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note[프루스트와 기호들] 20200907

권순모
202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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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와 기호들 1부 결론 사유의 이미지

▶ 전통철학에서는 선재하는 진리가 있고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인식이고 사유라고 본다. 또한 대상과 일치되는 관념을 갖는 것을 진리를 인식한다고 본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대상과의 일치 여부와는 무관하게 관념들끼리 서로 연쇄되고 서로에게서 연역‧추론되는 법칙이 있다고 본다. 그것이 바로 정신적 자동장치이다. 그리고 관념의 원인은 대상이 아니라 다른 관념이다. 참된‧적합한 관념은 원인을 표현한다. 원인을 표현하는 참다운 관념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진리가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가진 관념이 원인에 관한 인식, 즉 적합한 인식이라면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태양이 열을 방출하는 것은 나를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태양이 밀랍을 녹게 만드는 것은 밀랍을 미워해서가 아니다.

▶ 합리주의 전통에서는 자연적으로 참된 진리를 찾으려는 의지를 선의지라고 한다. 관념들이 서로 연쇄된다고 할 때 그것은 통상 가능성의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사유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내가 실제로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르다. 나에게 사유할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실제로 사유할 수 있는 상태로 넘어가려면 쇼크[noos-choc]가 필요하다. 그래야 자동장치가 작동한다.

쇼크[=폭력 : 프루스트의 표현]가 없으면 그냥 가능성으로만 남는다. 충격이 가해지지 않으면 어떤 것의 의미를 규약적 의미로만 파악하게 될 뿐이다. 예를 들어 밭 가는 말과 경주마가 다름에도 그냥 말이라고 하면 통상의 이미지로서의 말을 떠올릴 뿐이다. 쇼크가 없으면 사회적이고 역사적으로 규정된 의미들의 연쇄assocation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쇼크가 필요하다. 사유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전통철학에는 사유하는 사람의 선의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참을 찾기 위해서 자연적으로 사유를 하게 되어 있다는 전제가 있다.

but 프루스트/들뢰즈에 따르면 쇼크가 있기 전에 우리는 사유를 한 게 아니다. 그냥 재인식하는recognize 것이다. 가령,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규약적 의미에 따라 컵을 물이나 음료수를 따르는 데만 쓰는 도구라고 인식하는 것은 사유가 아니다. 컵이 다양하게 쓰이며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사유다. 컵의 역량, 본질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쉽게 생각해 보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사유라 할 수 있다. 진리를 찾으려는 선의지로는 사유는 불가능하고 규약적이고 관례적인 의미를 확인하거나 재인식하는 데 그칠 수 있다.

▶ 사유의 이미지란 사유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갖는 이미지를 말한다. 사유가 활동하기 전에 미리 전제된 이미지(‘사유란 이런 것이다’)가 있다. 사유의 활동이나 방법에 선재하는 이미지가 있다는 의미이다.

▶ 철학이나 우정은 전달가능한 의미signification를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회적 역사적으로 고정된 의미를 공유하는 게 철학이고 우정이다. 익숙하고 편한 존재로서의 기성의 가치들을 공유하는 게 친구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친구는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며 가치관을 공유하는 대상을 말한다. 물론 친구도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모든 개념이 한가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코뮨이 돌아온다』에서 강조하는 친구는 함께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대상을 의미한다. 권력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nūs choc를 주며 기쁨과 역량을 증가시켜주는 친구들은 소중하다.

▶ ‘프루스트와 기호들’ 결론에서 칸트의 비판철학에 해당하는 부분

“모든 능력들은 함께 조화를 이루고서 그러나 그것들은 임의적으로, 또 추상적으로 서로 위계와 바꾼다. 이와 반대로 하나의 능력이 비자발적인 형태를 가질 때마다 이 능력은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그 한계를 극복한다에 도달한다. 이 능력은 초재적으로 실행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faculty는 대개 능력이라고 번역하지만 정확히는 정신의 여러 가지 기능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faculty는 두 가지 의미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는 대상 또는 주체와의 관계에 따라 나뉜다.

1) 인식 faculty : 이성의 사변적 관심 – 대상과의 일치나 합치
2) 욕구 faculty : 이성의 실천적 관심 – 대상과의 인과관계
3) 쾌감, 고통[통감] faculty : 감성론 혹은 미학?? - 주체의 affection

인식 faculty는 대상과의 일치나 합치를, 욕구(욕망) faculty는 대상과의 인과관계를, 쾌감, 고통 faculty는 주체의 affection(변용)를 따진다.

