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안전·영토·인구] 2강

권순모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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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발제한  내용에서  오타 수정해서 올립니다.


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 2강. 1978년 1월 18일

2020.5.19. 윤세병

○ 중상주의: 16~18세기, ‘만인 대 만인의 투쟁’(홉스), 수출산업 육성과 보호무역주의, 무역 차액으로 자본 축적, 콜베르와 리슐리유(1강 39~42)/도시의 방벽과 외부 세계와의 단절

○ 중농주의: 18세기 후반, 농업 국가 프랑스, (농업)노동의 가치, 자유방임(“하게 내버려두다”), 낭트(1강 43~48)/환경, 순환/“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생명관리정치-단지 생명의 억압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조절하고 통제하며 통치할 수 있게 하는 기능들)

○ 자유주의: 애덤 스미스 󰡔국부론󰡕(1776)


■ 안전장치의 일반적 특징(2): 사건과의 관계, 통치술의 우연과 관리

□ 17~18세기의 식량난 문제, 중상주의자에서 중농주의자까지
식량난이란 “국민을 존속시키는 데 필요한 양의 곡물이 현재 불충분한 것”입니다. 식량난이라는 현상이 가장 직접적이고도 가장 명백한 결과는 우선적으로 도시환경에서 나타납니다. 식량난은 도시환경에서 출현하고 거의 즉각적이고도 아주 높은 개연성으로 반란을 야기 시킵니다. 식량난은 인구 쪽에서 보면 재앙이고, 정부쪽에서 보면 파국입니다.
식량난이 출현하는 배경을 놓고 두 범주를 통해 다뤄졌습니다. 첫 번째는 행운과 불운이라는 유구한 그리스-로마적 개념입니다. 요컨대 식량난은 순수한 상태의 불운입니다. 둘째로 인간의 악한 본성입니다. 인간의 탐욕, 즉 획득의 욕망, 더 획득하고자 하는 열망, 이기주의 등이 식량난 현상을 가중시키는 매점매석 현상을 야기 시킵니다.
(17세기 초~18세기 초까지 유럽의 경제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통치·관리 기술인 중상주의는) 식량난이 일어났을 때 이를 저지하거나 근절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예방하는, 즉 사전에 식량난이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체계입니다. 가격과 비축, 수입, 경작 등 여러 가지 것들이 제한의 대상이 됩니다. 제한체계뿐만 아니라 강제 체계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정해진 양을 파종하도록 사람들을 강제하고, 반대로 특정한 작물의 재배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제한, 강제, 항구적 감시 등의 사법적·규율적 체계 전체는 무엇을 위해 조직되는 것일까요? 곡물이 가장 싼 가격에 매각되도록 만들어 도시 사람들이 가장 싼 가격으로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 즉 결국 도시 사람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임금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체계는 곡물 가격을 될 수 있는 한 계속 낮춤으로써 우선적으로 발생한 결과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또한 농민들이 이듬해에 파종을 적게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파종이 저조해지면 약간의 기후 변화만 있어도 곡물의 양이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기준치보다 덜어져서 이듬해부터 식량난이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 체계의 빗장을 풀기 위해 18세기에 무역과 곡물 순환의 자유가 경제적 통치의 근본 원칙으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한 국가에서 획득될 수 있는 유일한, 혹은 거의 유일한 순 이익은 농부들의 이익이라는 중농주의 학설이라는 경제사상과 경제 분석을 기초하는 행위 내에서 말입니다. 우리는 곡물의 자유로운 순환이라는 원칙을 이론의 장에서 발생한 일의 결과로도 해석할 수 있고, 권력테크놀로지가 변하는 과정에서 변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게는 근대 사회의 전형적 특징 중 하나로 보이는 안전장치라는 기술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에피스드로도 보입니다. 몇몇 국가들은 중농주의자들보다 훨씬 앞서 곡물의 자유로운 순환이 보다 많은 이윤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식량난이라는 재앙에 맞서는 데 훨씬 더 나은 안전메커니즘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 사건 취급 방식에서 안전장치와 규율메커니즘의 차이
프랑스에서는 1763년 5월의 칙령과 1764년 8월의 칙령을 통해 곡물의 자유가 거의 완전히 확립합니다. 이것은 중농주의자들의 승리였지만 구르네의 제자들처럼 직접적인 중농주의자가 아니면서도 이 대의를 지지한 모든 사람의 승리였습니다. 구르네의 제자로서 1763년에 󰡔곡물거래의 속성에 대한 어느 도매상의 서신󰡕을 출간한 아베이유는 이 텍스트의 영향력 때문에 대부분의 중농주의자들을 규합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요컨대 아베이유는 당대의 경제사상사에서 전환점같은 위치를 대표합니다. 저는 이 텍스트를 권력테크놀로지의 계보학이라는 차원에서 검토하려고 합니다.
아베이유나 중농주의자들, 그리고 그들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법적·규율적 체계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피해야만 하는 것, 일어나기 전에 피해야만 하는 것인 악, 즉 곡물 부족과 가격상승이 전혀 악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이 현상을 더 이상 도덕, 단순한 선악, 피해야 하는 것인가 아닌가 등의 견지에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베이유는 식량난이 사실상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식량난은 인구가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 완전히 총체적으로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인구가 모두 죽을 것이기 때문이죠. 식량난은 며칠이나 몇 주 안에 사라질 것이고, 식량 부족으로 인구가 소멸한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식량난은 ‘공상이라고 아베이유는 말합니다. 흉작일 때일수록 밀의 양이 더 많아지리라는 것입니다. 특정한 시점에서의 흉작은 부족-가격 폭등이라는 현상을 야기하지만 바로 이 현상이 일련의 메커니즘을 통해 이 현상 자체를 바로잡고 벌충하고 멈추고, 최종적으로는 소거하는 수단을 마련해 준다는 말입니다. 곡물 순환의 순수한 자유라는 기술 안에서는 식량난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아베이유 말처럼 식량난은 공상의 산물인 셈이죠.

