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안전·영토·인구] 3강

권순모
202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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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부득이한 사정이 생기게 되어 발제자임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늦게나마 발제문의 내용을 올립니다.





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2011) 3강 1978년 1월 25일

 

2020.05.26. 김진규

 

 

안전장치의 일반적 특징(3) : 정상화

 

저는 안전과 규율의 대립, 적어도 구별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이런 구별을 통한 목표는 더 이상 단조로운 방식으로 권력을 긍정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첫 강의에서 규율과 안전이 공간 배분을 처리, 정리하는 방식과 관련해 양자를 구별할 수 있는지 설명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강의에서는 어떻게 규율과 안전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사건을 다루었는지 설명해보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규율과 안전이 정상화를 어떻게 다르게 다뤄왔는지 짧게 설명해보려 합니다.

 

규범화와 정상화

 

규율은 정상화를 시행합니다. 먼저 규율은 개인, 장소, 시간, 몸짓, 행위, 조작을 분석하고 분해합니다. 바로 이 규율적 격자화가 충분히 변형가능하고 지각 가능한 최소한의 요소를 만들어냅니다. 둘째로 규율은 이렇게 포착된 요소를 결정된 목표에 입각해 가장 적합한 것으로 분류합니다. 셋째로 규율은 최적의 사열·배열을 확립합니다. 넷째로 규율은 조련절차와 통제수법을 정해 부적합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분할을 확립합니다. 이런 근거로 규율은 정상과 비정상을 분할합니다.

달리 말하면 규율적 정상화에서 근본적이고 일차적인 것은 정상과 비정상이 아니라 규범입니다. 즉 규율적 정상화는 규범을 출발점 삼아 최종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의 분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규율기술에서 발생하는 것은 정상화라기보다는 규범화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전염병(천연두)과 18세기의 예방접종 캠페인

 

정상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안전장치에서 정상화는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요? 이번에는 18세기의 풍토병이자 전염병인 천연두를 예로 살펴보겠습니다. 천연두는 이 시대의 풍토병 중 가장 널리 퍼진 전염병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체 인구 중 천연두 사망률은 거의 1/8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천연두는 매우 유행했을 뿐 아니라 사망률도 매우 높았던 풍토병입니다. 특히 런던에서는 고작 5년 내지 6년의 격차를 두고 매우 집중적으로 전염병이 격화되곤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천연두는 1720년부터는 이른바 천연두 접종을 통해, 그 뒤 1800년부터는 우두 접종을 통해 완전히 별난 기술을 손에 넣을 수 있게 해줬기 때문입니다.

이 기술은 네 가지 점에서 별난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완전히 예방적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확실하고 거의 전면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원칙상 별다른 어려움 없이도 인구 전체에 일반화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천연두 접종, 그리고 우두 접종조차 당시에는 완전히 낯선 것이라는 상당한 이점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일반화가 가능한 확실하고 예방적인 기술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 기술은 의료내치라 부를 수 있는 영역에 어떤 효과를 끼쳤을까요? 첫째, 확실하고 일반화가 가능한 이 기술은 확률계측으로 이 현상을 사유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천연두, 우두 접종은 수학적 근간을 이용해 실제로 수용되던 합리성의 영역에 통합되었습니다. 둘째, 당대의 의학 이론에 비해 이상하고 이질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는 다른 안전메커니즘에 통합됐습니다.

18세기 중엽까지 지배적이던 사법적·규율적 통제가 식량난 현상을 막으려 했다면 중농주의자들을 비롯한 학자들은 식량난의 절차 자체, 즉 양적 변동에 의거하려 했습니다. 이는 식량난을 막으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현실적 요소들을 작동시켜 식량난 현상이 스스로 소멸되게 만드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천연두 접종에서 주목할 만 한 점, 특히 우두 접종에 비해 훨씬 주목할 만 한 점은 이것이 천연두를 억제하려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을 천연두에 감염되도록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단 이 접종이 전면적이고 완전한 병으로 이어지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조건에서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식량난에서 관찰한 것과 동일한 유형의 전형적인 안전메커니즘입니다. 그러므로 상이한 안전테크놀로지, 즉 우연과 개연성의 합리화 내부에서 이중의 통합이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새로운 개념(사례, 위험도, 위험, 위기)의 출현

