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생명관리정치의 탄생] 9강

권순모
2020-10-22
조회수 125

9강 1979년 3월 14일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프랑스, 독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맥락에서 전개.


1) 뉴딜정책, 케인즈주의적 정책에 대한 비판


1934년 시카고 학파의 아버지 헨리 칼버트 시몬스 「자유방임을 위한 명확한 프로그램」


2) 베버리지 계획과 전쟁 중 고안된 경제적‧사회적 개입주의


전쟁계약. 죽으러 갈 것으로 요구하고 대가로 평생 일자리를 약속. 계약체계에 근거해 전쟁을 행하게 됨. 전쟁터로 가서 죽어달라는 요구를 받은 사람들에게 특정한 경제적‧사회적 기구를 통해 훗날의 고용, 각종 질병과 여타 예기치 않은 사태, 연금 등에 대한 보장을 약속한 사회계약.


3) 빈곤, 교육, 차별에 관한 모든 프로그램과 이로 인해 야기된 국가의 개입주의, 연방 정부의 팽창


1) 케인즈주의 정책, 2) 전쟁과 관련된 사회계약, 3) 경제적‧사회적 프로그램을 통한 연방행정의 증대는 자유주의 사상의 적대물이자 표적. 이는 프랑스에서 발견되는 맥락과 동일한 유형.



○미국 신자유주의의 특징


1)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형성 당시부터 기존의 국가이성을 조절하는 원리로 제시되지 않음. 미국의 자유주의는 독립전쟁 기간 동안 1948년 독일에서 자유주의가 담당했던 역할과 유사. 국가를 기초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원리의 자격으로 자유주의가 요청. 자유주의의 요청이 국가를 건립. 미국 자유주의의 속성 가운데 하나.


2) 미국의 자유주의는 두 세기에 걸쳐 끊임없이 미국의 모든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위치. 경제정책과 보호주의, 금과 은의 문제, 화폐의 양본위제, 노예 문제, 사법제도의 위상과 그 기능의 문제, 개인과 州의 관계 혹은 州와 연방국가의 관계 등 19세기 정치적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자유주의.


3) 자유주의 논쟁의 항구적 토대와 관련하여 비자유주의, 즉 개입주의 정책이 출현. 비자유주의는 19세기 중반 이래로 부가되어 위협을 야기하는 요소로 출현. 이유는 사회화라는 목표를 도입하고 제국주의적‧군국주의적 기반을 내부에 확립하려고 했기 때문.


우파 진영에서는 역사적이고 경제적으로 사회주의적인 냄새를 풍기는 모든 것을 적대시하는 자유주의적 전통의 이름으로 비판. 좌파 진영에서는 제국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국가의 발달에 대한 단순한 비판과 함께 일상적인 투쟁을 벌임.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좌파와 우파에서 모두 사용되고 재활성화되기 때문에 다의성을 보임.




미국의 자유주의는 당시 프랑스와 전쟁 직후의 독일과는 달리 통치자에 의해 혹은 통치의 장에서 형성되고 정식화된 경제적‧정치적 선택이 아님. 자유주의는 존재방식이자 사유방식. 통치자가 피통치자에게 사용하는 기술이라기보다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일정한 관계 유형.


프랑스에서는 개인과 국가 사이의 분쟁이 서비스나 공공 서비스의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남. 미국에서 개인과 통치 사이의 분쟁은 자유를 둘러싼 문제의 양상을 띰. 미국의 자유주의는 좌파와 우파 쌍방에서 정착된 포괄적이고 다형적이며 양의적인 요구와 같은 것.


또한 미국의 자유주의는 항시 재활성화되는 유토피아의 중심이자 하나의 사유방법 혹은 사고방식, 경제와 사회에 대한 분석틀이가도 하다. 하이에크는 “자유주의는 유토피아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사회주의자에게 맡겨왔다. … 자유주의도 유토피아가 필요하다. 자유주의를 통치의 기술적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자유주의적 유토피아를 만들어내는 것, 자유주의의 양태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다.”라고 함. 이것은 사유, 분석, 상상력의 일반적인 양식으로서의 자유주의. 이것이 독일, 프랑스와 다른 미국의 신자유주의의 일반적 속성.




