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note[스피노자와 표현 문제] 20201023

관리자
20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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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두 가지 역량과 신관념(3)

 

▶ 사유 속성의 세 가지 특권

1) 증식. 사유속성은 다른 속성보다 외연이 크다. 들뢰즈는 슐러의 “사유 속성은 분명 다른 속성들보다 더 큰 외연을 갖는다.”는 문구를 인용한다.

2) 중복/반복. 동일한 변양이 다른 속성들에서는 한번 씩만 표현되지만 사유속성에서는 무한히 많이 표현된다. 여기서 두 번째 특권이 파생되는 바, 사유 속성의 양태들은 증식되는 동시에 중복/반복된다. 관념들 사이에는 상이한 속성의 양태들 간에 있는 만큼 구별이 있으므로 상이한 속성의 양태들 간의 실재적-형상적 구별에 상응하는 관념들 간의 표상적 구별이 있다. 따라서 사유 속성에는 형상적 혹은 실재적으로 구별되는 양태들이 있다. 형상적 구별은 수적 구별이 아니라 이름뿐인 구별이다. 예를 들어 A속성의 양태를 재현하는 관념과 B속성의 양태를 재현하는 관념과 C속성의 양태를 재현하는 관념은 속성이 다르므로 형상적으로 구별되는 데 결국은 하나의 동일한 것이다. 속성들이 형상적으로 구별된다는 것은 의미상의 구별, 이름상의 구별이 된다는 걸 말한다. 관념들이 재현하는 이러저러한 속성들의 양태들이 하나의 동일한 것이라는 얘기는 하나의 동일한 변양이 서로 다른 속성에 의해 구별된다는 의미다. 즉 사유 속성의 양태인 관념이 이러저러한 속성의 양태들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의미다. 이 특권은 사유 속성과 사유 역량과의 특수한 관계를 개입시켜야 이해할 수 있다.

3) 외견상/표면상의 특권. 사유속성 자체는 실존의 한 형상/형식이다. 모든 속성은 실존의 형상이다. 사유 속성도 여타 속성과 마찬가지로 실존의 한 형상이고 그래서 사유 속성의 양태인 관념도 형상적 존재를 갖는다. 그런데 사유 속성의 양태가 다른 속성의 양태처럼 형상적 존재를 갖는다면 이 형상적 존재에 대한 관념이 또 있다. 사유 속성의 양태를 다른 속성의 양태를처럼 사물로 보면 이 사물에 대한 관념이 있다. 사유속성의 양태인 관념은 형상적 존재이고 이 관념을 재현하는 관념의 관념은 표상적 존재다. 다시 관념의 관념은 형상적 존재가 되고 이것을 재현하는 또 다른 관념이 있다는 식으로 무한히 나아간다. 사유역량을 분유하는 모든 관념은 사유역량을 지니고 있다. 역으로 사유 속성에 속하는 모든 관념은 사유 역량을 분유하는 다른 관념의 대상이 된다. 이것이 사유속성의 마지막 특권인 외견상의/표면적인 특권이다.

 

▶형상적 구별

 

    대상       -      관념      :   속성상으로 구별되나 존재론적으로는 하나

                                                                                      II                            같은 관계

관념(대상) - 관념의 관념 : 사유 속성상으로 구별되나 존재론적으로 하나

    ∣                       ∣

  형상             표상/재현

 

대상과 관념 간에는 형상적 구별이 있다. 관념과 관념의 관념 간에도 형상적 구별이 있다. 형상적 구별이란 존재론적으로 하나인데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의미한다.

