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생명관리정치의 탄생] 12강

권순모
20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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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관리정치의 탄생 12강 1979년 4월 4일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개념의 역사적 구성요소

지난 강의에서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주제로 법권리 주체는 자신의 법권리를 포기하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양도하는 변증법을 통해 다른 법권리 주체의 통치로 통합되는 반면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양도나 뺄셈, 포기의 변증법이 아닌 자연발생적인 증식의 변증법을 통해 스스로 그 일부를 이루는 경제학적 총체로 통합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1강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이해관계의 강화를 통해 자신의 행동이 증대적이고 유익한 가치를 발생시키도록 하는 이해관계의 주체다]

 

경제활동을 통한 주권 권력의 제한 문제 재검토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법권리 주체로 환원할 수 없다는 사실은 주권자와 주권 권력에게 중대한 변화를 야기시킨다. 법권리 주체는 주권 권력의 행사를 제한하는 데 그치지만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경제적 영역의 지배와 관련한 무능력을 명분으로 주권자의 권력을 실추시킨다. 총체로서의 경제 영역/장에 직면한 주권자는 맹목적일aveugle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7세기까지 주권자 위에는 예측 할 수 없는 것, 즉 신의 의도가 있다는 고전적 사유 방식이 존재했다. 하지만 호모 에코노미쿠스 관념의 출현과 함께 주권자 아래에 주권자를 벗어나 버린, 신의 의도나 법이 아닌 경제 영역의 미궁과 그 사행(蛇行)이 나타났다. 이는 주권자에 대한 사법적 사고방식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도전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도전에 대한 두 가지 해결법이 등장한 바, 첫 번째는 주권자가 시장 이외의 모든 것에 관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통치이성/국가이성의 형식을 유지하기 위한 뺄셈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중농주의자들의 주장인데, 주권자가 경제절차에 내재하는 필연성에 대해 수동적인 입장을 갖고 그 절차를 감시하고 관리하며 부단히 확인하는 측량기사의 입장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통치성의 활동 범위의 폭을 유지하되, 통치활동의 계수/지수를 변화시켜 통치활동의 본성을 변형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해결법은 실현되지 않았다.

 

자유주의 통치술에 관련된 새로운 영역의 출현 : 시민사회

국가의 법권리로 보면 통치술은 주권 공간 안에서만 행사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주권 공간 안에는 경제 주체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권 공간 안에서 법 권리의 주체인 동시에 경제적 주체이기도 한 개인에 대한 통치화 가능성은 새로운 영역의 출현/새로운 총체의 구성에 의해서만 보증받을 수 있다. 개인을 법권리의 주체라는 자격과 함께 경제적 행위자라는 자격에서도 포괄하는 새로운 총체는 복합적 총체의 일부로서 부분적이고 통합가능한 여러 측면으로 구성된다. 이 새로운 총체가 자유주의 통치술의 특징이다.

1)통치성이 통치 공간의 총체에 대한 포괄적 성격을 보존하기 위해 2)통치성이 과학적, 경제학적 이성에 굴복함으로써 주권자가 경제의 관리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3)통치술이 경제적 통치술과 사법적 통치술만으로 분할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4)통치술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5)주권 권역의 총체에 대한 통치술의 총괄성을 유지하기 위해 6)경제학과 관련해 통치술이 자신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통치술과 관련한 새로운 현실을 부여하고 그것에 통치술이 행사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새로운 현실이란 바로 시민사회société civile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시민사회 : 분리불가능한 자유주의적 통치테크놀로지의 구성요소

