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카프카, 마이너문학을 위하여] 7장 연결장치

권순모
20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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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마이너 문학)7장 연결장치 * 발제: muse



여자들과 예술가들

* 내재 장에서의 욕망의 연결을 증가시키는 방법: 특별한 항들이 평범한 계열들에 분배되며 계열들이 연쇄, 변형, 증식, 한 선분이 다른 선분에 붙여지거나 다른 방식에서 탄생하는 방식을 표시

** 젊은 여자들: K가 『성』에서도 『소송』에서도 마주치는 젊은 여자 유형( k의 여자친구 엘자는 은행선분에 묶여서 k의 소송에 대해 알지 못하고 k도 그녀와의 관계에서는 소송생각은 하지 않고 은행 생각만 한다. 세탁부는 공무원 선분에 묶여있고 레니는 변호사 선분에 묶여있는 등등.) 그 여자들 각각은 여러 선분들의 접합부에 있을 뿐만 아니라(가령 변호사와 피고 블로크와 K를 동시에 애무하는 레니가 그렇다), 각자 이런저런 선분에서의 자신의 관점에서 본질적인 것과 ─ 즉 연속적인 것의 무제한적 역량으로서 성(城) 또는 소송과 ─ “접촉하고” “연락하고” “인접해” 있다. 이 여자들은 사법과 욕망과 젊은 여자 혹은 소녀의 동일성을 가장 밑바닥에서 보여준다.

** 소녀 또는 젊은 여자의 역할: 그녀가 선분을 끊고, 그것을 풀어지게 하고, 그녀가 참여하고 있는 사회적 장을 달아나게 하고, 그것을 무제한적인 선 위로, 욕망의 무제한적 방향으로 달아나게 할 때 절정에 이른다. 학생이 세탁부를 범하고 있던 법정의 문으로, 세탁부는 모든 것 ─ K, 판사, 청중들, 전 séance 자체 ─ 을 달아나게 한다. 레니는 K를 숙부와 변호사와 국장/과장이 이야기하고 있던 방에서 달아나게 하지만, K는 자신의 소송을 더 오래 끌고 감으로써만 달아난다. 뒷문을 발견하는 것, 멀다고 생각했던 것의 인접성을 드러내고, 연속적인 것의 힘/역량을 복원하거나 창출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젊은 여자다.

**젊은 유형의 여자들의 드러난 목, 레니의 동물-되기의 흔적으로서 손가락에 물갈퀴

** 젊은 여자들의 더 특수한 혼합의 양상 : 그 여자들은 부분적으로 누이들이고, 부분적으로 하녀들이고, 부분적으로 창녀들이다. 그 여자들은 모두 반(反)부부적이고 반(反)가족적이다. 단편소설에서 「변신」의 누이는 곤충-그레고어의 하녀가 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그레고어가 모피 입은 부인의 초상화에 너무 애착/집착을 보였을 때만 그를 배반하는 등등 (장편소설에서는 이 젊은 여자들의 발전이 목격된다. 『소송』과 『성』에서는 다양하게 누이와 하녀와 창녀의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는 이런 여자들이 늘어난다. 성의 하인들의 창녀 올가 등등. 의도적으로 자기가 마이너이기를 바라고, 그로부터 자신의 전복의 힘을 끌어내는 문학의 기획 속에, 마이너한 작중인물들의 마이너한 자질들.

예술의 반-미학

세 가지 자질은, 자유의 세 가지 정도/등급 ─ 운동의 자유, 언표의 자유, 욕망의 자유 ─ 로서, 탈주선의 세 가지 구성요소에 조응/부합한다. 1) 누이들 : 이들은 가족에 속해 있지만 가족 기계를 탈주시키려는 의사가 가장 많다. (카프카는 언제나 문학적 창조를 [사막 같은] 황량한 세계의 창조로 정의했는데, 그 세계의 주민은 그의 누이들이었고 그 세계에서 그는 운동의 무한한 자유를 누렸다.) 2) 하녀들, 말단 직원들 등등 : 이들은 이미 관료 기계에 붙잡혀 있지만 관료 기계를 탈주시키려는 의사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다. 하녀들의 언어는 의미작용적이지도 음악적이지도 않고 집단적 배치 혹은 집단적 신음/탄식의 일부를 이룬다.

