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정신의학의 권력] 2강

권순모
2020-12-04
조회수 101

《정신의학의 권력》 2강. 1973년 11월 14일

 


치유의 무대: 조지 3세, ‘주권의 거시물리학’에서 규율적 ‘권력의 미시물리학’으로

광인의 새로운 형상

치유의 무대에 대한 소백과사전

최면의 실천과 히스테리

정신분석학의 무대, 반정신의학의 무대

킹슬리 홀의 메리 번즈

광기의 취급과 진실의 계략: 조지프 메이슨 콕스


 

1. 치유의 무대: 조지 3세, ‘주권의 거시물리학’에서 규율적 ‘권력의 미시물리학’으로

󰋪 필립 피넬의 무대: 근대 정신의학 혹은 정신의학 최초의 무대

∙ 이전까지는 광인들의 난폭함을 방지하기 위해 이들을 사슬에 묶어두었는데, 피넬은 비세트르라는 구빈원에서 광인들을 매어놓았던 사슬을 끊어버림. 광인들은 풀려나자마자 피넬에게 고마움을 표하게 되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치유의 길에 접어듦.

󰋪 피넬 이전 또 하나의 정신의학 무대, 조지 3세에 대한 프랜시스 윌리스의 치료

∙ 피넬은 자신의 책에서 영국 왕 조지 3세의 일화를 상세히 소개.


조지 3세가 조광증에 걸리자 정확한 치료를 위해 그를 “지도・감독하는 자”(의사)에게 제한 없는 권한이 부여. 정신이상자(조지 3세)는 가족 및 그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외딴 곳에 안치. 자해하지 못하도록 창과 벽이 매트리스로 덮인 방에 홀로 갇힘. 지도・감독하는 자는 이 정신이상자에게 당신은 더 이상 군주가 아니라고 선언. 그에게는 헤라클레스 만한 몸집을 가진 두 명의 몸종이 시중을 들기 위해 주어졌지만, 이들에게는 시중드는 일 이외에 정신이상자가 자신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임무가 부여됨. 어느 날 정신이상자가 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을 방문한 주치의에게 오물과 분뇨를 문댐. 그러자 몸종 한 명이 말없이 정신이상자의 허리를 잡아 제압하고는 힘껏 매트리스 더미에 넘어뜨린 후 옷을 벗겨 바지로 오물을 닦아내었고 옷을 갈아입힌 뒤 위엄 있게 그를 바라보며 방을 나가 자기 자리로 돌아감. “이런 징계가 수개월 동안 이따금 반복되고 다른 치료수단의 도움도 받아 재발의 위험이 없는 확고한 치료를 할 수 있었다.”


∙ 이 무대의 구성요소

- 폐위의식(폐위의 선언): 권위의 박탈자인 의사가 왕을 향해 “당신은 더 이상 군주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선언. 이 선언으로 왕은 무력함으로 환원.

- 매트리스: 군주제의 모든 작동을 괄호 안에 놓이도록 하는 장치. 외부 세계로부터 왕을 격리,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접하지 못하게 하고 명령을 내릴 수 없도록 막음.

- 의사(윌리스): 무대에 나타나지 않음. (중간에 등장하는 주치의는 옛 주치의)

- 현시되는 권력의 행사자: 헤라클레스만한 옛 몸종 두 사람. / 몸종들은 원래 군주의 욕구와 관련된 시중을 드는 사람이지만, 이 무대에서 몸종들은 왕의 의지에 따르지 않으며, 이들이 시중드는 이유도 왕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님(49쪽).

∙ 이 무대의 효과: 규율권력에 대한 주권권력의 대립과 복종

- 다른 성격의 폐위: 폐위라고 하지만 다른 군주의 지배를 받을까 염려하는 리처드 3세와도, 권력 박탈 후 세상을 떠돌게 되는 리어왕과도 구분됨. 조지 3세는 그의 광기로 인해 “주권이 아닌, 그것과는 모든 면에서 대립되는 권력”, “익명의 권력, 이름도 얼굴도 없는 권력, 여러 사람에게 분배되어 있는 권력”이자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규칙의 집요함을 통해 현시되는 권력”, 곧 규율권력 아래 놓이게 됨.