 

예방접종을 통해 훗날 안전장치가 일반화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해지는 요소들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로 이 전염병이 당시의 의학적 사상·실천 내부에서 여전히 매우 견고하고 일관된 범주였던 유행병 개념으로 더 이상 파악되지 않게 됐다는 것입니다. 유행병은 일종의 실체적인 병이며 “어떤 병과 어떤 장소”, “어떤 병과 어떤 집단” 사이의 일체적이고 포괄적인 관계로 정의되고 특징지워집니다. 천연두가 수량적으로 분석되고 계산되자 천연두는 실체적 관계가 아닌, 시간적·공간적으로 국한된 “인구” 사이에서 구분되는 일종의 사례 분포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사례는 개별적 사례가 아니라 병이라는 집단적 현상을 개별화하는 방식, 개별 현상을 집단적 영역 내부로 통합시키는 방식입니다. 단 합리적인 것이나 측정 가능한 것을 수량적으로 다루는 형태로 말입니다. 사례라는 개념은 이렇게 등장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집단의 수준과 개인의 수준에서 이런 사례개념과 분포 분석으로 접근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개개인 혹은 집단이 각각 천연두에 걸릴 위험, 사망할 위험, 치료될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 포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연령과 주거지가 주어진다면 그에 따라서도 그 발병률과 사망률이 어떨지 밝힐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천연두, 우두 접종이 천연두를 발생시킬 위험은 어느 정도이며, 그럼에도 훗날 이 병에 걸릴 위험은 어느 정도인지도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험도라는 개념이 지극히 중요해집니다.

세 번째로, 이런 위험도 계산은 위험도가 모든 범주에서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위험도에는 고위험도 지대와 저위험도 지대가 존재하며, 이에 따라 무엇이 위험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천연두는 어린이가 성인보다 위험하며, 도시가 시골보다 훨씬 더 위험합니다. 사례와 위험도에 이어지는 세 번째 중요한 개념이 바로 이 위험이라는 개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병의 현상은 갑작스럽고 순환적인 폭주 현상을 가져왔습니다. 따라서 이 병이 확산될 경우에는 사례가 증가되고, 인위적인 메커니즘 혹은 자연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효율적으로 저지될 때까지 급격한 상승 경향 속에서 다른 사례까지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폭주 현상을 사람들은 위기라고 불렀습니다.

 

규율에서와 안전장치에서의 정상화 형식

 

전염병 통제에 적용되는 규율체계, 나병 같은 풍토병 통제에 적용되는 규율체계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우선은 병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과 걸린 사람을 격리해 감염을 막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예방접종과 함께 출현하는 안전장치는 병에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총체적인 인구로 고려합니다. 그래서 인구의 개연적인 발병률이나 사망률 계수 등의 평균값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정상적인” 발병률과 사망률이라는 개념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안전장치의 첫 번째 목표입니다.

두 번째 목표는 발병률과 사망률에 관련해 각각에 결부된 상이한 정상성을 서로 분리 할 수 있는 더 섬세한 분석을 달성하려는 시도입니다. 요컨대 각각의 분류에 따라 정상적이고 총괄적인 곡선, 정상으로 간주되는 다양한 곡선이 존재하게 됩니다. 여기서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곡선에 비해 가장 바람직하지 못하고 일탈적인 정상성을 저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곡선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유아가 천연두에 더 잘 걸린다는 것이 확인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어떻게 유아의 발병률, 사망률을 낮춰 평균 발병률과 사망률 수준에 맞출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예방의학은 이처럼 서로 다른 정상성을 조작하는 수준에서, 서로 다른 각각의 정상성을 차별적으로 다루고 이 정상성을 저 정상성에 맞춰 평준화하는 수준에서 작동하게 됩니다.