 

▶평행론

연장속성의 양태는 물체/신체이고 사유속성의 양태는 관념/정신/영혼이다. 이 두 개가 같다는 것이 바로 심신평행론이다. 어떤 속성의 양태와 그에 대한 관념은 하나의 동일한 것이다. 연장속성의 양태인 신체와 사유속성의 양태인 정신은 하나의 동일한 것이다. 그런데 평행을 나란히 가는 것이라고만 봐서는 안 된다. 질서의 동일성, 연관의 동일성, 존재의 동일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사유 속성의 양태와 다른 어떤 속성의 양태가 동일하다고 하면 인식론적 평행론이다. 사유 속성은 무한히 많은 속성 중 하나인데 무한한 속성의 양태가 모두 하나의 동일한 것이라고 하면 존재론적 평행론이다.

 

▶ 합성되는 비에 대한 관념

신 관념은 복합적인 지위/위상을 갖고 2종 인식에서 3종 인식으로 우리를 이행시킨다. 2종 인식은 합성되는 비에 대한 관념이다. 예를 들어 피를 구성하는 카임(chyme)과 림프의 합성비. 2종 인식은 합성되는 비에 대해서는 알려주지만 본질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카임의 본성/본질, 림프의 본성/본질에 대한 인식은 주지 않는다. 카임과 림프가 합성되어 피를 형성한다는 것까지만 알려준다.

3종 인식으로 넘어가는 데는 신 관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나의 신체로서 카임과 하나의 신체로서 림프가 하나로 합성composition되어 상위의 또는 제3의 신체를 형성한다. 여기서 합성은 물리-화학적 개념이다. 이 합성의 비를 아는 것이 공통개념이다. 피를 구성하는 입자들/분자들의 빠름과 느림의 비, 그것이 카임과 림프에 공통의 리듬, 공통의 비로 적용된다. 가장 심층에는 입자들만 있다. 입자들은 무한소다(dx). 무한히 0에 가까운 것, 미분소라고도 한다. 이것들은 무한한 상태에서 단독이 아닌 무한집합을 이루어 몰려다닌다. 입자들만 있는 심층에는 입자들의 운동/정지, 빠름/느림만 있다[“안티 오이디푸스”의 미시물리학]. 미분적/미시적 층위에는 무한히 작은 입자들의 운동과 정지 밖에 없다.

사유를 합성하는 사유 분자들 사이에도 빠름과 느림의 비가 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사유 또는 관념에는 운동과 정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지각능력/식별능력으로 개념을 바꾼다. 아주 작은 입자들에게도 지각능력/식별능력이 있다. 일단은 신체를 합성하는 입자들/분자들에는 빠름과 느림의 비가 있다. 정신을 구성하는 입자들 사이에도 빠름과 느림의 비가 있다. 관념이나 신체는 항상 합성되어 있어 더 작은 관념과 신체로 계속 분해하고 분해하면 가장 단순한 입자/분자에 이른다. 스피노자는 관념과 신체가 하나의 동일한 존재이므로 이해를 돕기 위한 유비를 통해 동일한 방식으로 추론한다. 파도소리의 경우, 물방울 입자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무한히 작은 물방울에 대한 무의식적인 지각/미세지각이 적분이 되면 글로벌한 지각/통각이 된다. 우리는 관념 혹은 정신이라고 하면서 의식과 동치시킬 때가 많다. 그런데 관념에는 무의식적인 미세지각으로 작은(소) 지각이 있고 큰 지각이 있다. 큰 지각은 통각aperception/의식적 지각으로 파도소리에, 작은 지각은 무의식적인 지각으로 물방울에 해당한다.

 

▶ 대상과 관념, 실존역량과 사유역량

대상과 대상을 재현하는 관념은 두 속성만 참조하는/의존하는/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두 역량, 즉 실존 역량과 사유 역량에도 관련이 된다. 여기서 대상은 임의의 어떤 속성의 양태이고 관념은 사유 속성의 양태이다. 대상과 관념은 두 속성만이 아니라 두 역량, 실존역량과 사유역량에도 관련된다. 대상은 실존역량, 관념은 사유역량에 관련된다. 관념과 관념의 관념도 마찬가지다. 관념을 대상으로 보고 관념의 관념을 대상에 대한 관념으로 보면 똑같이 실존역량과 사유역량에 관련된다. 관념, 관념의 관념도 사유속성의 양태다. 관념은 형상적 존재로 실존역량에 관련되고 관념의 관념은 표상적/재현적 존재로서 사유역량에 관련된다.