- 규율권력의 성격: 다수이고 창백한 무색의 익명적 권력 / 개인의 현란한 힘의 상징을 통해 현시되는 주권권력과 달리 규율권력은 은밀하고 분산적 / 규율권력은 망 내에서 작동하는 권력이며, 침묵 속에서 이 권력을 행사당하는 자들이 보여주는 복종성 내에서만 가시화 / 누군가의 권력을 신성화하거나 눈에 보이고 이름이 있는 한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 결코 아니라 그 표적에 대해서만, 즉 왕위를 박탈당하고 이 새로운 권력을 통해 “온순하고 순종적”이 되어야 할 당사자인 왕의 신체 및 인격 자체에 대해서만 효과를 발휘.

- 이 무대에서 본질적인 것은 어느 한 규율권력에 대한 한 주권권력의 대립과 복종, 그리고 결합(?)

∙ 도상학적으로 나타난 주권권력과 규율권력의 역전

- 전통적으로 왕과 시종은 두 가지 형태로 소묘. (1)헤라클레스 같은 왕: 갑옷을 들고 무기를 든 전사로서의 왕. 여기에서 왕은 자신의 절대 권력을 과시하고 그것을 느낄 수 있게 함. 말하자면 헤라클레스 같은 풍모를 지닌 자. 그리고 이런 왕의 옆과 아래 이 압도적 권력에 따른 자로서 복종, 약함, 패배, 예속 등을 표상하는 인물이 놓임. (2)인간의 형상을 한 왕. 신체적 힘의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모든 징표를 결여하고 있으며 그의 힘의 상징만을 갖고 있는 왕. 왕가를 상징하는 옷을 입고, 홀과 황금 구슬을 쥐고 있으며, 병사 몸종 시종을 거느리고 있음. 여기에서 왕의 힘은 권력의 상징적 요소들을 매개로 침묵 속에 발휘됨.

- 피넬이 말한 조지 3세 사례에서도 동일한 (도상학적) 요소들이 발견되나, 완전히 이동되고 변형되어 있음. 왕은 야만적 힘을 가지고 있으나, 순종적이고 (1)의 도상을 활용한 소묘에서 보이는 속박된 노예의 상황에 처해 있음. 반면 그의 맞은편 시종들에게는 신중하며 규율화되어 있고 침묵하는 힘이 있음.

- 왕이 주치의에게 오물과 분뇨로 저항하는 장면도 상징적. 왕이 이제 가질 수 있는 무기는 자신의 배설물밖에 없는데, 바로 이 무기를 사용해 주치의에 대항. 오물과 분뇨를 이용한 폭동은 가난한 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자들의 몸짓. 낫과 몽둥이조차 가지지 못한 자들의 몸짓. 이렇게 왕이 저항하고 있는 사이 몸종은 방에 들어와 왕의 허리를 잡아 침대로 던지고, 옷을 벗겨 씻기며, “오만하게 그를 바라보며” 나간 것.

⇨ 결국 푸코는 이 무대를 통해 주권권력의 거시물리학에서 규율권력의 미시물리학으로의 변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

 

2. 광인의 새로운 형상

󰋪 주권권력의 규율권력으로의 변환에서 중심적인 명제: “네가 미쳤다면 네가 아무리 왕이라도 더 이상은 왕일 수 없다” 혹은 “네가 아무리 미쳤다 해도 그로 인해 왕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푸코가 생각하기에 “너는 왕이 아니다”라는 명제야말로 정신의학의 중심.

󰋪 18세기 말까지 광기에 대해 이야기했던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왕으로 착각하기”와 “유리로 된 몸”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은 오류로서의 광기의 전형. 이후로 원시 정신의학의 실천에서,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것에 접속되는 모든 진실된 담론에서 “자신이 왕이라고 믿는 것”이 광기의 진정한 비밀로 간주.

∙ 자신이 왕이라고 믿는 것 자체가 문자라기보다는 그런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모든 증거에 대립시키며, 의학적 지식에 반해 주장하고 의사에게까지 강요하며 나아가 자신의 믿음에 의거해 다른 모든 확실함이나 지식을 거부하기에 자신을 왕이라고 믿는 것이 문제가 됨.

∙ 이 때문에 에티엔-장 조르제는 자신이 왕이라고 믿는 자와 관련해 “그의 생각을 어떻게 단념시킬 것인가”라는 문제를 정신의학의 중대한 문제로 제시.

∙ 이런 점에서도 조지 3세라는 왕의 무대를 강조하는 것은 정신의학 창설의 무대, 곧 피넬의 무대, 해방의 무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음.

⇨ 분명히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추정컨대 푸코는 자신의 왕이라고 믿는 것을 단념하게 하는 것이 근대 정신의학의 핵심과제이자 규율권력의 성격이라고 보는 듯하며, 따라서 실제 왕에게 왕이기를 체념시키면서 치료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조지 3세의 일화가 더욱 좋은 예가 된다고 생각한 듯.