시민사회는 통치 테크놀로지적 개념이다. 생산과 교환 절차로서의 경제에 법적인 방식으로 관여해 그 합리적 측정을 이뤄내는 통치 테크놀로지의 상관corrélatif물이다. 다시 말해 경제적 경제학에 연동된 통치성의 사법적 경제학이다. 17세기 이래 시민사회(→사회→18세기 말 국민)는 통치 테크놀로지가 경제 법칙이나 법권리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 자기제한, 통치의 총괄성의 요청이나 편재의 필요성을 위반하지 않는 자기제한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편재하는 통치, 법규범에 따르는 통치, 하지만 경제적 특수성을 존중하는 통치가 바로 시민사회를 운영하고 국가와 사회를 관리하게 되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시민사회는 분리불가능하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시민사회라는 농밀하고 충만하며 복잡한 현실에 깃든 추상적이고 이념적이며 순수하게 경제적인 요소다. 시민사회는 경제적 인간에 의해 구성되는 이념적 요소들이 내부에 재배치됨으로써 적절하게 운영될 수 있는 구체적 총체다. 따라서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시민사회는 동일한 총체의 일부를 이룬다. 즉 그것들은 자유주의적 통치테크놀로지 총체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시민사회는 19세기 이래 철학적 정치적 담론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시민사회는 통치와 국가, 국가 기강, 제도 등이 자신을 인정하게 만들고 그것들과 싸우고 저항하고 반역하며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국가 내지 정치제도와 대립하는 원리도 아니며 역사적 자연적 소여도 아니다. 시민사회는 근대적 통치테크놀로지의 일부를 이룬다. 이러한 시민사회는 광기나 성현상과 같은 것이다. 시민사회는 상호작용에 의한 현실이다. 즉 권력관계와 권력관계로부터 벗어나려는 것 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경계면에서 상호작용적이고 과도적인 형상들이 생겨난다. 이 형상들은 언제나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역시 현실적인 것으로서 지금의 경우에는 시민사회, 다른 경우에는 광기 등으로 불리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통치 테크놀로지 역사에서 상호작용적 현실의 요소다. 이 상호작용적 현실은 자유주의라 불리는, 또한 경제절차의 특수성과 관련되어 자기제한을 목표로 하는 통치 테크놀로지의 형식과 상관적이다.

 

‘시민사회’ 개념의 분석 : 존 로크에서 애덤 퍼거슨에 이르기까지의 변화

시만사회에 관한 관념은 18세기 말에 완전히 변했다. 그 이전 가령 존 로크에게 시민사회는 사법적 정치적 구조로 특징지어지는 사회다. 시민사회는 사법적이고 정치적인 유대관계에 의해 서로 연결되는 여러 개인으로 이뤄진 총체로 정치사회라는 관념과 구별되지 않는다. 18세기 말 정치경제학 문제와 경제절차 및 경제 주체를 둘러싼 통치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시민사회 관념은 크게 수정되었다. 애덤 퍼거슨의 『시민사회사』(1755-1756)는 애덤 스미스와 『국부론』에 가까운 텍스트로 스미스의 ‘국민’은 퍼거슨의 ‘시민사회’와 거의 같은 의미는 지닌다.

 

『시민사회사』 : 시민사회의 본질적 특징

① 시민사회는 역사적이고 자연적인 불변항이다. : 퍼거슨에게 시민사회는 하나의 소여다. 그에 따르면, 시민사회 이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 역사는 언제나 “무리를 통해서” 존재해왔고 “사회는 개인만큼 오래된 것이다”. 개인과 사회가 서로 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으로부터 역사로, 비사회로부터 사회로 이행이 이뤄진 순간은 결코 없었다. 즉, 인간적 자연은 본성에 있어 사회적이기에 역사적이다. 그렇게 사람이 사회 속에 있어 사회적 유대관계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므로 사회를 확정하거나 기초하는 특별한 조작이 필요가 없다. 한편, 퍼거슨은 인간이 사회상태에 있기를 바라는 것은 그것이 자연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기서 자연상태는 결코 꾸밈없는 단순한 상태가 아니다. 사회상태는 자연에 있어서 불가결한 것이고 사회적인 것은 자연적인 것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자연적인 것은 언제나 사회적인 것에 의해 매개된다.

② 시민사회는 개인들 간의 자연발생적 통합을 보증한다. 경제적 관계의 역설 : 시민사회에는 복종의 계약과 같은 주권 구성이 없다. 시민사회의 총합은 사회적 유대관계 안에서 개별적인 만족의 총화에 의해 이뤄진다. 시민사회에서는 법권리의 교환 메커니즘이 아니라 직접적 증식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그런데 시민사회에서 개인들을 결합시키는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이기주의보다 방대한 작용으로서의 ‘이해없는 이해관계’다. 시민사회는 상이한 여러 경제 주체들의 연합 그 이상의 것이다. 시민사회는 인류가 아닌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실제로 시민사회는 가정, 마을, 동업자 단체 등으로부터 출현한다. 국민은 시민사회의 가능한 형태 중 하나다.