역량의 정도dgree에는 차이가 있다. 가령 진드기는 빛, 열, 냄새 세 가지에 의한 변용능력만 갖고 있다. 하지만 고등동물에게는 훨씬 많은 변용 능력이 있다. 그리고 신체의 역량의 정도 차이가 있으면 이에 상응하는 정신의 역량의 정도 차이도 있다. 그런데 이것을 관념과 관념의 관념에 그대로 대응시킬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비소, 카일, 림프의 지각능력과 인간의 지각능력의 차이도 역량의 정도 차이로 설명한다.

 

▶ 관념과 관념의 관념

모든 관념은 신 관념에서 파생된다. 신 관념은 두 가지 얼굴이 있다. 공통개념. 2종 인식을 향한 면이 있고 3종 인식, 본질을 향하는 면이 있다. 관념과 관념의 관념은 형상적으로 구별된다. 사고상의 구별만 있다. 사고상의 구별만 있다는 것은 추상적으로만 분리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관념의 관념 이론은 두 방향으로 전개된다. 관념과 관념의 관념은 1) 구별된다. 관념은 실존역량에 관련시키고 관념의 관념을 사유 역량에 관련시키면 구별된다. 실존역량에 관련시키면 형상적 존재이고 사유역량에 관련시키면 표상적 존재가 된다. 2) 모든 역량은 사유 역량에 관계된다. 관념의 형상적 존재도 결국 관념의 사유 역량을 분유하는 조건일 뿐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관념과 관념의 관념의 통일성이 나타난다. 따라서 두 관념 사이에는 사고상의 구별만 있다. 관념의 관념은 그 자체로 사유 역량에 관계되는 관념의 형상이다. 정리하자면 관념의 관념에는 두 측면이 있다. 관념과 관념의 관념은 구별되는 한편 통일성을 갖는다. 이는 ‘우리가 가지는 관념’과 ‘우리가 그것인 바의 관념’과 같이 구별되지만 통일성을 갖는다. 유한양태들이 가지는 관념은 결과에 대한 인식이다. 외부 신체가 나의 신체에 영향을 미쳤을 때 그 영향을 받아 생긴 결과에 대한 인식으로 불완전하고 부적합한 인식이다.

 

▶ 7장 정리

역량의 동등성과 속성의 동등성은 구별해야 한다. 인식론적 평행론은 역량의 동등성에서 파생되는 것이고 존재론적 평행론은 속성들의 동등성에서 파생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난점은 남는다. 들뢰즈도 이 난점을 인식하고 있다. 존재론적 평행론의 이행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스피노자는 명제7의 주석(나는 다른 속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처럼 인식론적 평행론을 일반화시켜 존재론적 평행론을 증명하면서 이에 대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논증은 변양의 통일성으로 가야 하는데, “관념-대상” 쌍들의 환원불가능하고 무한한 복수성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난점은 다시 한번 신 관념의 복합적 지위를 고려해야 해결된다. 표상적 필연성의 관점에서 보면 신 관념은 절대적 원리다. 그래서 통일성을 갖는다. 통일성을 갖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절대적으로 무한한 실체가 갖는 통일성을 신 관념도 갖는다. 신이 갖는 통일성을 신 관념도 갖는다. 그런데 형상적 가능성의 관점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신 관념은 하나의 양태일 뿐이다. 양태이기 때문에 실체의 통일성을 양태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모든 것의 본질에 대한 관념을 담고 있는 하나의 관념이 신 관념이다. 모든 것의 본질을 담고 있는 하나의 관념. 관념을 갖는다는 것은 인식역량을 갖는다는 것이다.