 

3. 치유의 무대에 대한 소백과사전

󰋪 지하감옥에 묶여 있던 환자들의 사슬을 풀어준 피넬의 예와 조지 3세의 예의 유사성

∙ 감사의 부채, 그리고 부채의 환원: 피넬이 환자를 풀어줄 때 관건은 풀어주는 자와 풀려날 자 사이에 특정한 감사의 부채를 설정하는 것. 이 부채는 두 가지 방법으로 상환됨. (1)지속적이고 자발적인 순종을 통한 상환. (2)이렇듯 감사의 부채를 자발적이고도 지속적으로 갚고자 하면서 환자의 의지와는 별도로 의학적 권력의 규율에 복종하게 되고, 그 결과 치유의 길에 들어서게 됨. 이 상환은 환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기에, 정확히 말하자면 환자의 병이 의사에게 상환하는 것.

⇨ 피넬의 예는 인격적 관계(피넬에 대한 은혜, 감사함)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좋은 예라 할 수 있을지. 뒤에 나오는 메리 번즈의 예도 마찬가지. 익명적 권력이라 말할 수 없는 것 아닌지.

󰋪 조지 3세의 사례는 다른 일련의 무대와도 유사함. 즉 19세기 초반 25~30년 동안 정신의학 실천의 실제를 구성하고 있는 일련의 무대, 환언하자면 치료법들을 모은 일종의 소백과사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음.

∙ 정신이상 상태에 있는 군인이 군대로 돌아가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침실로 돌아가기를 거부하자 침대에 묶이게 됨. 이 상태로 일주일을 보낸 후 이 군인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주임이 순시하는 동안 복종적인 어투를 보이고 그의 손에 입을 맞추기까지 하며 병원에서 자유를 달라고 애걸하게 됨. 주임은 그가 정신을 찾은 것에 대해 기쁨을 미소로 표현하며 구속을 중지시킴.

∙ 자신이 전지전능하다는 독단적 생각에 잡혀 있던 남자에게 의사는 그가 실수를 저질러서 가혹하게 다룰 수 있게 될 기회를 노리다가 그가 간수에게 난폭하게 화를 내며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 것을 기회를 활용.

∙ 자신을 프랑스 혁명의 피해자이며 단두대형에 처해질 것이라 믿는 이도 구속상태에서 음식을 거부하며 물만 마심. 12일째 되는 날 간수는 더 이상 물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대신하여 기름진 수프를 공급. 환자는 물을 먹지 못해 갈증에 시달린 나머지 스프를 먹게 되고, 이후 고체로 된 음식도 먹게 됨.

⇨ 단순히 조지 3세의 사례가 19세기 초반 25~30년 정신의학 실천과 유사성을 보인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조지 3세의 사례가 피넬의 예와 같이 감사의 부채만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강압적인 방식으로 복종과 순응을 유도한 사례에도 속할 수 있음을 지적하려 한 것인지.

 

4. 최면의 실천과 히스테리 / 5. 정신분석학의 무대와 반정신의학의 무대

󰋪 도덕요법에 의해 변형된 바로 그 원시 정신의학의 무대가 정신의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일화를 통해 다시 한 번 눈에 띄게 변형. 그 일화가 최면의 발견과 시행, 그리고 히스테리 현상의 분석.

󰋪 정신분석학의 무대와 반정신의학의 무대도 마찬가지.

 

5. 반정신의학의 무대: 킹슬리 홀의 메리 번즈

󰋪 반정신의학의 무대였던 킹슬리 홀에서 일어난 메리 번즈 사례는 반정신의학에서 정신의학의 원시무대라 할 수 있는 조지3세의 사례와 유사한 지점을 보여줌.

∙ 간호사였던 메리 번즈는 42세에 킹슬리 홀의 수용센터에 들어감. 킹슬리 홀은 반정신의학 운동의 주창자인 로널드 랭의 주도로 만들어진 기관. 메리 번즈는 로널드 랭의 동료이자 킹슬리 홀의 레지던트였던 조지프 버크가 담당. 버크는 미술활동을 통한 치료 중 번즈의 예술적 재능을 발견해 그녀가 화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도와주었고, 번즈는 그의 도움으로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열고,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연극 대본도 집필.