표현의 유동하는 순수 질료. 이로부터 마이너하고, 그런 만큼 문학적 창조에 순종하는 인물들의 자질이 유래 3) 창녀들 : 카프카가 보기에 이들은 가족 기계, 부부 기계, 관료 기계 등 모든 기계들의 교차점에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은 그 만큼 더 그 기계들을 탈주시킨다. 그들이 제공하는 에로틱한 숨 막힘 혹은 호흡곤란은 단지 그들의 중압감과 무게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탈영토화의 선 위로 떠밀리는 것들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요소들 중 어떤 것도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지 않고, 가능하면 동일인 안에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있어야 카프카가 꿈꾸는 이상한 조합을 형성할 수 있다. 그녀를 하녀로 생각하되, 그만큼 누이로 생각하고, 또한 창녀로도 생각하기.

(마조히스트들과 카프카주의자)

** 카프카 작품의 마조히즘 적인 요소: 악마와의 협정, 즉 혼인 계약에 반대하고 그것을 쫓는 마조히즘적 “계약”, 흡혈귀 같은 편지 애호와 편지의 필요성(때로는 마조흐가 검열한 편지들, 때로는 신문에 실린 구인 광고들, 드라큘라-마조흐), 동물-되기(예컨대, 마조흐의 작품에서, 아버지나 어머니와 정말 아무 관계가 없는 곰-되기 또는 모피), 하녀와 창녀에 대한 애호/취향, 매우 불안한/괴로운 감옥 현실(이는 단지 마조흐의 아버지가 교도소장이었다는 이유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 마조흐가 수감자들을 보았고 그들을 자주 만났기 때문에 설명된다 : 최대한 멀어짐 혹은 과도한 인접성을 얻기 위해 스스로 수감자가 되는 것), 역사적 투자(마조흐는 긴 억압의 역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취합하거나 집약해서 세계사의 순환주기와 선분들을 글로 쓸 생각이었다), 확고한 정치적 의도 : 보헤미아계 마조흐도 체코 태생 유태인 카프카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제국의 소수민족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마조흐는 폴란드나 헝가리의 유태인의 상황에 매료된다.

**조합 공식에서 이 분열-근친상간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경증적·오이디푸스적 근친상간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대립된다. 신경증적 근친상간은 어머니와 관계, 어머니는 영토성 또는 재영토화다. 분열-근친상간은 누이와 관계를 하는데, 이때 누이는 어머니의 대체물이 아니라, 계급투쟁 반대쪽에서, 하녀와 창녀들 쪽에서, 탈영토화의 근친상간이다. 오이디푸스적 근친상간은, 그것을 금지하는 초월적인 편집증적 법에 대응하고, 그 자체가 이 법을 위반한다 ─ 그것을 좋아하면 직접 위반하고 부득이할 경우에는 상징적으로 위반한다 : 미친 아버지(카프카에 따르면, 가장 정직한 아버지 크로노스), [자식을] 과보호하는 어머니, 편집광이 되기 전 신경증자 아들, 그리고 모든 것은 부부-가족 사이클에서 다시 시작한다 ─ 분열-근친상간은 반대로 내재적인 분열-법에 대응하고, 순환적 재생산 대신 탈주선을, 위반대신 진행을 형성한다. 오이디푸스적 근친상간은 사진, 초상화, 유년기 기억과 연관된다. 분열-근친상간은 반대로 소리와 연관되고, 소리가 흘러가는 방식, 그리고 기억/추억 없는 유년기 블록들이 아주 생생하게 현재 속으로 들어가서 현재를 활성화하고 재촉하고 그것의 연결/접속을 늘리는 방식과 연관된다. 분열-근친상간은, 하녀와 창녀들, 그리고 그들이 사회적 계열들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매개로 해서 최대한의 접속, 다의적 외연을 갖는다 ─ 이는 연결/접속의 제거/폐지, 유니크한 시니피앙, 가족으로의 되돌림, 사회적·정치적 장 전체의 중화에 의해 정의되는 신경증적 근친상간과 대립한다. 대립은 「변신」에서, ‘오이디푸스적 근친상간의 대상으로서 사진에 등장하는, 목이 완전히 덮인 부인’과 ‘분열-근친상간의 대상으로서 목이 드러나 있고 바이올린을 켜는 누이’ 사이에 나타난다

***이 여자들의 연결 기능: 그 여자들은, 사람들이 다가가고 멀어지는 신호로 기능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여자들 각각은 성이나 소송에서 자신의 계열, 자신의 선분을 에로틱하게 만들어 그것을 재촉했다. 그리고 다음 선분은 다른 젊은 여자의 작용으로만 시작되고 끝나고 재촉된다.