사유방식, 분석양식, 역사적‧사회학적 해석틀을 통해 미국 신자유주의의 양상을 분석. 1) 인적자본론 2) 범죄성과 범법행위에 관한 분석




○인적자본론


그때까지 탐구되지 않았던 영역에서 이루어진 경제 분석의 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절차. 그 진전에서 출발해 이제까지 경제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없었던, 사실상 경제적이지 않다고 여겨졌던 영역을 엄밀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입각해 재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되는 절차가 진행됨.


고전경제학에서의 상품 생산의 3요소는 토지, 자본, 노동. 노동은 항상 탐색되지 않은 영역으로 남겨짐. 스미스는 노동분업과 노동분업의 명확화로부터 경제분석을 구축. 그러나 노동을 시간이라는 요소로 축소함으로써 무력화시킴. 리카르도 역시 노동 및 노동이라는 요소의 증대에 대해 분석하면서 시간적 가변항에 따라서만 규정. 노동의 증가는 시장에 노동자의 수가 추가되는 것뿐이라고 생각. 리카르도에게 노동의 변화‧증대는 자본이 더 많은 노동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일 뿐. 따라서 고전경제학은 노동의 본성 자체를 무력화.


노동의 비분석은 케인즈에게서도 발견. 노동은 생산적 요소이지만 꽤 높은 수준의 투자율에서만 효용성을 갖고 활동 및 현실성을 얻기 때문에 수동적이라고 분석.


신자유주의자들은 고전경제학 및 고전경제학의 노동분석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여 노동을 경제분석의 영역에 재도입하는 것을 문제로 삼음. 1) 시어도어 슐츠, 1971년 󰡔인적자본 투자󰡕를 출간. 2) 게리 베커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제목의 책을 출간. 3) 교육과 임금에 관한 민서의 1975년 텍스트.




○고전적 노동과 신자유주의에서의 노동


신자유주의자들은 맑스의 분석이 ‘노동자가 파는 것은 자신의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할 것임. 즉 노동자는 일정 시간에 걸쳐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수요와 공급 간의 균형에 대응하는 시장의 일정한 상황에서 출발해 성립된 임금을 받음. 노동자의 노동은 가치를 창조하지만 가치의 일부를 강탈당하는 노동. 그 속에서 맑스는 자본주의의 매커니즘 혹은 논리 자체를 발견. 노동가치화로서의 노동은 추상적. 노동은 구체적으로 노동이 노동력으로 변하고 시간에 의해 측정되며 시장에 자리 잡게 되어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게 됨.


그러나 이것은 구체적인 노동이 아님. 현실 전체와 단절되고 질적인 가변항 전체로부터 절단된 노동. 이것이 맑스가 보여주는 바 자본주의의 경제적 매커니즘, 자본 이론은 노동과 관련하여 힘과 시간만을 고려에 넣을 뿐이라는 것. 즉 자본주의는 노동을 상품으로 생산하고 그렇게 생산된 가치의 효과들만 고려한다는 것.


이러한 ‘추상화’는 무엇의 오류에서 기인한 것인가? 맑스는 자본주의 자체의 오류에서 기인한 것으로 봄. 반면 신자유주의자들은 현실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과 관련해 형성된 경제이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봄. 즉 고전경제학 내에서 사유됐던 방식에서 비롯된 오류. 고전경제학은 노동을 구체적인 특성과 질적 변조 내에서 분석할 수 없었고 그 이론 내에 철학‧인류학‧정치학이 모두 노동에 달려들게 된 백지‧빈틈‧공백을 남겨뒀기 때문. 그리고 맑스는 그러한 대표자. 따라서 신자유주의자들은 노동의 실체를 추상화시켰다고 현실 자본주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담론 내에서 노동 자체가 추상화되는 방식에 대한 이론적 비판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 경제학자들이 노동을 매우 추상적으로 보다면 이는 근본적으로 고전경제학자들이 경제의 대상을 자본‧투자‧기계‧생산물 등의 절차로만 생각했기 때문.


