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평행론에서의 표현
▶ 유한한 피조물의 관점/신의 관점

- 유한한 피조물의 관점
: 피조물은 사영projection만 본다.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형되고 있는 projection/profile이다. 보통의 지각은 projection들을 흘려보내는데 유한한 피조물의 관점에 서는 순간, 그것들의 연관관계를 파악해 질서를 부여할 수 있다.
: 원(유한)→포물선(무한)→타원(유한)→쌍곡선(무한)[원・타원은 닫히고 포물선과 쌍곡선은 뻗어나가므로]과 같이 projection에 질서를 부여해(일정한 규칙에 따라서) 정렬시킨다. 정렬 방식, 계열을 만드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고 기준을 잡기 나름이다. progression-regression-progression-regression 등과 같은 정렬 방식도 있다. 이와 같은 작업은 주로 파스칼이 많이 했다.
-
- 무한한 신의 관점은 원통 perspective라고 한다. 신은 모든 방향, 모든 면을 돌리면서 다 본다[by 라이프니츠]. 신이 파악하는 것은 géométral[실측도, 평면도]인데 이것은 projection 없는 대상이다.
- 유한한 피조물들이 파악하는 대상은 porjectile/profile로만 존재하는 끊임없이 변환하는 대상이다. 정육면체는 어디서 봐도 3면만 보인다. 이것은 유한한 피조물의 관점이다. 이것을 한꺼번에 동시에 다 보려면 다 펴서 평면도를 만들어야만 한다. 유한자의 관점에서는 움직여서 동시에 6면을 볼 수 없다. 동시에 6면을 다 보려면 평면도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신이 지각하는 대상이다. 신은 projection 없이 원래 대상을 볼 수 있다.
▶ 파스칼의 삼각형[산술 삼각형]

맨 위의 1이 바로 관점이다. 이 관점에서 2의 거듭제곱을 무한하게 발생시킨다. 관점은 발생적 요소라고 한다. 이 관점에 설 때만 variation의 진리가 드러난다[perspectivism] 파스칼의 삼각형을 예를 든 이유는 무한한 계열의 발생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파스칼의 삼각형이라고 하지만 파스칼 이전에도 존재했으며 산술삼각형이라고도 한다.

위의 그림처럼 삼각형이 축을 중심으로 일정한 비율로 회전한다. 삼각형의 projection들은 회전 비율을 자기 안에 함축하고 있으며 삼각형은 계속 돌고 있으므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projection이다.
- 원뿔perspective 안에 원통 perspective가 내재하고 원통 perspective 안에 원뿔 perspective가 내재한다. 각각의 개체적 주체는 세계에 대한 관점인데 여기서 세계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무한한 계열이다. 그것이 개체적 주체 안에 사건의 무한한 계열이 있다.
▶ 평행론의 세 가지 공식
- 질서의 동일성 : 사유속성의 양태(=관념)와 연장속성의 양태(신체, 물체)가 대응한다. 여기서 실재적 인과성의 배제가 나온다. 하나가 다른 하나에 작용할 수 없다.
- 연관(연쇄)의 동일성[원리의 동등성] : 사유속성 안의 양태들이 연관되는 것과 연장속성 안의 양태들이 연관되는 것이 동일하다. 사유속성과 연장속성 둘 중 하나가 우월한 것이 아닌 것처럼 사유속성의 양태들과 연장속성의 양태들에서도 어느 하나가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 존재의 동일성(존재론적 동일성) : 사유속성의 양태와 연장속성의 양태가 하나의 동일한 존재, 동일한 변양이다. 속성은 다르지만 존재론적으로는 하나다. 속성상 다르다고 해서 수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속성만 달리할 뿐 하나의 존재être다.
▶ 실재적 인과성
데카르트의 실재적 인과성에 따르면 정신이 작용을 하면 신체가 작용을 받는다. 정신이 원인이 되고 신체가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영혼이 action이면 신체도 action, 영혼이 passion이면 신체도 passion라고 보았다. 상이한 속성의 양태들 사이에는 실재적 인과성은 없다. 서로 대응할 뿐이다.
▶ 속성의 변용=양태, 실체의 변용=변양
속성의 표현이 양태다. 즉 양태는 속성의 표현이다. 실체는 자신을 표현하고 속성들은 표현들이며, 표현된 것은 본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속성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양태들은 속성들의 표현이며, 표현된 것은 변양이다.
