가지 않다는 것은 수동성을 더 이상 갖지 않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모든 운동‧힘‧격정을 자신에게서 제거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인의 아파테이아는 자기제어를 보장했는데, 사람들은 그 안에서 복종하며 몇 가지를 버린다. 스토아 학파의 철학과 후기 에피쿠로스주의에서는 육신의 쾌락을 버리고 아파테이아를 확보하려 한다. 여기서 아파테이아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자기 제어라는 실정적인 것의 의면, 즉 움푹 파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포기함으로써 스승이 된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 아파테이아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정념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이기주의를 버리는 것, 자신의 독단적 의지를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에서 육신의 쾌락이 비난을 받는 것은 그 안에서 개별적이고 개인적이고 이기주의적인 활동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복종의 실천을 통해 제거되어야 하는 파토스는 정념이 아니라 의지, 곧 자기로 향하는 의지이고 정념의 부재, 아파테이아는 자기 자신을 포기해버린 의지, 부단히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의지가 된다.

수도원장이나 주교 등 그리스도교적 복종의 이론과 실천에서 명령하는 자는 스스로가 명령하고 싶어서 명령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고, 다른 이로부터 명령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명령해야 하는 것이다. 목자는 자기에 부여된 사목의 임무를 거부하는 것을 포기하고 복종하며 명령해야 한다. 이렇게 복종이라는 일반화된 장이 생겨난다. 이 복종이야말로 사목적 관계가 전개되는 공간의 특징이다.



∴ 사목의 분석‧정의가 공동의 운동이라는 주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순환‧전이‧교환되는 공덕과 과오의 복잡한 경제를 출현시킨 것처럼, 사목은 법의 일반 원칙과 관련해 개인의 개인에 대한 복종의 실천을 출현시켰다. 이 실천은 법의 성격을 띠지만 법의 영역 외부, 즉 일반성을 갖지도, 자유를 보장하지도, 자신이든 타자이든 어떤 지배도 가져오지 않는 종속 아래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각각 그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지극히 개인화되고 늘 순간적이며 제한적인 일반화된 복종의 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지배가 존재하는 지점일지라도 거기에는 여전히 복종의 효과가 존재한다. 한편 인도를 받는 자인 양은 목자와의 관계를 전면적인 예속관계를 체험해야 한다. 그러나 거꾸로 목자는 목자로서의 자기 임무를 일종의 봉사로, 자신을 양들의 봉사자로 만드는 그런 봉사로 체험해야 한다.



▶ 진실과의 관계

목자에게는 자신의 공동체를 교육할 임무가 있다. 목자는 자신이 모범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삶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 자기 삶을 통해 좋은 교훈을 줄 수 없다면 목자가 이론적으로든 말로든 행한 가르침은 모두 쓸모없게 된다. 목자는 포괄적이지도,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만인을 다르게 가르친다. 하지만 이 가르침은 1) 일상적 품행의 지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목자는 자신이 감시하는 양떼의 일상생활로부터 그들 각자의 행동과 품행에 관한 지식이 될 항구적인 지식을 구축해야 한다. 2) 양심지도여야 한다. 고대의 양심지도는 본인의 의지를 전제로, 인생의 특정 시기에 일어나는 시련에 관여할 뿐이고 위로를 뜻했다. 또한 자신의 양심 점검을 통한 자기제어를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적 실천에서 양심지도는 ① 완전히 의무적이다. 양심지도자를 갖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② 절대적으로 항구적이다. 모든 것에 대해 평생 지도를 받아야 한다. ③ 양심 점검은 양심지도를 위한 도구의 일부이자 자신의 모든 것을 지도자에게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의존적 도구가 된다. 사람들은 매 순간 양심 점검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일정한 진실 담론을 만들어낸다.



그리스도교의 사목은 1) 구원의 문제를 일반적 주제 안에서 취하며 경제, 순환의 기술, 전이, 공덕의 역전 전체를 포괄적 관계 안으로 집어넣는 권력 형태이다. 2) 법의 용인이나 일반화의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법과의 간접적인 관계를 통해 개별적이고 망라적이며 총체적이고 항구적인 유형을 복종관계를 창출한다. 3) 인간과 양떼로 하여금 어떤 진실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하기도 했지만, 권력, 조사, 자기 점검, 타인의 점검 등의 구조와 기술을 확립하는데 절대적으로 혁신적이기도 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독창성‧특수성을 이루는 것은 구원, 법, 진실이 아니라 공덕과 죄과의 새로운 관계, 절대적 복종, 숨겨진 진실의 생산이다.



개인화의 특수한 양태를 특징짓는 완전히 새로운 권력형태(주체의 역사에서 사목권력이 갖는 중요성)

그리스도교의 사목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권력형태의 탄생을 목격한다. 이와 동시에 완전히 특수한 개인화의 양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등장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교의 사목에서 개인화는 개인의 신분에 의해, 출신에 의해, 행동의 화려함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식으로 정의된다. 1) 매 순간 공덕과 죄과의 균형‧작동‧순환을 규정하는 해체의 움직임에 의해서이다. 이것은 신분이 아니라 분석적 판별에 의한 개인화다. 2) 개인이 위계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치의 표시, 표식에 의해 작동하는 개인화가 아니다. 자기제어의 긍정에 의해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이 개인화는 예속의 네트워크 전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반적 예속뿐만 아니라 개인의 중심적‧핵심적 형식인 자기‧자아‧이기주의의 배제와 관련된 네크워크에 의해 작동된다. 따라서 이것은 종속화에 의한 개인화다. 3) 이 개인화는 명백히 진실이라고 인정되는 것과의 관계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내밀하고 은밀하고 숨겨진 진실의 생산에 의해 획득된다. 분석적 판별, 종속화, 주체화,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사목이나 그것의 제도들에 의해 실제로 작동될 개인화 절차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사목의 역사는 서구가 밟아온 개인화 절차의 역사, 주체의 역사와도 관련되어 있다.



사목은 16세기부터 전개될 통치성이라 부른 것의 단초를 대략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구성한다. 사목은 두 가지 방식으로 통치성의 단초가 된다. 1) 사목 고유의 절차를 통해서이다. 단순하게 구원의 원칙, 법의 원칙, 진실의 원칙을 작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법‧구원‧진실 아래 다른 유형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일체의 대각선diagonales을 통해서 말이다. 2) 사목은 특수한 주체, 즉 자신의 공덕이 분석적 방식으로 판별되는 주체, 연속된 복종의 네크워크에 종속된 주체, 자신에게 강요된 진실의 추출행위를 통해 주체화되는 주체를 구성함으로써 통치성의 단초가 된다. 근대 서구의 전형적인 주체를 구성해냄으로써 비로소 사목은 서구 사회의 권력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