**이 여자들에 관한 두 가지 잘못된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는 막스 브로트의 해석으로, 그에 따르면 이 여자들의 에로틱한 성격은 아브라함의 희생 류의 신앙의 역설의 외적/표면적 기호일 뿐이다. 다른 해석은 바겐바흐의 해석으로, 그는 이 여자들의 에로틱한 성격을 실제로 에로틱한 것으로 인정하지만, 그것을 K를 지체시키거나 K가 자신의 과제를 벗어나게[게을리 하게] 하는 요인으로 본다. 에로틱한 여자들은 소송에서도 성에서도 일탈시키거나 지체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 여자들은, 각자가 자기 식으로 표시하는 영토들(레니의 “후추 냄새”, 올가의 집 냄새 : 동물-되기의 잔재/흔적)을 빠르게 계기시키면서 K의 탈영토화를 재촉한다.

**분열-근친상간은 또 다른 요소, 일종의 동성애 토로: 오이디푸스적 동성애와 대립적으로, 그것은 분신이나 형제나 관료들의 동성애다. 이 동성애의 표시/지수는 카프카에게 소중한 유명한 착 달라붙는 옷에서 발견된다. K와 프리다의 사랑을 둘러싸고 있는, 『성』에서도 분신들 아르투르와 예레미아스는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빠르게 나아가고 하급 하인들은 제복이 아니라 “농민이나 노동자는 입을 수 없는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다. 『소송』 초반부의 두 명의 경찰은 “착 달라붙는 검은 옷을 입고 있는데 이 두 명의 경찰은 ”가죽 통옷“을 입고 있는 형리에게 매질을 당하는데 이 옷은 미국의 사도마조히스트들이 입는, 주름, 버클, 둥근 주름 장식 등이 있는, 가죽이나 고무로 된 옷이다. (그러나 관료 분신이나 형제 분신들 자체는 단지 동성애 지수로만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성애 토로는 이 지수에 의해 단지 예고만 되는 다른 목적성이 있다. 「칼다 철도의 추억」에서 화자는 수사관과 명시적인 동성애 관계에 있다. 그러나 이 관계는 수사관이 예술가로 대체될 때만 진짜 목적을 발견한다. 『소송』에서의 티토렐리와 「어떤 꿈」에서 예술가

** 예술가도 두드러진 항으로 기능한다. 예술가와의 동성애 관계는 젊은 여자나 어린 누이들과의 근친상간 관계와 연결되어 있다(『소송』에서 성도착자이자 관음증자인 소녀들의 계열이 그렇다).

**세 가지 능동적 요소: 1) 첫 번째 요소는 평범한 계열들로, 그것들 각각은 기계의 일정 선분에 대응하고, 그것의 항들은 동성애 지수를 가진 증식하는 관료 분신들로 구성된다(예컨대 문지기들의 계열, 하인들의 계열, 관리/공무원들의 계열, 『성』에서 클람의 분신들의 증식을 참조하라). 2) 두 번째 요소는 젊은 여자들의 두드러진 계열로, 언제나 원자가/결합가와 연결의 증가, 다른 선분으로 내달리는 이행이 있다( 에로스화 또는 근친상간의 기능). 3) 세 번째 요소는 예술가의 특이한 계열로, 거기에는 명시적 동성애가 있고, 모든 선분을 벗어나고 모든 연결을 휩쓸어가는 연속적인 것의 역량이 있다 : 젊은 여자들은, 국지적 빛이 언제나 뒤에서, 양초나 촛대에서 오는 가운데, K를 선분에서 선분으로 흘러가게 함으로써 그의 탈영토화를 보증/수행하거나 “돕는”데 반해, 예술가는, 빛이 폭포처럼 앞에서 오는 유동적이고 연속적인 탈주선을 보증한다. 젊은 여자들은 기계의 부품들의 주요 연결 점들에 있었던데 반해, 예술가는 이 모든 점들을 모아서/결합해서, 그것들을 내재 장을 뒤덮고 심지어 그것을 앞서가는 자신의 특수 기계 속에 늘어놓는다.