 

“시민사회에서 개개인을 연결시키는 것은 본능이고, 감정이며, 공감이고, 개개인 서로에 대한 호감의 움직임이며 동정이다. 그것은 또한 다른 개인에 대한 혐오이며, 개인의 불행에 대한 혐오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다른 개인의 불행에 대해 품는 쾌락이기도 하다.”

 

시민사회가 이해없는 이해관계, 국지적 결합 및 서로 상이한 단계의 형태를 취하는 유대관계에 기반하고 있다면 경제적 이해관계의 유대관계는 법권리의 포기와는 다른 형태인 직접 증식이라는 형태를 지니며 시민사회 내부에서 분리의 원리가 된다. 개개인의 서로에 대한 동정, 호감, 이웃에 대한 사랑, 공동체 감정과 같은 능동적 유대관계에 비해 경제적 유대관계는 개개인의 이기적 이해관계를 부각시키고 더 첨예하게 만들어 시민사회의 자연발생적 유대관계가 결속시켜 놓은 것들을 끊임없이 해체하려 한다. 즉 경제적 유대관계는 시민사회 속에 자리를 잡고 시민사회를 통해 기능하고 시민사회를 긴밀히 연결시키는 반면 시민사회를 해체한다.

 

“개인 간의 유대관계는 반드시 개인이 거기서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발견하지 않을 때에 가장 강해진다.”

 

③ 시민사회는 정치권력의 항구적 모체다. : 시민사회 내부에서 정치권력이 출현하는 데는 종속계약이 필요없다. 법권리를 포기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주권을 용인할 필요도 없다. 권력은 개인 간의 유대관계를 통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다. 개인은 사회에서 수행하는 역할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그것은 생산만이 아니라 집단에 의한 총체적 결정절차에서 분업을 발생시킨다. 시민사회에서의 집단적 결정은 ‘선택된 사람’에 의해 이뤄진다. 이렇게 권력이 먼저 오고 권력의 사법 구조가 나중에 온다.

④ 시민사회는 역사의 원동력을 구성한다. : 1) 시민사회는 자연발생적 총합이며 자연발생적 종속 관계에 있다. 북미의 원주민 공동체에서 드러나듯 여기에는 안정적인 균형의 원리가 작동한다. 2) 자연발생적 총합 및 자연발생적 종속 관계에는 이해관계,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이기주의, 경제절차라는 분리의 요소가 들어 있는바, 이것들은 시민사회의 균형 파괴의 원리로 작동한다.

시민사회는 미개→야만→문명의 국면을 거쳐왔다. 미개사회[수렵사회]에서는 소유가 없고 종속 관계와 통치의 단초만이 발견된다. 미개사회로부터 야만사회로의 이행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이기주의나 이해관계가 작동하면서 새로운 경제적, 정치적 제도가 등장한다. 하지만 아직 법률에 의해 보장되지 않는 사적 사회로 시민사회는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 주인과 종복의 관계 가족과 노예의 관계 등의 형태를 취한다. 이와 같은 경제적인 메커니즘은 시민사회 안에 자리한 경제 게임에서 출발한 역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부단히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메커니즘과 역사를 일반적 형태에서 끊임없이 생산하는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새로운 정치사상 체계의 출현

1) 시민사회에서 사회적 관계는 사법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유대관계, 계약 구조와 중첩되지 않으며 경제 게임과 본성이 다른 유대관계를 의미한다. 2) 시민사회는 사회적 유대관계를 역사와 결합시킨다. 역사는 새로운 사회조직, 사회관계, 경제구조 그리고 통치유형의 부단한 형성, 즉 생성을 의미한다. 3) 시민사회를 통해 사회적 유대관계와 통치라는 권위 형태의 관계 사이의 복잡한 내적 관계를 지시하고 보여준다.

이상의 세 가지 요소, 즉 1) 사법적이지 않은 사회적 관계 영역의 개화, 2)역사와 사회적 유대관계의 결합, 3)통치가 사회적 유대관계에 귀속되고 사회적 유대관계가 권위의 형태에 귀속되는 유기적 귀속 등은 시민사회라는 관념을 홉스, 루소, 몽테스키외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새로운 정치사상체계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론적 귀결

17-18세기에는 권력 행사가 사회의 근원 자체에서 사전에 제한하는 사법적 형태를 사회의 기원에서 발견하고자 했다. 이후에는 종속관계가 작동하고 있는 사회 내부에서 권력을 어떻게 규칙화하고 어떻게 제한해야 하는지에 주목했다.