경제적 분석의 대상, 그 대상 영역, 그 일반적인 참조 영역을 구성하고 있던 것을 바꿨다는 이러한 주장 자체가 신자유주의적 분석이 가져온 본질적인 인식론적 변동. 스미스적 유형의 경제분석은 사회구조 내부에서 생산의 매커니즘, 교환의 매커니즘, 소비를 연구. 신자유주의자들의 경제분석은 매커니즘이 아니라 경쟁하는 목표들, 즉 양자택일적이거나 서로 중첩될 수 없는 목적들에 희소 자원이 할당되는 방식을 연구하고 분석. 경제분석은 양자택일적인 목표에 개인들이 희소 자원을 할당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를 그 출발점이자 참조의 일반적인 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


라이오넬 로빈스는 “경제학이란 인간행동의 과학, 서로 배타적 쓰임새를 갖는 희소 수단과 목적 간의 관계로서의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이다.”라고 함.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경제는 노동이 단지 그 톱니바퀴의 하나로만 끼워져 있을 뿐인 매커니즘, 즉 자본‧투자‧생산 같은 사물 혹은 절차 간의 관계의 매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게 됨. 경제의 임무는 인간행동의 형태, 인간행동의 내적 합리성을 분석하는 것. 경제학은 더 이상 절차의 분석이 아니라 행동의 분석이 됨. 절차의 역사적 논리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내적 합리성의 분석이자 개인들이 행하는 활동의 전략적 계획화의 분석.


노동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의 의미는 자본과 생산 사이 어디에 노동이 위치하는 가를 아는 것이나, 노동이 얼마에 팔리고, 기술적으로 노동이 무엇을 생산하며, 노동이 부가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등이 아님. 노동자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이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자원을 사용하는지 아는 것. 노동은 노동자에 의해 실천되고 활용되며 합리화되고 계측된 경제적인 품행으로서 연구되어야 함. 경제분석 내에서 최초로 노동자가 노동력이라는 형식 아래에서의 수요공급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경제 주체가 된다는 것.


경제학적으로 분해하면 노동자의 관점에서 노동은 자본, 즉 능력, 경쟁력. 신자유주의자들에 따르면 노동은 기계, 또 다른 측면에서는 노동은 소득, 즉 임금 혹은 임금의 총체, 신자유주의자들에 따르면 임금의 흐름. 노동이 자본과 소득으로 분해됨에 따라 첫째로 미래의 소득, 즉 임금을 가능케 해주는 것으로 정의된 자본은 소유자와 분리될 수 없게 됨. 노동적성, 능력,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 이 모든 것은 능력이 있고 이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는 자와 분리될 수 없음.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기계로 변형시키고 결국 소외시킨다는 것이 아님.


기계가 소득의 흐름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긍정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야할 필요가 있음. 기계는 수명이 있고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으면 낙후되거나 노화가 됨.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다가, 그 다음에는 임금이 상승하고 기계로서의 노동자가 노화되면 임금이 감소. 그 총체를 기계/흐름의 복합체 같은 것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음. 기계/흐름의 총체라는 관념은 투자된 자본에게 시장에서 팔려야 한다는 노동력이라는 관념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음. 다양한 변수에 따라 임금소득을 받고 그에 따라 노동자 자신이 그 스스로 일종의 기업으로서 등장하는 능력자본이라는 관념. 해석의 기본 요소로 되찾아야 하는 것은 기업이라는 관념. 기업이라는 단위로 구성된 경제, 기업이라는 단위로 구성된 사회, 이것이 자유주의에 결부된 해독의 원리임과 동시에 자유주의에 의한 사회와 경제의 합리화를 위한 계획.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인적자본


신자유주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의 회귀. 고전적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교환하는 인간. 필요라는 문제계로부터 출발하는 유용성의 이론,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고전적 개념. 신자유주의에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교환의 상대방이 아님,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기 자신의 기업가. 자기 자신에게는 자기 자신의 자본, 자기 자신을 위한 자기 자신의 생산자, 자기 자신을 위한 ‘자기’ 소득의 원천으로서의 호모 에코노미쿠스.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변함.


