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note[스피노자와 표현 문제] 20200904

권순모
202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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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절대적인 것



신이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려면 절대적으로 단순한 형상=개념notion=요소[궁극적, 최종적, 환원불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2+2=4를 소수(premier, 가장 바탕이 되는 수)로 증명/소수는 원시적[원초적] 단순 개념

정의 1 : 2=1+1

정의 2 : 3=2+1

정의 3 : 4=3+1

4=2+1+1

3

4

→ 정의와 정의 대상은 상호 포함 관계이다. 정의를 연쇄시켜 증명한다.



절대적으로 단순한 개념은 신[무한한 지성]에게만 있어 유한한 지성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개념만을 파악할 수 있다. 절대적으로 단순한 개념과 상대적으로 단순한 개념은 상징적 관계이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개념은 무엇인가? 기하학의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단순한 개념은 소수이고 가시성의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단순한 개념은 원색이다. 물리학에서 상대적으로 단순한 개념은 조형적 힘, 탄성적 힘이고, 생물학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단순한 개념은 코나투스이다. 각 영역과 관련된 기본적 개념은 자기 자신만 포함하므로 더이상 정의가 불가능하다. 숫자 1, 점도 그렇다. 2+2+4가 정의가 가능한 것은 정의 불가능한 것(소수)으로 분해했기 때문이다. 점들의 succession이 선이다. 선 개념 안에는 점이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점에는 다른 개념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자기동일자들은 자기만 포함하고 있어 정의가 불가능하다. idetique à soi=자기동일자. disparate[이질적]한 것들끼리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즉, 원시적 단순 개념끼리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에 양립 가능하며 모순되지 않는다. 자기자신만 포함하므로 하나의 주어에 동시에 서로 모순없이 술어가 될 수 있다. 원초적인 단순 개념 사이에는 양립 가능하고 모순이 있을 수 없으므로 신은 가능하다. 이것이 라이프니츠의 기본적 논리이다.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가 신은 무한하게 완전하다고 정의했으나 무한하게 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고 생략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원초적 단순 개념이 신을 구성하고 있고, 단순 개념/형상들 사이에 모순이 있을 수 없고 양립가능하기 때문에 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시적인 단순 개념이 스피노자에게는 속성이다. 그는 실재적 구별의 논리로 양립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런데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가 양립 가능하고 모순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이는 오해거나 모른 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가 스피노자의 『윤리학』의 초반부의 전체 논리를 무시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윤리학』의 1부 명제8까지 속성의 양립 가능성, 모순적이지 않다는 것을 모두 증명한 바 있다.



2+2=4를 2+2가 4에 포함되어 있거나 4가 2+2에 포함되어 있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런데 2=2+4는 requisit 안에 포함되어 있다. requisit은 영역, 즉 원초적 기본 개념들로부터 생겨날 수 있는 모든 대상들을 품고 있는 씨앗/배아이다. 예를 들어 최초의 원시파리 안에는 이후에 생겨날 모든 파리들을 가능태 형태로 포함하고 있다. 원색으로 무한한 색으로 만들 수 있다. 인간은 상대적인 이 원초적 기본 개념까지만 파악할 수 있으며 절대적인 단순한 개념에는 도달할 수 없다.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가 단순하다는 것을 부분들로 분해되지 않는 것으로 잘못 이해했다고 비판하고 단순한 것은 부분들로 분해되지 않더라고 개념들로 분해될 수 있으며 개념들로 분해되면서 더이상 분해되지 않은 것이 정의불가능한 자기동일자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cf. 절대적으로 단순한 개념과 범주 : 범주는 ‘모든 것은 ~다’라는 의미로 절대적으로 단순한 개념처럼 범주들끼리는 disparate하므로 양립가능하고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17세기에는 절대적으로 단순한 개념은 무한으로 직접 상승 가능해야 한다고 인식했다는 점이 범주와의 차이였다.



실체가 속성들이 합성된 것이라고 본다면 단순한 것들이 곧 속성을 의미한다. 여기서 단순하다는 것은 개념들로 더이상 쪼개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속성은 동사이다. 들뢰즈는 스피노자에게 속성은 동사를 의미한다고 본다. 여기서 동사는 사랑하다, 증오하다 등의 사유속성과 태어나다, 죽다, 싸우다 등의 연장속성을 나타내는 부정법동사를 의미한다. 사유 속성이 표현하는 것은 인식하고 사유하고 이해하는 역량이고 연장 속성의 실체의 본질은 agir(행동하다, 행위하다, 작용하다, 실존하다)이다.