 

사유의 양태들에는 고유하게 양태적인 통일성이 있다. 따라서, 동일한 변양이 무한히 많은 방식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존재론적 평행론이다. 하나의 동일한 변양이 무한히 많은 속성들에서 표현이 된다. 연장 속성에서 표현되고 사유 속성에서 표현되고 다른 속성에서도 표현되는 데 하나의 동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관념들이 재현하는 대상들은 속성만 달리하는 대상들이 된다. 관념과 마찬가지로 관념의 대상들도 단 하나의 동일한 변양을 표현한다.

 

왜 인식론적 평행론을 경유해야 하는가? 다시 질문한다. 왜 실체의 통일성에서 실체적 변양의 통일성으로 바로 가지 않는가? 바로 가면 쉬울텐데...들뢰즈의 답은 ‘신이 형상적으로 구별되는 속성들에서/속성들을 통해서/속성들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실체가 무한히 많은 속성들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그 무한히 많은 속성들은 형상적으로 구별된다. 그 형상적 구별은 존재론적 동일성을 갖는다. 즉 ‘나는 양태로 실체의 표현이다. 나는 관념이자 동시에 신체다. 사유 속성으로 보면 관념이고 연장 속성으로 보면 신체다. 관념과 신체는 하나의 동일한 것이고 다른 속성으로 표현된 게 관념과 신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동일한 변양을 표현하는 서로 다른 속성들의 양태들이 있음을 예견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는 못한다. 들뢰즈도 확신을 못 갖는다. 우리는 두 가지 밖에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가서는/궁극에 가서는à la limite 속성들이 있는 만큼 속성들의 숫자만큼 많은 세계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자연은 그것의 실체에서는(로서)/상으로는 하나인데 변양들에서는 다수가 된다. 존재론적으로 하나인데 무한히 많은 속성이 있고 그것들의 양태가 있다. 칸트는 스피노자가 양태에서 다자가 통일되는 특수한 원리를 찾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반론은 정당하지 않다. 스피노자는 양태들의 통일성 문제를 완벽하게 자각/의식했고 실체적 통일성에서 양태적 통일성으로의 이행을 설명하기 위한 원리=신 관념을 자각했다.

 

신 관념은 이중적 측면에 의해 원리를 제공한다. 먼저 실체적 통일성에서 양태성 통일성으로의 이행을 설명하는 원리 역할을 한다. 우리는 실체의 본질을 표현하는 모든 속성들에 의해 구성된 실체의 통일성에서 무한 지성에 포함되지만 각 속성에서 변양을 표현하는 양태들에 의해 구성된 변양의 통일성으로 이행한다. 하나의 동일한 변양을 각 속성의 양태들이 표현한다. 변양은 실체의 변용affection이다. 양태는 속성의 변용이다. 속성상으로는 다른 양태이나 결국 하나의 동일한 변양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실체가 무한히 많은 속성으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속성들은 형상적으로 구별되지만 결국 하나의 동일한 본질을 표현한다. 각각의 속성이 표현하는 실체의 본질은 각 속성의 서로 다른 본질을 표현하는데, 그 본질은 결국 실체의 본질이다. 각각의 양태들, 즉 속성의 양태들은 결국 하나의 동일한 변양을 표현한다. 실체가 하나인 것처럼 변양도 하나이나 속성들로 갈라진다. 여기서도 역시 속성들은 수적 구별이 아니고 형상적 구별로 결국 하나인데 양태로 다르게 표현한다. 왜 신의 속성들이 있는 많은 세계가 있지 않은가? 당신의 설명대로라면 속성들의 숫자만큼 그만큼 많은 세계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스피노자는 2부 정리7의 주석을 참조하라고 대답한다[나는 다른 속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신의 지성은 신적 실체 못지않은 통일성을 지니고 따라서 신의 [지성?]에 의해 이해된 사물들도 신 자신 못지않게 통일성을 지닌다.