이것은 규율과 관련해 관찰할 수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체계입니다. 규율체계는 규범에서 출발했고 그 규범과 비교하고 나서야 정상과 비정상이 구별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달리 안전장치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포착이 먼저 이루어지고, 상이한 정상성의 분포가 상호작용하도록 만들고 가장 부적합한 정상성을 가장 적합한 정상성에 근접시키는 식으로 정상화가 가동됩니다. 따라서 안전장치에서는 정상적인 것이 먼저 있고 규범이 연역됩니다. 이제는 규범화가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상화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앞서 살핀 도시, 식량난, 전염병의 예시에서 매우 가시적이고 명시적인 상호관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 모든 현상은 도시 자체와 연관이 있습니다. 식량난의 문제는 시장-도시의 문제이고, 전염병의 문제는 발병 장소로서의 도시 문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도시 문제가 다양한 안전메커니즘 사례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도시가 새롭고도 특수한 통치기술의 문제를 발생시켰기 때문입니다. 도시는 상당한 한계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과 권리, 자치권을 인정받았습니다. 즉 도시는 봉건제적 권력의 특징인 영토적 권력과 관련해 항상 일종의 자율구역을 대표했습니다. 이 도시를 권력의 중심 메커니즘 내부로 통합하는 이 역전이야말로 17-19세기에 일어난 일을 특징짓는 역전이라고 생각됩니다.

두 번째로, 이 세 현상은 순환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주권과 정치권력의 전통적 문제는 영토의 정복과 영토의 유지였습니다. 바꿔 말하면 영토의 안녕, 영토에 군림하는 주권자의 안녕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그러나 이제 전혀 다른 문제가 등장했습니다. 영토를 고정, 구획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에 내재하는 위험성은 없애는 식으로 순환이 일어나도록 놔두는 문제 말입니다. 이제는 군주와 그 영토의 안녕이 아니라 “인구의 안전”이 문제가 됩니다. 저는 이 또 다른 변화 역시 매우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안전메커니즘은 근본적으로 주권자의 의지와 거기에 순종하는 의지 사이의 복종관계가 아니라 현실의 요소를 상호관계 속에서 작동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안전메커니즘은 “그것을 해서는 안 된다”나 “이러저러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같은 금지의 형식으로 부적절함을 소거하려 하지 않고 현상 자체를 통해 그 현상을 점진적으로 제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법률메커니즘이나 규율메커니즘과는 달리 안전메커니즘에서는 가능한 한 가장 동질적으로, 연속적으로, 소모적으로 어떤 의지를 다른 의지에 반영하려는 경향이 없습니다. 판옵티콘이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중심에 시선, 감시의 원칙을 위치시킴으로써 그 누군가가 권력기계의 내부에 있는 모든 개인에게 주권을 행사하도록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판옵티콘은 가장 오래된 주권자가 꿈꾸는 가장 오래된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것 대신에 등장하는 것은 현상을 통치를 위해 뭔가 적절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메커니즘의 총체입니다. 그 현상은 개인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제 그 관계는 우리가 “인구”라고 부르는 것 안에서 작동하게 됩니다.

 

인구의 통치라는 새로운 정치테크놀로지의 설치

 

인구라는 단어는 본질적으로 인구감소의 반대말이었으며, 인간이 겪은 대재앙에 의해 생겨나는 무인상태·무인화와 관련해 제기된 것이었습니다. 사망률표가 만들어진 최초의 나라인 영국에서조차 사망률표는 16세기의 경우 대역병이 발생했을 때만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인구 문제는 결코 그 실정성과 일반성 측면에서 다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구 개념의 실정적 가치는 18세기의 환경에서 생겨난 것만이 아닙니다. 인구는 주권자의 힘을 이루는 요인, 요소의 하나로 묘사되었습니다. 주권자의 힘은 영토의 크기, 재화의 규모, 인구라는 3개의 양태로 측정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인구, 결과적으로 주권자가 지닌 힘의 징표로 등장한 이 인구는 주권자가 다수의 군대를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 도시에 인구가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시장에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고 있다는 사실로 현시되었습니다.

다수의 인구는 두 개의 보충조건이 있을 때만 주권자의 힘을 특징지을 수 있었습니다. 요컨대 인구는 첫째로 복종적이어야 하고, 둘째로 열의가 충만해 노동과 활동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권자는 실제로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구를 구상하는 방식들 중에서도 가장 전통적인 방식에 속합니다.