**계열들 또는 선분들 사이의, 두드러진 점들과 특이점들 사이의 연결 점: 미적 인상들처럼 보인다. 대체로 감각적 질들, 즉 냄새, 빛, 소리, 접촉 또는 상상력의 자유로운 형상들, 꿈과 악몽의 요소들이며, ‘우연’과 연결되어 있다. (「대리인」이라는 단장(斷章)에서는 세 개의 연결 점이 개입. 왕의 초상화, 아나키스트가 내뱉었음직한 문구(“어이, 너, 거기, 망나니 같은 놈!”), 민요(“작은 램프가 타는 동안”). 이 점들이 연결 점으로 개입하는 것은, 그것들이 분기를 결정하고, 계열들을 증식시키기 때문이고, 그것들이 다소 가깝거나 다소 먼 선분들을 형성하면서 수많은 다의적 조합에 들어갈 수 있음을 대리인이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연결 점들을 그것들 안에 존속하는 미적 인상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큰 잘못일 것이다.

***카프카의 노력 전체는 심지어 반대 방향으로까지 나아가며, 그것은 그의 반(反)서정주의, 반(反)심미주의 공식이다 :세계에서 인상을 추출하는 대신 “세계를 움켜잡기”, 인상들 속에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 사람, 사건들 속에서 ─ 실재하는 것에다 직접─ 작업하기. 은유를 죽이기. (카프카의 초기 에세이들에는 미적 인상, 감각, 상상 등이 여전히 독자적으로 실존하지만 카프카의 진화 전체는, 더 이상 미적 인상들을 경유하지 않는, 절제, 하이퍼리얼리즘, 기계주의를 위해 그러한 것들을 지우는 데 있다.)

**주관적 인상들은 연결 점들로 체계적으로 대체된다. 이 점들은 여성적 인물들이나 예술적 인물들과 일치하지만, 이 모든 인물들은 사법 기계의 객관적으로 규정된 부품들 혹은 톱니바퀴들로서만 실존한다.

***예술가는 심미가(審美家)와 아무 관련이 없으며, 예술 기계, 표현 기계는 미적 인상과 아무 관련이 없다. 예술 기계 혹은 표현 기계의 공식은 어떤 미적 의도와도 독립적으로 정의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계열들에 혹은 계열들의 한계에 객관적으로 개입하는 여성적 인물들과 예술적 인물들도 넘어서서 정의되어야 한다.

***카프카의 예술 기계의 본성: 그것은 독신 기계, 오직 독신 기계일 따름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더 다양한/다중적 연결로 사회적 장에 접속되는 기계다. 미학적 정의가 아니라, 기계적 정의. 독신(獨身)은 근친상간 욕망과 동성애 욕망보다 더 광대하고 더 강렬한 욕망의 상태다. 추락에서 마저 그는 강도들의 생산이다(“독신자에게는 오직 찰라만 있다.”) 그는 ‘탈영토화된 자’, 중심도 “큰 소유 콤플렉스”도 없는 자이다. 그의 여행은 “온통 요란한 효과로 둘러싸인” 여객선을 타고 하는 부르주아의 여행, 패키지 관광이 아니라, “서로 부딪치며 서로를 흘러가게 하는 몇 개의 나무 조각을 타고” 하는 분열-여행이다. 그의 여행은 “산 속의 풍향계/바람개비의 그것과 같은” 탈주선이다. 그리고 이 탈주는 제자리에서 하는 탈주, 순전히 강도적인 탈주일 것이다. 가족도 없고 부부관계도 없기에 독신자는 그만큼 더 사회적이고, 사회적으로 위험하고, 사회-배반적이며, 혼자만으로 집단적이다. “더러운 짧은 편지”의 그것처럼 최저 강도량과 무제한적인 작품의 그것처럼 최고 강도량의 생산, 이러한 강도량의 생산을 그는 사회적 신체 내에서, 사회적 장 자체 내에서 직접 수행한다. 하나의 동일한 소송. 최고의 욕망은 고독을 욕망함과 동시에 모든 욕망 기계들에 연결되기를 욕망한다.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는 없는 마이너 문학의 실재 상태에 의거하는 표현 기계(독신기계)의 객관적 정의다. 사회적 신체 내에 강도량들의 생산, 계열들의 증식과 재촉, 독신자 주체가 유도하는 다의적이고 집단적인 연결들, 이것 외에 다른 정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