 

▶ 신 관념에 대하여

 

공통개념에 대한 정확한 개념 이해를 돕기 위한 보충 자료이다.

2종 인식에서 3종 인식으로 어떻게 이행하는가? 사실 2종 인식으로 충분한 것 같은데 왜 2종 인식에 그치지 않고 3종 인식으로 이행하는가? 2종 인식은 공통개념들을 경유한다. 공통개념은 비/비율/관계propor tion에 대한 관념이다. 그것은 일반 개념이나 추상 개념이 전혀 아니다. 공통개념은 한 신체/개체를 특징짓는 비/특징적 비에 대한 개념notion[들뢰즈는 notion과 concept을 구별하지 않고 쓴다]이다. 비의 합성에 대한 관념이다. 비들의 합성에 대한 관념들인 공통개념들은 우리를 신 관념으로 이끈다. 공통개념은 언제나 신 관념에 연결된다. 스피노자가 말하려는 것은 자연에서 비들의 합성에 대한 관념들을 고찰하려고 할 때 합성되는 비들의 근거fondement로서의 신 관념을 형성하지 않고서는 합성된 비에 대한 적합한 관념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신 관념을 통해서만 비의 합성에 대한 적합한 관념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상적으로 필연적으로 공통 개념에서 모든 비들의 근거로서의 신 관념으로 간다/이행한다. 신 관념은 이 층위에서 모든 비의 합성의 근거로 정의될 것이다.

복합적 관념으로서의 신 관념은 1)필연적으로 공통개념에 연결된다. 공통개념은 ‘합성되는 비들에 대한 관념’이다. 2)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동시에 그것은 공통개념이 아니다. 공통개념과 연관이 있는데 공통개념은 아니고 공통개념 이상의 어떤 것이다. 신 관념은 합성되는 비들에 대한 관념이 아니다. 모든 비들의 합성의 구체적 근거다. 신 관념은 합성되는 모든 비들의 근거가 되는 무한한 존재에 대한 관념이다. 그래서 신 관념은 합성되는 비 이상의 어떤 것이다. 합성되는 비에 대한 관념, 즉 공통개념과 연관되지만 그 이상의 어떤 것이다.

신 관념은 두 얼굴/면을 가진다. 한쪽 면은 공통개념들 쪽으로 향한다. 이유는 합성되는 비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신 관념에는 공통 개념들에 있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다른 것으로 향하는 면/얼굴이다. 즉 용기contemant로서, 모든 본질들을 담고 있는 본질로서의 신쪽으로 향하는 면이 있다. 모든 개별 본질들은 신 관념 안에 포함되어 있다/담겨있다. 신 관념은 본질을 담고 있으므로 신 관념을 통해 본질에 대한 인식, 즉 3종 인식으로 이행하게 된다. 요약하면 모든 비들의 합성의 근거로서 비의 합성에 대한 신 관념은 2종 인식・공통개념이고 본질에 대한 관념은 3종 인식이다. 이처럼 신 관념에는 두 측면이 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들뢰즈적 화법). 『에티카』 5부에 보면 두 측면을 몇 개의 명제를 사이에 두고 동시에 이야기한다. 그것은 신의・신 관념의 두 가지 초상으로, 외견상의 모순일 뿐이다. 5부 안에 몇 개의 명제를 사이에 두고 두 계열의 텍스트가 있다. 첫번째 계열의 텍스트에 따르면, “우리는 신을 사랑하지만 신은 우리에게 그것을 돌려주지 않는다. 신은 무감하다.” 우리가 신에게 바치는 사랑을 신은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그래서 신은 무감하다. 신 관념은 모든 비를 합성시키지만, 그 자신은 영향을 받지 않는 무감한 신의 관념을 우리에게 준다. 이것이 2종 인식의 신이다. 우리는 신을 사랑하지만 신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몇 페이지 뒤에/몇 개의 명제를 건너 뛰어 자리한 두 번째 계열의 텍스트에 따르면 우리가 신에 대해 갖는 사랑에서, 이번에는 3종의 사랑에서(사랑에도 2종의 사랑, 3종의 사랑이 있다), 신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통해 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신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통해 신이 우리를 사랑한다. 이번에는 무감한 신이 아니라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는 신이다. 여기서 신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자신에 대한 신의 사랑과 우리에 대한 신의 사랑이 동일한 것이 된다. 그것이 3종 인식이다. 여기에 모순은 없다.