∙ 번즈는 자신을 향한 버크의 사랑을 떠보기 위해 분뇨를 뒤집어 쓴 채 그에게 다가감. 버크는 공포와 역겨움 속에서 도망쳤고 그녀로부터 떠날 생각마저 했지만, 다시 생각을 고쳐 번즈에게 다가가 고개 속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번즈에게 “자, 별거 아니야. 위에서 따뜻한 물로 목욕하자”고 설득, 약 한 시간 동안 씻김.

 

6. 광기의 취급과 진실의 계략: 조지프 메이슨 콕스

󰋪 조지 3세의 무대는 일련의 긴 정신의학 무대의 최초의 무대에 속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는 정신의학의 무대와는 다른 일련의 무대에 속하기도 함.

∙ 원시 정신의학의 무대에서는 먼저 대관식, 소유권 박탈, 복종, 충성, 항복, 복권 등과 같은 주권권력적 예식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 모두 발견. 또 여기에서는 명령을 내리고 복종하며, 규칙을 준수하고 징벌하며, 포상하고 응답하며 침묵을 지키는 것 같이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부과하는 일련의 봉사 예식도 존재.

∙ 게다가 사법절차도 존재. 요컨대 법을 선포하고 위반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고백을 얻어내고 과오를 확증하며 판결을 내리고 형벌을 부과하는 절차.

∙ 마지막으로 일련의 의학적 실천, 특히 고비와 관련된 대대적인 의학적 실천이 존재.

󰋪 정신의학의 진정한 역사, 정신의학 무대의 진정한 역사를 연구하려면 이러한 일련의 무대들 내에 정신의학을 재설정해야 함. 중요한 것은 주권권력의 예식의 무대, 봉사 의례의 무대, 사법 절차의 무대, 의학적 실천의 무대 내에 정신의학을 재설정하는 것이지, 제도의 분석을 본질적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결코 아님. 즉 여기에서는 지극히 반제도주의적 입장을 취하고자 함. 제도의 분석을 행하기에 앞서 먼저 권력의 미시물리학을 조명하려는 것.

⇨ 정신의학의 형성에 대해 제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미시적 권력 작용이 잘 드러나는 무대(연극적 에피소드가 아니라 의례, 전략, 싸움)을 보고자 한다는 뜻(?).

󰋪 조지 3세의 무대와 대조적인 18세기 말~19세기 초 의사들의 광기의 취급과 진실의 책략

∙ 진실의 책략은, 병이 활개치게 놔두고 그것을 쫓아가며 허구이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일종의 세계를 구성. 이 세계 속에서 광기는 교묘히 유도된 현실의 덫에 걸리게 되어 있었던 것.

∙ 조지프 메이슨 콕스의 관찰 기록.


X는 이유 없는 때때로 슬픔에 사로잡혀 밤새워 책을 읽고 음식을 극도로 절제하며 물만 마심. 그의 친구들의 충고도 듣지 않았고, 가정부 역시 다른 식이요법을 따르라고 강하게 권고했지만, X는 오히려 가정부가 자신을 혐오하여 독이 든 셔츠를 이용해 자신을 살해하려 한다고 생각. 우리(의료진?)은 그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고 판단, 오히려 일련의 화학적 실험을 통해 그의 의심이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가정부를 심문하여 그의 결벽 호소에도 불구하고 유죄를 선고하여 구속하는 상황을 가장. 그 뒤 형식적인 진찰을 거친 후 X에게 해독을 위해 여러 가지 투약이 필요함을 강조. 수 주 간의 투약 후 환자는 자신이 치유되었다고 납득.


∙ 이 일화에서 정신의학적 실천은 결국 망상적 생각 그 자체에서 출발해 그 망상 자체에 완벽히 합치되는 일종의 미궁을 전개시켜 그 안에서 환자를 데리고 다니는 것. 곧 X가 가정부에 대해 가진 망상적 의심을 깨지 않고 오히려 그 의심에 입각하여 허구적 상황을 만들어 낸 것.

∙ 의사들은 이렇게 가상의 미궁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 출구를 만듦. (1)화학적 실험을 통해 가정부의 유죄를 입증하고, (2)죄인을 먼 곳에 유폐시킨 것. 이를 통해 환자는 그의 망상 속에서 그의 병의 원인이었던 것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됨. (3)X는 자신의 망상 속에서 병의 원인이었던 것이 실제로 입증되었기 때문에 병을 치유한다는 구실 아래 의사들의 개입, 약물 치료를 받아들이게 됨.

󰋪 이러한 작용은 19세기 초 시작되는 정신의학의 실천에서 완전히 제거 됨. 이 모든 것을 일소하게 되는 것이 규율의 실천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의 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