양태는 속성의 변용이다. modificaition=변양은 실체의 변용이다. 형상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속성=형상=존재형식이므로 양태이고 존재론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변양이라고 한다. 속성에 의해 양태들이 구별되지만 존재론적으로는 하나이다. 사유속성의 양태=A라는 관념과 연장속성의 양태=A라는 신체는 형상적으로 구별된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동일한 존재이다. 이것을 표현할 때는 변양이라고 한다.
▶ 사유속성과 연장속성의 표현으로서의 양태
양태들은 속성의 표현으로 직접무한양태, 간접무한양태, 유한양태 세 가지가 있다. 사유 속성에서 보면 각각에는 신관념, 관념들간의 관계/비, 관념들이 해당된다. 연장속성에서는 직접무한양태는 운동과 정지이고 간접무한양태는 전 우주의 얼굴이고 유한양태는 신체/물체들이다.
- 1차적 표현 : 직접무한양태/신관념[무한한 지성]/운동과 정지
- 2차적 표현 : 간접무한양태/실존하는 관념들 간의 관계[비]/전 우주의 얼굴 혹은 실존하는 운동과 정지의 비들의 집합
- 3차적 표현 : 유한양태들/관념들/신체[물체]
▶ 공통개념
스피노자가 『지성개선론』이 미완으로 남은 것은 공통개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구도 자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공통개념을 발견함으로써 『에티카』를 써야 할 필요성이 생겼고 『지성개선론』의 개정을 약속했지만 일찍 죽었다.
20세기 들어 스피노자 연구의 르네상스 시절이 도래하면서 들뢰즈를 비롯해 스피노자의 공통개념에 관심을 갖은 철학자들이 여럿 있었다. 가령, common은 코뮤니스트에게는 매력적인 개념이었다.
공통개념을 이야기할 때 가장 강조하는 것은 공통의 신체가 형성되었을 때 공통의 신체가 갖는 관념이다. 이것은 두 신체에서 추출된 공통점으로 만들어지는 추상적인 관념을 의미하지 않는다. 두 개의 신체가 별도로 있다가 하나의 신체(상위의 신체superior body)의 부분이 되었을 때 바로 상위의 신체가 가지는 관념을 뜻한다. 2종 인식인 공통개념은 주체와 주체로서 결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신체의 형성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 과정과 연관된다.
▶ 명제논리학의 모든 술어를 be 동사 뒤에 붙는 형용사로 환원시키려는 시도
God exists. -> God is existing?
명제논리학에서는 모든 동사도 be동사 뒤의 ing형으로 보어를 만들고자 했다. 보어 자리에 오는 형용사처럼 동사에 ing형을 붙여 주어에 귀속시키고자 한 것이다. 즉 모든 판단을 귀속판단으로 환원시키고자 했다.
이와 같은 귀속판단에 기반해 라이프니츠는 모나드에게 일어나는 일이 모두 모나드에 귀속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주어의 술어가 되는 모든 것들이 주어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는 모든 명제를 분석명제로 만들었다. 본래 “모든 분석명제(술어가 주어 안에 들어가 있음)는 참이다.”이라는 명제를 뒤집어[환위명제] “모든 참인 명제는 분석명제다”라고 주장했다. 주어에 대해 이야기되는dire/be said 모든 술어/사건 들이 주어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주어 안에 세계 전체가 말려있다가 무한히 펼쳐진다는 것이다.
▶ 라이프니츠의 실체(『형이상학 논고』)
모든 실체는 말하자면 전체로서의 하나의 세계이고, 신의 거울, 또는 오히려 하나의 동일한 도시가 조망자의 상이한 위치에 따라 상이하게 보이듯이 각 실체가 자기에게 고유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전우주의 거울이다. 따라서 우주는 말하자면 존재하는 실체의 수만큼 복제되고, 신의 영광도 마찬가지로 그만큼 많은, 그의 작품들에 대한 전적으로 상이한 묘사들을 통해 증대된다.…(실체는) 우주에서 과거, 현재, 미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표현한다.(윤선구 옮김, 52-53쪽)
▶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의 평행론
라이프니츠가 평행론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들뢰즈에 따르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행관계가 아니다. 라이프니츠는 입체와 사영 간의 평행을 이야기했는데 이것은 사실상 우열이 있는 관계이다. 반면 스피노자에게 평행론은 우열이 없는 질서의 동일성, 연관의 동일성, 존재의 동일성으로 나아간다. 진정한 평행론은 스피노자의 체계에 더 맞다.