신의 관념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기 때문에 첫 번째 종류의 텍스트들은 2종인식에 연관된 신 관념이고 두 번째 종류의 텍스트들은 3종 인식에 연관된 신 관념이다. 신이 합성되는 비의 근거로서만 파악되는 한에서는 무감한 신인데, 뭐가 합성되든지 신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파괴는 파괴되는 관점에서 보면 파괴이지만 합성의 이면이기도 하다. 전체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분해도 합성의 이면이다. 개별 본질들로 이행할 때 신 관념의 의미가 바뀌는데 이때 2종 인식의 신 관념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본질을 담고 있는 하나의 본질로서의 신 관념이다. 모든 역량 정도를 담고 있는 절대적으로 무한한 본질, 모든 역량 정도=본질을 담고 있는 절대적으로 무한한 역량, 절대적으로 무한한 잠재태.

신이 연속적인/계기하는succeed 두 가지 초상을 갖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마치 스피노자가 신에 대해 연속하는/계기하는 두 개의 그림을 그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1) 에피쿠르스 학파적인 일종의 무감한 신, 2) ‘우리가 그에 대해 갖는 사랑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3종의 신비주의적 신.’ 3종 인식은 신비주의적인 영감과 뗄 수 없다. 들뢰즈는 강의에서 공통개념은 많이 언급하나 신 관념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양태의 본질이 역량의 정도다. 역량의 정도는 횐색의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현실태와 잠재태가 동일하다고 하는 것은 잠재태가 실재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전통철학에서는 잠재태와 현실태를 대립으로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 철학자는 잠재태를 결핍, 형상이 부여되지 않는 상태, 형상의 결핍으로 본다. 반면 스피노자는 잠재태를 대립으로 보지 않고 그대로 실존하는 것, 실재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무한히 많은 흰색의 정도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고 실재real하는 것이다. 흰색도 시시각각 변하며 드레스 색깔 논란에서 드러나듯이 사람마다 흰색을 바라보는 색채 기호가 다르다.

 

▶ 스피노자 실천철학 5장 스피노자의 진화(『지성개선론』의 미완성에 관하여 )

 

이 내용은 『지성개선론』과 『에티카』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는 바, 8장의 예습에 해당한다.

『지성개선론』에서는 임의의 참된 관념에서 출발해서 신 관념에 도달한다. 그러면 신 관념으로부터 다른 모든 관념이 파생된다. 『에티카』에서는 임의의 실체적 속성에서 출발해서 모든 속성들을 포괄하는 실체에 도달하고 그 실체로부터 모든 사물이 따라 나온다. 이와 같은 출발점의 차이는 중요하다.

『지성개선론』 에 발생적 정의가 나온다. 임의의 참된 관념, 원관념에서 출발해서 원의 발생적 이유로 상승한다. 원의 종합적 이유로 상승한다. 『에티카』에서는 속성에서 출발해서 실체로 상승한다. 임의의 속성=질화된 실체는 공통개념의 측면에서 파악된다. 거기서 출발해서 그것의 충분 이유, 즉 모든 속성들을 포괄하며 모든 사물이 그로부터 파생되는 유일 실체 혹은 신 관념으로 상승한다. 가장 보편적인 공통개념이 있고 가장 덜 보편적인 공통개념이 있다. 전자는 속성이고 후자는 두 신체 사이의 공통개념이다. 공통개념은 『에티카』에 처음 등장한다.