그런데 라이프니츠는 속성attribut이라는 말은 쓰는데 그것은 술어이고 사건을 뜻한다. 개체적 개념이 라이프니츠에게는 실체이다. 즉 라이프니츠에게는 무한히 많은 실체가 있다. 개체적 개념 안에는 그 개체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들어 있다. 여기서 개체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개체의 술어인데 라이프니츠는 가끔씩 이것을 속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을 형용사의 질(예, 하늘은 파랗다)로 생각하면 안된다. 사실상 스피노자가 부정법동사를 이해하는 것과 비슷하다.



5장 역량



- 실재성=완전성

- 표상적objective-관념/형상적formal – 사물



개구리의 관념(표상적 실재성) ⊂ 신의 관념

↑ (실재성의 양) ↑

사물로서의 개구리(형상적 실재성) ⊂ 신



대상이 있어야 관념이 생긴다. 대상이 있는 어떤 것이 갖는 실재성이 표상적 실재성이다. 한편, 관념 자체가 갖는 실재성은 형상적 실재성이다. 즉 신 관념과 개구리 관념도 서로 다른 형상적 실재성을 갖는데 그것은 내생적/내재적인 실재성[자체로 갖는 실재성]이고, 대상과의 관계에서의 표상적 실재성은 외생적이다. 17세기 철학에서는 관념끼리 대상과 무관하게 연쇄 질서의 차원이 있다고 생각했다[정신적 자동장치]



*스피노자에게 관념은 무엇이고 affect는 무엇인가? 1978.2.24.강의

관념은 표상적, 재현적 사유 양태로서 대상이 있다. 재현하는 것으로서의 관념이 갖는 실재성이 표상적 실재성이다. affect는 비표상적 사유 양태로서 대상이 없어 재현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희망, 불안, 사랑은 재현적이지 않다. 관념 자체도 형상적 실재성을 갖는다. 이때 관념의 관념이 표상적 실재성을 갖는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관념은 있지만[관념을 전제하기는 하지만] 사랑 자체는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다. 비표상적 사유양태로 이것들은 affect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affect는 관념이 아니다. 이처럼 사유에는 재현적 사유(관념)과 비재현적 사유(affect)가 있다.



충분 이유[충족 이유, 충분한 이유의 원리]는 ‘모든 것은 원인이 있다’는 것과는 다르다. 가령,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몇 날 몇 시 누군가 물이 가열하면 100도에서 끓는 이유는 그 개체적 개념 안에 있다.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너(원인) 로마제국을 건설하다(결과)’라는 사건의 원인-결과의 계열 전체(총체)가 카이사르라는 개체적 개념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즉 개념적 개념 안에 개체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충분 원인은 없고 충분 이유는 있다. 충분 이유는 수학에서 말하는 충분 조건에 가깝다.



원인cause은 사물과 사건에 있다[필연성의 영역].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이유reason는 개념, 즉 사건/사물/사람 간의 관계에 있다.



puissance잠재태–acte 현실태

대부분의 것들은 잠재태이면서 현실태이다(동→동상→종). 아리스토텔레스는 a. 순수한 잠재태가 있다고 주장하며 이것을 제1질료라고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형상(acte)은 목적에 종속되어 있다. b. 신플라톤주의에서는 puissance는 acte이다. 홉스도 이렇게 말한다.

이 두 전통이 스피노자에 와서 합쳐진다(a+b). 스피노자는 puissance-agir(행위, 작용)과 puissance-pâtir(겪는다, 입는다)로 나눈다. 그리고 puissance는 현실적[실행되지 않는 것은 없다]이라고 보고 이것을 작용역량/피작용역량으로 나눈다.



라이프니츠, 스피노자처럼 17세기 철학자들은 virtuel한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actual하다고 보았다. 신 안에는 무한한 가능 세계가 있고 그것을 하나씩 펼친다. 어느 것이 최선이냐? 그 기준은 도덕이 아니라 어느 것이 가장 완벽하게 연속적이냐에 있다. 그래서 미분을 만들어냈다. 불연속을 싫어하고 완벽하게 연속적이며 인과관계가 맞아야 한다고 보았다. 라이프니츠는 possible(가능태, 무한)한 것 중 어느 하나만 real하게 되는데 그것이 곧 actual한 것이라 본다. 이에 따르면 선택되지 않은 것은 배제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