▶ 관념을 주체에 귀속시키거나 의식으로 환원하는 경향의 문제
관념과 물체는 항상 동일하다고 봐야 한다. 물체들이 만들어지는 만큼 관념들이 만들어진다.
1) 관념을 누구, 즉 ‘주체’의 관념으로 귀속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물체/신체들의 총합이 신이면 관념들의 총합도 신의 관념이 된다. 보편적 사유의 흐름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2) 관념을 의식으로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관념이 더 많다. 니체에 따르면 배탈이 나기 전까지 뱃속에서 일어나는 운동을 의식하지 못한다. 내 신체를 구성하는 작은 신체들이 계속 운동하고 또한 그에 상응하는 관념들이 계속 운동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안의 작은 신체들의 운동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관념들을 의식하지 못한다. 내가의식하지 못하는 관념들이 훨씬 많은 것이다. 이처럼 정신의 차원에서 의식을 무한히 초과하는 무의식이 있다면 신체에 대한 인식을 무한히 초과하는 인지되지 않은 것inconnu도있다.
▶ 철학적 외침(by 들뢰즈)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은 철학적 외침을 내지른다. 선철학적 외침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개념들의 층위와 다른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어느 순간에 멈춰야 한다.”
-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라이프니츠,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 스피노자 “아무도 신체가 알 수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아무도 신체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철학적 외침은 설명되지 않은 것으로 사유의 이미지 같은 것이다. 사유가 전제가 하는 것이고 사유의 실행이 전제하는 것이다.
노자와표▶ 삼위일체의 사례[삼원구도] : 『의미의 논리』 ‘보론1 플라톤과 시뮬라크르’
- 최선의 분유는 두 번째 등급의 존재[이데아 바로 다음 단계의 존재]에서 성립한다. 그래서 분유하지 않는 것, 분유되는 것[분유의 대상], 분유하는 것이라는 신플라톤주의의 유명한 삼원 구도가 나왔다. 이는 곧 근거[형상], 지원의 대상, 지원자(prétendent)의 삼원 구도이며, 아버지, 딸 그리고 구혼자라는 삼원 구도에 비유할 수 있다(이정우 역, 408쪽).
6장 평행론에서의 표현
▶ 유한한 피조물의 관점/신의 관점
- 유한한 피조물의 관점
: 피조물은 사영projection만 본다.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형되고 있는 projection/profile이다. 보통의 지각은 projection들을 흘려보내는데 유한한 피조물의 관점에 서는 순간, 그것들의 연관관계를 파악해 질서를 부여할 수 있다.
: 원(유한)→포물선(무한)→타원(유한)→쌍곡선(무한)[원・타원은 닫히고 포물선과 쌍곡선은 뻗어나가므로]과 같이 projection에 질서를 부여해(일정한 규칙에 따라서) 정렬시킨다. 정렬 방식, 계열을 만드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고 기준을 잡기 나름이다. progression-regression-progression-regression 등과 같은 정렬 방식도 있다. 이와 같은 작업은 주로 파스칼이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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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한 신의 관점은 원통 perspective라고 한다. 신은 모든 방향, 모든 면을 돌리면서 다 본다[by 라이프니츠]. 신이 파악하는 것은 géométral[실측도, 평면도]인데 이것은 projection 없는 대상이다.
- 유한한 피조물들이 파악하는 대상은 porjectile/profile로만 존재하는 끊임없이 변환하는 대상이다. 정육면체는 어디서 봐도 3면만 보인다. 이것은 유한한 피조물의 관점이다. 이것을 한꺼번에 동시에 다 보려면 다 펴서 평면도를 만들어야만 한다. 유한자의 관점에서는 움직여서 동시에 6면을 볼 수 없다. 동시에 6면을 다 보려면 평면도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신이 지각하는 대상이다. 신은 projection 없이 원래 대상을 볼 수 있다.
▶ 파스칼의 삼각형[산술 삼각형]
맨 위의 1이 바로 관점이다. 이 관점에서 2의 거듭제곱을 무한하게 발생시킨다. 관점은 발생적 요소라고 한다. 이 관점에 설 때만 variation의 진리가 드러난다[perspectivism] 파스칼의 삼각형을 예를 든 이유는 무한한 계열의 발생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파스칼의 삼각형이라고 하지만 파스칼 이전에도 존재했으며 산술삼각형이라고도 한다.