공통개념은 여러 사물 사이의 비들의 합성의 관념이다. “연장” 속성을 가정해보자. 연장 속성 안에서 물체들은 본질을 갖는데, 이런 의미에서 그 물체들이 공통개념의 대상이 아니다. 연장 속성은 실체와 모든 가능한 물체들의 공통 형식/형상이다. 공통개념으로서의 연장 속성은 본질과 혼동되지 않고 모든 물체들의 합성의 통일성을 가리킨다. 통일성은 비의 합성을 말한다. 공통개념은 언제나 어떤 점에서 신체들이 화합/합치하는지에 대한 관념이다.

『에티카』에서 공통개념 이론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공통개념은 실존하는 신체들 사이의 비들의 합성을 대상으로 한다. 공통개념은 기하학적이라기보다는 물리-화학적 혹은 생물학적 이념Idée다.

공통개념이 기하학적이라면 그것은 물리학적, 실재적 존재들을 관련짓는 실재적, 자연적 기하학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공통개념 덕분에 기하학적 방법은 무한자에 적합하게 되고 실재적으로 보면 물리학적 존재들에도 적합하게 된다. 사고상의 존재인 원관념에서 출발하면 허구라는 제약이 있다. 이 허구에서 벗어나 실재적 존재에 적용할 수 있게 해 준 것이 공통개념이다. 여기서부터 인식의 종류/분류에 관한 차이가 파생되어 2종 인식과 3종 인식의 구별이 생긴다.

『에티카』에서는 공통개념들의 엄격한 적합성이 2종 인식의 일관성을 보증할 뿐만 아니라 3종 인식으로서의 이행의 필연성도 보증한다. 2종 인식의 새로운 위상/지위는 에티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비들의 합성의 영역에서는 단지 추론만이 아니라 모든 자원이 개입한다. 그 자원은 물리-화학적이고 생물학적 실험 프로그래밍을 말한다. 예컨대 동물 간의 합성의 통일성에 관한 연구. 이에 따르면 모든 동물의 가장 기본/기초 단위는 동일하고 진화의 발전 단계가 다르다. 가장 심층으로 내려가면 모든 동물 종의 기초단위는 같다. 가장 작은 입자/분자로 이뤄져 있다. 『천의 고원』에는 퀴비에와 조프르와 생 틸레르 간의 접기(pliages) 논쟁이 나온다. 척추동물을 접으면 무척추동물이 된다는 것을 둘러싼 논쟁이다. 들뢰즈는 접기는 합성의 통일성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정리한다.

『에티카』에는 2종 인식에서 3종 인식으로 이행하는 방식이 나온다. 2종 인식과 3종 인식 둘 다 적합한 관념들의 체계인데 아주 다르다. 3종 인식의 관념은 본질(속성들로 구성된 실체의 내적 본질/속성들에 함축된 양태들의 개별 본질이기도 하다)에 대한 관념이다. 3종 인식은 전자에서 후자로 간다.?? 그러나 2종 인식의 관념들은 비에 대한 관념이다. 속성이 공통개념 역할을 할 때/공통개념으로 삼아질 때 속성은 그것의 본질상에서나 그것이 적용되는 양태들의 본질상에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양태들의 공통 형식으로서 파악된다. 그래서 본질에 대해 모르고도 공통개념에서 출발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공통개념으로서의 속성에서 출발하면 반드시 본질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그 길은 다음과 같다. 공통개념들은 적합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리를 신 관념으로 인도한다. 그런데 신 관념은 필연적으로 공통개념과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자체는 공통개념이 아니다. 신 관념은 비들의 합성이 아니라 합성되는 비들의 원천이다. 우리를 2종 인식에서 3종 인식으로 이행시키는 것은 신 관념이다. 신 관념에는 공통개념들 쪽으로 향한 얼굴과 본질들 쪽으로 향한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