① 국가와 사회의 관계라는 문제(독일・영국・프랑스) : 18세기 말부터 오늘날까지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물음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국가는 시민사회의 여러 차원 및 여러 형태 중 하나다. 18세기 말 요한 하인리히 융-슈틸링(1792)은 사회를 가족, 동거자 혹은 영지, 국가라는 세 축에서 주목했다. 칼 다니엘 하인히리 벤센(1804)은 시민사회는 가족사회→시민사회→국가사회라는 세 단계를 순서대로 경유한다고 주장했다. 아우그스트 슐뢰처(1792)는 가족사회, 시민사회, 시민사회의 여러 형태 중 하나인 국가에 주목하면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유형으로서의 가족사회를 강조했다. 헤겔에게 국가란 시민사회의 자기의식 및 윤리적 현실을 의미했다.

근대 독일, 영국, 프랑스에서는 시민사회가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독일에서는 시민사회와 국가의 대립/관계라는 관점에서 시민사회를 분석했다. 시민사회는 국가를 지탱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고 국가는 시민사회에 대해 모순적 요소이거나 아니면 계시적 요소로서 실현된 진리라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국가가 아닌 통치라는 관점에서 시민사회를 분석했다. 영국에서는 결코 국가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토머스 페인(1793)는 “사회와 통치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사회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 통치는 우리의 약함으로 인해 만들어진다.…사회는 보호자지만 통치는 처벌자다.”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서는 19세기 중반까지 제3신분, 즉 부르주아만이 프랑스 역사를 떠받치고 담당했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② 권력 행사의 규칙화 : 군주의 현명함→피통치자의 합리적 계산 : 시민사회라는 관념을 통해 통치이성의 재분배, 재중심화, 탈중심화가 일어난다. 오랫동안 통치자의 현명함이 권력의 무제한적 행사를 규칙화하고 측정해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현명함은 신과 인간에 관련된 사물의 일반적 질서가 명령하는 바에 따라 통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통치를 진리에 규칙화하면서 종교적 텍스트의 진리, 계시의 진리, 세계질서의 진리는 권력의 행사를 규제하기 위한 원리, 규칙화를 위한 원리로 작동했다.

16세기부터는 현명함/진리가 아니라 힘의 계산, 관계의 계산, 부의 계산, 지배력이라는 요소들의 계산에 따라 권력의 행사/통치를 진리가 아닌 합리성에 기초해 규칙화하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통치 테크놀로지의 근대적 형식이다. 이때 먼저 주권적 개인성으로서의 국가의 합리성이 제기되었고 이어 통치받는 자들의 합리성에 기초해 규칙화하는 방향으로 이행했다.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 의미에서 이해관계를 만족시키기 위해 몇몇 수단을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사용하는 개인, 즉 피통치자의 합리성이 통치합리성에서 규칙화의 원리로 작동한다. 이것이 자유주의적 합리성의 특징이다.

 

결론

국민주의nationaliste 정치, 국가etatique 정치의 합리성의 원리는 1)주권적 개인의 합리성과 2)그것을 구성하는 국가의 합리성과 연동되어 있다. 즉 주권적 개인이나 주권적 국가의 이해관계와 그 전략에 연동된 정치다. 진실에 기초해 규칙화된 통치도 사라지지 않는다. 맑스주의는 개인적 이해관계의 합리성이 아니라 진실로써 표명되는 역사의 합리성으로서 스스로를 제시하는, 합리성에 기초한 일정 유형의 통치성에 관한 탐구다.

이처럼 19세기 이래 근대 세계에서 일련의 통치 합리성들이 서로 중첩되고 지지하고 이의를 제기하며 각축을 벌여왔다. 1) 진실에 기초한 통치술, 2) 주권국가의 합리성에 기초한 통치술, 3) 경제 주체의 합리성에 기초한 통치술 = 피통치자 자신의 합리성에 기초한 통치술 등을 계산하고 합리하화며 규칙하는 방식이 서로 겹쳐지면서 정치적 논의 대상이 구성되어왔다. 결국 정치란 상이한 통치술의 상이한 연동을 수반하는 작용인 동시에 상이한 통치술들이 불러 일으키는 논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