위의 그림처럼 삼각형이 축을 중심으로 일정한 비율로 회전한다. 삼각형의 projection들은 회전 비율을 자기 안에 함축하고 있으며 삼각형은 계속 돌고 있으므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projection이다.
- 원뿔perspective 안에 원통 perspective가 내재하고 원통 perspective 안에 원뿔 perspective가 내재한다. 각각의 개체적 주체는 세계에 대한 관점인데 여기서 세계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무한한 계열이다. 그것이 개체적 주체 안에 사건의 무한한 계열이 있다.
▶ 평행론의 세 가지 공식
- 질서의 동일성 : 사유속성의 양태(=관념)와 연장속성의 양태(신체, 물체)가 대응한다. 여기서 실재적 인과성의 배제가 나온다. 하나가 다른 하나에 작용할 수 없다.
- 연관(연쇄)의 동일성[원리의 동등성] : 사유속성 안의 양태들이 연관되는 것과 연장속성 안의 양태들이 연관되는 것이 동일하다. 사유속성과 연장속성 둘 중 하나가 우월한 것이 아닌 것처럼 사유속성의 양태들과 연장속성의 양태들에서도 어느 하나가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 존재의 동일성(존재론적 동일성) : 사유속성의 양태와 연장속성의 양태가 하나의 동일한 존재, 동일한 변양이다. 속성은 다르지만 존재론적으로는 하나다. 속성상 다르다고 해서 수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속성만 달리할 뿐 하나의 존재être다.
▶ 실재적 인과성
데카르트의 실재적 인과성에 따르면 정신이 작용을 하면 신체가 작용을 받는다. 정신이 원인이 되고 신체가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영혼이 action이면 신체도 action, 영혼이 passion이면 신체도 passion라고 보았다. 상이한 속성의 양태들 사이에는 실재적 인과성은 없다. 서로 대응할 뿐이다.
▶ 속성의 변용=양태, 실체의 변용=변양
속성의 표현이 양태다. 즉 양태는 속성의 표현이다. 실체는 자신을 표현하고 속성들은 표현들이며, 표현된 것은 본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속성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양태들은 속성들의 표현이며, 표현된 것은 변양이다.
양태는 속성의 변용이다. modificaition=변양은 실체의 변용이다. 형상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속성=형상=존재형식이므로 양태이고 존재론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변양이라고 한다. 속성에 의해 양태들이 구별되지만 존재론적으로는 하나이다. 사유속성의 양태=A라는 관념과 연장속성의 양태=A라는 신체는 형상적으로 구별된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동일한 존재이다. 이것을 표현할 때는 변양이라고 한다.
▶ 사유속성과 연장속성의 표현으로서의 양태
양태들은 속성의 표현으로 직접무한양태, 간접무한양태, 유한양태 세 가지가 있다. 사유 속성에서 보면 각각에는 신관념, 관념들간의 관계/비, 관념들이 해당된다. 연장속성에서는 직접무한양태는 운동과 정지이고 간접무한양태는 전 우주의 얼굴이고 유한양태는 신체/물체들이다.
- 1차적 표현 : 직접무한양태/신관념[무한한 지성]/운동과 정지
- 2차적 표현 : 간접무한양태/실존하는 관념들 간의 관계[비]/전 우주의 얼굴 혹은 실존하는 운동과 정지의 비들의 집합
- 3차적 표현 : 유한양태들/관념들/신체[물체]
▶ 공통개념
스피노자가 『지성개선론』이 미완으로 남은 것은 공통개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구도 자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공통개념을 발견함으로써 『에티카』를 써야 할 필요성이 생겼고 『지성개선론』의 개정을 약속했지만 일찍 죽었다.
20세기 들어 스피노자 연구의 르네상스 시절이 도래하면서 들뢰즈를 비롯해 스피노자의 공통개념에 관심을 갖은 철학자들이 여럿 있었다. 가령, common은 코뮤니스트에게는 매력적인 개념이었다.
공통개념을 이야기할 때 가장 강조하는 것은 공통의 신체가 형성되었을 때 공통의 신체가 갖는 관념이다. 이것은 두 신체에서 추출된 공통점으로 만들어지는 추상적인 관념을 의미하지 않는다. 두 개의 신체가 별도로 있다가 하나의 신체(상위의 신체superior body)의 부분이 되었을 때 바로 상위의 신체가 가지는 관념을 뜻한다. 2종 인식인 공통개념은 주체와 주체로서 결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신체의 형성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 과정과 연관된다.