임금은 노동자의 자본에 할당된 보수. 이 자본은 인적자본. 자본을 소득으로 취하는 경쟁-기계는 그 보유자인 인간으로서의 개인과 분리가 불가능. 신자유주의자들은 인적자본이 구성되고 축적되는 방식을 연구하여 완전히 새로운 장, 영역에 경제 분석을 적용할 수 있게 됨.


○인적자본에서 선천적 요소로서 유전학


인적자본은 선천적 요소와 후천적 요소로 구성. 선천적 요소는 유전적 요소와 단순히 선천적 요소가 있음. 유전적 요소는 유전적 장비를 갖고 있다고 해서 댓가를 지불할 필요는 없음. 그러나 유전학을 적용시키는 실제적 이익 중 하나는 바로 위험을 수반하는 개인들 및 개인들이 일생 동안 겪을 수 있는 위험의 유형을 식별할 수 있다는 것. 낮은 위험을 갖는 개인들, 해롭지 않은 개인들을 생산할 수 있는 장비가 있다면 희소한 자원이 됨. 경제적 유통 또는 계산, 양자택일적 선택 내에 전적으로 들어가게 되며 이는 완전히 정상적인 일. 유전적 장비가 자기만큼 좋거나 또는 가능한 한 가장 훌륭한 자손을 갖기를 원한다면 저는 좋은 유전학적 장비를 갖춘 사람과 결혼. 개인들이 자녀들의 생산매커니즘 즉 좋은 유전적 장비의 희소성이라는 문제에서 출발해서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문제계를 찾아낼 수 있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 유전적 요소로 이해되는 인적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녀를 얻고자 한다면 투자가 있어야 함. 이 투자는 충분히 노동을 하고 충분한 소득을 얻으며 그 자신의 자본 자체 역시 많은 사람을 배우자 또는 미래의 인적자본 공동 생산자로서 취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위를 얻어야 함.

유전학과 관련된 문제는 인종주의라는 전통적 용어로 재코드화나는 것은 유용하지도 흥미롭지도 않음. 현실태 자체의 수준에서 무엇을 함의하고 있는가를 그것이 제기하는 현실의 문제들과 더불어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 인적자본의 전반적 개량이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 결혼과 그것에서 귀결되는 출산에 입각해 개인들이 인적자본을 관리하고 선별하며 개량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음. 유전학의 적용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문제는 인적자본의 구성, 증대, 축적, 개량이라는 관점에서 제기.



○인적자본에서 후천적 요소들

신자유주의자들이 새로운 분석 유형을 제시한 것은 후천적 측면, 개인들의 삶에서 다소 자발적인 인적자본의 구성에 대한 것. 교육적 투자. 교육적 투자는 학교수업 또는 직업훈련보다도 훨씬 더 폭넓고 훨씬 더 다양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함. 이 투자, 즉 능력-기계를 형성하는 것은 부모가 교육이라는 활동 범주 바깥에서 자신의 자녀에게 할해하는 시간을 통해 구성. 가정의 어머니가 자녀 곁에서 보내는 시간의 양이 능력-기계의 구성 즉 인적자본의 구성에 매우 중요하며, 어머니가 실질적으로 자녀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경우 더 많은 적응성을 갖게 될 것임. 부모가 자녀에게 할애하는 단순한 양육과 애정의 시간은 인적자본을 구성할 수 있는 투자로서 분석. 같이 지낸 시간, 주어진 보살핌, 부모의 문화 수준, 자녀에 대한 부모의 문화적 자극 등은 인적 자본을 형성할 수 있는 요소들을 구성.