 

중상주의자와 중농주의자가 본 인구문제

 

17세기는 관방학이나 중상주의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시대입니다. 중상주의자들에게 인구는 단순히 주권자가 지닌 힘의 실정적 특징으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국력과 주권자가 지닌 힘의 역학 그 자체에서 나타납니다. 이에 따라 인구는 근본적인 요소, 다른 모든 요소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이는 인구가 농업을 위한 일손, 수공업을 위한 일손을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구는 자국 내의 유효 노동력들끼리 경쟁하게 만듦으로써 임금이 낮아지게 해줍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인구는 여러 국가들 사이 힘의 역학관계에서도 근본적인 요소입니다.

인구가 부와 국력의 토대가 되려면 외부로의 이민을 막고, 외부로부터 이민을 불러들이고, 출생률을 활성화하는 규제장치에 의해 개념이 틀지워져야만 합니다. 요컨대 인구를 국력과 국부의 원리·근간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 인구가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일을 올바로 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가 필요한 셈입니다. 달리 말해 좁은 의미에서의 생산력으로 인구가 중상주의의 관심사였습니다.

18세기부터 이것은 변하는 것 같습니다. 중농주의자들은 인구에 대해 더 미묘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중상주의자들이나 관방학자들이 인구를 여전히 부의 토대로, 다른 한편으로는 규칙체계를 통해 관리되어야 할 대상으로 언급했을 때 인구는 여전히 주권자의 신민들로 이루어진 집합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중농주의자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18세기 경제학자들의 등장과 더불어 인구는 일련의 절차들, 그 절차들 안의 자연적인 부분에서부터 출발해 그 안에서 관리되어야 할 절차들의 집합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이것을 인구의 자연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구의 자연성은 세 가지 방식으로 등장합니다. 먼저 인구는 일차적인 소여가 아니며, 일련의 변수에 의존합니다. 인구는 무역, 부의 순환, 전통, 종교, 식량의 상태에 의해 변화합니다. 이 말은 인구가 주권자의 행동에 훤히 노출된 투명한 존재도 아니고, 인구와 주권자의 관계가 단순히 복종과 거부같은 것일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인구는 주권자의 법률적 의지가 들어가기 힘든 자연적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인구는 설명·고찰·분석·계산이 가능한 동인과 기술에 따라 변화합니다. 이러한 요인은 얼핏 인구 자체와 동떨어진 것이나, 이러한 요인들의 상호작용이 있어야 효과적으로 인구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기술의 등장을 보게 됩니다. 인구와 동떨어진 것으로 보이나 사실상 인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을 포착하는 기술입니다. 저는 권력의 조직화·권력행사의 합리화에 매우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이처럼 침투할 수 있게 된 인구의 자연성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인구는 서로 완전히 다른 개인으로 이루어져있으나, 그 행동의 원동력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욕망입니다. 욕망은 개인의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어떤 이익을, 인구 자체에 이로운 무엇인가를 생산할 수 있게 해줍니다. 욕망의 작동을 통한 집단적 이익의 생산, 바로 이것이 인구의 자연성뿐만 아니라 이 자연성을 관리하는데 사용되는 수단들이 지닐 수 있는 인위성을 특징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에 근거해 인구의 관리를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그때까지의 구상과는 완전히 상극을 이루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중세 법학자들부터 자연법 이론가들에 이르기까지 주권자란 개인의 욕망에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자였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어떻게 욕망을 거스르는 ‘안 돼’를 정당화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러나 중농주의자들에 의해 전혀 다른 사고방식이 형성됩니다. 이제는 ‘안 돼’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돼’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사고방식 말입니다. 즉 욕망을 자극하고 부추겨 그것이 필연적으로 이로운 효과를 낼 수 있게 만드는 모든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공리주의 철학의 모태가 되었고, 곧 인구의 통치를 지지하는 이론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구의 자연성은 여러 현상의 항구성에서도 출현합니다. 인구 현상은 가변적이고 불규칙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알고 보면 규칙적입니다. 이는 현상을 관찰하고 성찰하며, 통계화하면서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인 존 그라운트는 사망률표에서 매년 사망자의 수가 일정하며, 사망을 유발하는 사고의 비율이 일정하다는 것을 확증했습니다. 결국 인구는 일련의 요소로 이뤄진 집합으로, 상수와 규칙성을 목격할 수 있는 집합입니다.