▶ 명제논리학의 모든 술어를 be 동사 뒤에 붙는 형용사로 환원시키려는 시도
God exists. -> God is existing?
명제논리학에서는 모든 동사도 be동사 뒤의 ing형으로 보어를 만들고자 했다. 보어 자리에 오는 형용사처럼 동사에 ing형을 붙여 주어에 귀속시키고자 한 것이다. 즉 모든 판단을 귀속판단으로 환원시키고자 했다.
이와 같은 귀속판단에 기반해 라이프니츠는 모나드에게 일어나는 일이 모두 모나드에 귀속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주어의 술어가 되는 모든 것들이 주어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는 모든 명제를 분석명제로 만들었다. 본래 “모든 분석명제(술어가 주어 안에 들어가 있음)는 참이다.”이라는 명제를 뒤집어[환위명제] “모든 참인 명제는 분석명제다”라고 주장했다. 주어에 대해 이야기되는dire/be said 모든 술어/사건 들이 주어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주어 안에 세계 전체가 말려있다가 무한히 펼쳐진다는 것이다.
▶ 라이프니츠의 실체(『형이상학 논고』)
모든 실체는 말하자면 전체로서의 하나의 세계이고, 신의 거울, 또는 오히려 하나의 동일한 도시가 조망자의 상이한 위치에 따라 상이하게 보이듯이 각 실체가 자기에게 고유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전우주의 거울이다. 따라서 우주는 말하자면 존재하는 실체의 수만큼 복제되고, 신의 영광도 마찬가지로 그만큼 많은, 그의 작품들에 대한 전적으로 상이한 묘사들을 통해 증대된다.…(실체는) 우주에서 과거, 현재, 미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표현한다.(윤선구 옮김, 52-53쪽)
▶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의 평행론
라이프니츠가 평행론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들뢰즈에 따르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행관계가 아니다. 라이프니츠는 입체와 사영 간의 평행을 이야기했는데 이것은 사실상 우열이 있는 관계이다. 반면 스피노자에게 평행론은 우열이 없는 질서의 동일성, 연관의 동일성, 존재의 동일성으로 나아간다. 진정한 평행론은 스피노자의 체계에 더 맞다.
▶ 관념을 주체에 귀속시키거나 의식으로 환원하는 경향의 문제
관념과 물체는 항상 동일하다고 봐야 한다. 물체들이 만들어지는 만큼 관념들이 만들어진다.
1) 관념을 누구, 즉 ‘주체’의 관념으로 귀속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물체/신체들의 총합이 신이면 관념들의 총합도 신의 관념이 된다. 보편적 사유의 흐름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2) 관념을 의식으로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관념이 더 많다. 니체에 따르면 배탈이 나기 전까지 뱃속에서 일어나는 운동을 의식하지 못한다. 내 신체를 구성하는 작은 신체들이 계속 운동하고 또한 그에 상응하는 관념들이 계속 운동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안의 작은 신체들의 운동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관념들을 의식하지 못한다. 내가의식하지 못하는 관념들이 훨씬 많은 것이다. 이처럼 정신의 차원에서 의식을 무한히 초과하는 무의식이 있다면 신체에 대한 인식을 무한히 초과하는 인지되지 않은 것inconnu도있다.
▶ 철학적 외침(by 들뢰즈)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은 철학적 외침을 내지른다. 선철학적 외침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개념들의 층위와 다른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어느 순간에 멈춰야 한다.”
-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라이프니츠,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 스피노자 “아무도 신체가 알 수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아무도 신체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철학적 외침은 설명되지 않은 것으로 사유의 이미지 같은 것이다. 사유가 전제가 하는 것이고 사유의 실행이 전제하는 것이다.
노자와표▶ 삼위일체의 사례[삼원구도] : 『의미의 논리』 ‘보론1 플라톤과 시뮬라크르’
- 최선의 분유는 두 번째 등급의 존재[이데아 바로 다음 단계의 존재]에서 성립한다. 그래서 분유하지 않는 것, 분유되는 것[분유의 대상], 분유하는 것이라는 신플라톤주의의 유명한 삼원 구도가 나왔다. 이는 곧 근거[형상], 지원의 대상, 지원자(prétendent)의 삼원 구도이며, 아버지, 딸 그리고 구혼자라는 삼원 구도에 비유할 수 있다(이정우 역, 4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