계산이 가능하고 해독도 가능하며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의 가능성을 통해 측정할 수 있는 자녀의 삶에 대한 모든 환경적 분석에 도달. 마찬가지로 의학적 배려에 대한 분석이 가능, 개인들의 건강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전반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가능. 건강보호에 관한 모든 문제들, 공공 위생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인적자본을 향상시킬 수 있거나 없는 요소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인적자본의 요소로서 이주

인적자본을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이주를 꼽을 필요가 있음. 이주는 비용을 발생. 이주 기간 동안 소득이 불가능하고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는데 물질적‧심리적 비용이 발생. 그러나 이 비용은 지위와 보수를 향상시키는 기능, 이주는 투자. 이주자는 일정한 양상을 얻어내기 위해 투자를 행하는 자기 자신의 기업가. 소득을 향상시키기 위한 투자로서 가동성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 이주현상의 문제를 설정하는 것이 가능. 이처럼 행동양식 전체를 개인기업이라는 관점, 투자와 소득으로부터 형성되는 자기 자신의 기업이라는 관점에 입각해 분석.



○혁신과 인적자본

이러한 분석은 19세기 말부터 포착되었으나 제대로 지위를 부여받지 못했던 현상에 대해 재검토할 수 있도록 해줌. 슘페터가 ‘혁신’이라고 불렀던 문제가 바로 그것. 슘페터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실질적으로나 항구적으로나 교정됐다는 것을 관찰. 슘페터의 분석은 비저하 또는 이윤율 저항의 교정이 단순히 제국주의적 현상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으로부터, 다시 말해 발견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고 함. 이는 새로운 기술의 발견이고 새로운 자원과 새로운 생산성 형태의 발견이며, 새로운 시장이나 새로운 노동 자원의 발견이기도 함. 새로움 그리고 혁신의 측면에서 슘페터는 이윤율 저하의 교정이 자본주의의 작동과 완전히 동질적인 것이라고 생각.

신자유주의자들은 이 혁신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혁신의 문제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자본주의의 굳건함이나 경쟁의 항구적인 자극을 신뢰할 수는 없다고 말함. 혁신이 있다면 일정한 자본, 즉 인적자본의 소득, 다시 말해서 인간의 수준에서 행해진 투자 총체의 소득에 다름이 아니게 됨. 신자유주의자들은 총괄적인 인적자본 이론 내에서 혁신의 문제를 취하고 1930년대 이래의 서구 경제사와 일본 경제사를 재검토. 이 국가들이 최근 40~50년간 이뤄낸 엄청난 성장은 토지, 자본, 노동시간으로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주려고 함. 대신 인적자본의 구성, 인적ᄌᅶᆫ이 증가하는 방식, 인적자본이 증가된 영역, 투자의 자격으로 인적자본에 유입된 요소 등에 대한 섬세한 분석만이 오로지 이 국가들의 성장을 설명할 수 있음.

경제성장 정책은 물적 자본의 물적 투자문제 혹은 노동자의 수가 문제가 아님.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의 수준 및 형태를 변형하는 것임. 이러한 측면에서 모든 선진국에서 경제정책 뿐만 아니라 사회정책, 문화정책, 교육정책의 방향이 결정됨. 제3세계 문제 역시 인적자본의 투자 부족이라는 측면에서 다시 생각하게 됨. 16~17세기 서구의 경제 도약 역시 인적자본의 가속화된 축적이 존재했다는 것에 기인했을 수도 있음.

이는 재검토하게 된 모든 역사적 도식인 동시에 실질적으로 이런 새로운 길을 향해 가게 되는 경제성장 정책의 모든 계획화이기도 함. 문제는 그런 정치적 함의가 그 심각함, 밀도 혹은 그것이 야기하는 위협 요인이 이 절차의 수준에서 분석과 계획화의 유효성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잘 보여주는데 있음.

(추가) 사회학이 독점하고 있었던 교육, 문화 및 훈련에 관한 모든 영역을 다른 방식으로 문제화. 신자유주의적 분석에서 이 모든 요소들은 생산적 자본의 구성이라는 형태 아래에서 직접적으로 경제와 그 발전에 포함. 양도-교육-훈련-수준 불평등의 문제. 여기서는 인류학, 윤리학, 노동정치학이 중심이 아니라 자본의 경제학을 중심으로 다시 설정한다. 그리고 기업, 다시 말해 투자/투자자로 간주되는 개인의 삶의 조건들이 자본의 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