즉 인구의 효과를 고려하거나 적절하게 만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현상입니다. 즉 권력기술의 영역에 일종의 자연이 들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연은 주권자가 거기에 대해 법을 부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가 그 안에서 통치의 절차를 펼쳐야 하는 그런 자연입니다. 다시 말해 인구는 생명존재의 일반 체제에 있으나, 숙고되고 계산된 변환이 장악할 수 있는 표면을 제공해주는 요소의 집합입니다. 요컨대 인구란 한 편으로는 ‘인종’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공중’입니다. 이 모든 것은 권력메커니즘에 적합한 요소들이자, 그 내부에서 사람이 움직여야만 하는 적절한 공간이란 의미에서 새로운 영역입니다.

 

지식 내부의 변환조작자로서의 인구

 

인구라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 출현했고, 이와 함께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다른 영역의 계열, 지식을 살펴보면 인구라는 동일한 문제가 지식의 계열 전체에서 등장합니다.

이전까지 재정 담당자들에게는 부의 수량화, 순환의 계량화, 통상의 파악이 중요했습니다. 즉 경제분석은 부의 분석이었습니다. 이와 달리 인구라는 새로운 개념이 이론의 영역과 경제적 영역에 들어왔을 때, 즉 생산자, 소비자, 소유자, 비소유자, 이윤 창출자 등 특정 역할이 부의 분석에 도입됐을 때 더 이상 부의 분석이 행해지지 않고 정치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지식의 영역이 열리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자연사의 본질적인 역할은 생명존재의 특성을 분류해 일람표에 배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8-19세기 초 일어난 일련의 변화 때문에 분류상의 특징을 일치시키던 일이 유기체의 내적 구성을 분석하는 것으로, 그 다음에는 유기체와 생명환경의 구성, 조정 관계로 지식의 초점이 옮겨갔습니다. 결국 라마르크-퀴비에-다윈으로 넘어가는 와중에 연구의 초점은 유기체와 환경에서 개체군(인구)으로 옮겨갔습니다. 따라서 생물체의 분석에 있어 개체군이라는 문제설정은 자연사에서 생물학으로의 이행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일반문법은 언어기호 및 주체, 그리고 표상이 맺는 관계의 분석입니다. 그러나 문법에 대한 일련의 조사가 인구와 언어의 관계를 밝혀내고, 인구가 역사 속에서 그 자신이 아니라 언어의 고유한 규칙성에 따라 언어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었는지 알아내는 것으로 연구의 초점을 설정했을 때 비로소 문헌학이 탄생했습니다. 이렇듯 일반문법이 문헌학으로 옮겨갈 수 있게 된 것은 다시 한 번 주체-인구의 도입 때문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강의 정리

 

당시까지의 모든 지식체계를 뒤흔들었던 조작자를 찾으려면 인구를 보아야 합니다. 즉 권력기술과 그 대상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해 인구와 그 특유한 현상을 현실의 영역으로 뚜렷하게 드러내는 식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이렇듯 인구가 권력기술의 상관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만 지식의 영역 전체가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인구가 근대 권력메커니즘의 특권화된 상관물로서 유지되었던 것은 이와 같은 지식이 끊임없이 새로운 대상을 다듬어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인간을 생명존재, 노동하는 개인, 말하는 주체로 분석하는 인간과학을 통해 등장한 인간은 인구가 권력의 상관물이자 지식의 대상으로 등장한 사실에 의거해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결국 19세기에 고찰된 인간은 인구의 한 형상입니다. 기존까지 권력의 문제가 주권 이론 내에서 정식화되었을 때 주권 앞에는 인간이 아닌 법권리의 주체만이 존재했습니다. 반대로 통치나 통치술 앞에 인구가 있음에 따라 인간과 인구의 관계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