□ 새로운 통치 합리성과 ‘인구’의 탄생
“사태가 일어나게 내버려둬라”를 수단 삼아서 식량난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저런 시장, 혹은 시장 전체에서 가격폭등-부족이라는 이 현상이 일어나고 전개되도록 방치하는 것입니다. 이 현상,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놔둔 이 현실 자체가 틀림없이 스스로를 억제하고 규제하리라는 것이죠. 일부 사람들은 굶주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굶어 죽도록 방치함으로써 우리는 식량난을 공상의 산물로 만들 수 있고, 예전 체계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이 식량난이 총체적인 재앙으로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식량난이라는 사건은 양분됩니다. 총체적 재앙으로서의 식량난은 소멸하지만, 일정한 개인들을 죽게 만드는 식량부족은 사라지지 않을 뿐 아니라 소멸해서는 안 되는 것이 되는 셈입니다. 아베이유의 텍스트 안에는 매우 흥미로운 구분법이 있습니다. “재앙으로서의 식량난은 공상의 산물이다. 만사가 이렇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인구 중의 훌륭한 요소(구성원)이 아니다. … 실제로 사람들은 인구의 요소로 잘 행동하고 있다. … 만사가 멈춰 버리고 결국에는 반란이 일어나거나 매점매석이 일어난다. 혹은 매점매석과 반란이 동시에 발생한다.” 여기서 아베이유는 이런 사람들이 사실상 인구에 속해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이들은 무엇인가? 이들은 인구가 아니라 인민이다. 인구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인구의 수준에서 봤을 때 자신이 집단적 대상-주체로서의 인구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자신이 그 외부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인민이다. 그러므로 인민이란 스스로 인구이기를 거부한 채 이 체계를 마비시키는 사람들인 것이다.” 인구의 조절에 저항하고 인구를 최적의 수준에서 존재, 유지, 존속시키는 장치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인민이라고 말하는 분할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인민과 인구의 대립쌍은 아주 중요합니다.

□ 자유주의에 관한 결론: 통치이데올로기와 기술로서의 자유
안전장치와 규율메커니즘을 비교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규율은 구심적이라고 말입니다. 규율은 특정 공간을 분리해내고 (인구의) 특정부분을 한정하는 한에서 기능합니다. 규율은 집중시키고, 중심을 정하고, 닫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제가 복원해보려 했던 안전장치는 거꾸로 언제나 바깥을 향해 확대되려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원심적입니다. 여기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요소가 통합됩니다. 두 번째 큰 차이로 규율은 모든 것을 규제합니다. 그러나 안전장치는 방임합니다. 무슨 행동이든 하도록 놔둔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수준에서 방임이 꼭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규율메커니즘은 허용과 금지, 아니 차라리 의무화된 것과 금지된 것으로 (모든 것을) 끊임없이 코드화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규율메커니즘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것’입니다. 요컨대 법은 금지하고, 규율은 명령합니다. 본질적으로 안전은 금지도 명령도 하지 않지만, 사실상 몇몇 금지와 명령의 도구를 활용해 현실에 대응하는 기능을 합니다. 이렇듯 현실의 요소들로 이뤄지는 조절이야말로 안전장치에서 근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방임하고 사건을 일어나는 대로 맡겨두며, 사건을 내버려둔다는 것, 즉 “하게 내버려두고 일어나도록 내버려둬라”는 자유주의의 유희는 본질적, 기본적으로 현실이 그 자체의 법칙, 원리, 메커니즘에 따라 발전하고 굴러가고 그 자체의 경로를 밟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자유라는 이데올로기, 자유의 요구가 경제의 근대적, 혹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자본주의적 형식이 발전할 수 있게 해준 요건들 중 하나였습니다. 통치 이데올로기이면서 통치기술이기도 한 이런 자유는 권력테크놀로지의 변이와 변용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더 자세하게 말해보면, 자유란 당대에 전개된 안전장치의 상관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