두 번째는 표상(representation)의 원천에 따라 나뉜다.

1) 감성 faculty ← 직관 : 직관의 원천은 감성
2) 지성(오성) faculty ← 개념 : 개념의 원천은 지성
3) 이성 faculty ← 이념Idea : 이념의 원천은 이성

두 가지 의미 구분에 따르면

- 인식 faculty[이성의 사변적 관심]의 경우에 이성이 중요한 역할을 지성에 일임한다. 지성이 주도적 역할을 하며 감성과 이성은 보조 역할을 한다. 즉 인식 faculty에서는 지성이 입법을 하고 감성과 이성은 지성이 결정하는 임무에 따른다.

- 욕구 faculty[이성의 실천적 관심]에 가면 이성이 주도적/지배적 역할을 하고 감성과 지성이 보조한다. 즉 이성이 입법을 하고 이성이 결정해준 perspective 안에서 지성이 활동한다.

→ 어떤 faculty냐에 따라 이성의 관심에 따라서 위계가 생겨 유기적으로 조화롭게 협력해 일을 한다. 인식이나 도덕[이성의 실천적 관심]에서는 감성, 지성, 이성 중 하나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나머지가 보조적 역할을 하면서 조화를 이룬다. 그런데 그것이 판단력 비판에 가면 깨지고 불일치가 일어난다.

각 faculty에는 상위 실행(superior exercise)과 하위 실행이 있다.

인식 faculty
하위실행 : 대상에 대한 인식이 경험에 의존하는 것
상위실행 : 인식의 법칙이 자기 안에 있다는 것.

욕구 faculty
하위실행 : 대상, 질료와 관련되는 경우
상위실행 : 자체 내에서 법칙을 찾는 경우(질료나 내용을 빼면 보편적 입법의 형식[정언명령]만이 남는다.)

사실상으로 경험상으로 인 식faculty, 욕구 faculty, 쾌감 faculty은 늘 뒤섞인다. 하지만 권리상으로 섞이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인식 faculty 자체 내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게 가능한가가 바로 칸트의 질문이다. 즉 상위 형식을 가질 수 있느냐?를 질문한다. 이것이 프루스트와 기호들의 1부 결론에서 말하는 초재적[초월적] 실행이다.

parole의 경험적 실행은 볼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을, 초월적 실행은 오로지 말할 수만 있는 것, 즉 법칙이 자기 자체 내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시각의 경험적 실행은 말할 수 혹은 기억할 수 있는 것 등등을 보는 것, 초월적 실행은 오로지 볼 수만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초월적보다는 경험으로부터 초월했다는 의미에서 초험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순수한 봄, 순수한 파롤이 있느냐? 있다면 그것이 상위의 형식인 것이다. faculty가 상위의 형식을 가지면 자율적이 된다. 다른 faculty와는 무관하게 작동한다.

인식은 기본적으로 종합이다.
1) 직선은 흰색이다. : 경험적, 후험적(a posteriori) 종합판단[경험에 의존하는]
2) 직선은 최단 경로다 : 선험적(a priori) 종합판단[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여기서 흰색, 최단 경로는 직선이라는 주어의 개념 안에 들어있지 않다. 둘 다 판단을 위해서는 직선 밖으로 나가야 한다. 주어 개념 안에 들어 있는 술어를 갖다 붙이면, 예를 들어 ‘총각은 결혼하지 않는 남자다’라는 것은 분석 판단이고 들어있지 않는 술어를 갖다 붙이면 종합이다. 모든 인식은 종합이다. 그러므로 칸트가 말하는 인식은 보통 우리가 얘기하는 경험적 지식과 다르다.

1)은 경험적 종합판단으로 법칙은 경험 대상에 있다. 인식능력의 대상에 자기를 갖다 맞춘다.
2)은 선험적 종합판단으로 법칙은 경험에 있지 않다. 인식 대상이 우리의 인식능력에 따른다.
그러므로 선험적 종합판단이 상위 인식의 faculty를 정의한다.

선험적 종합 판단에서 선험성의 특징은 보편과 필연이다. ‘물을 100도까지 가열하니 끓인다’는 행위를 수없이 반복해도 ‘내가 물을 가열하면 물은 반드시 100도에서 끓는다.’는 판단이 나오지 않는다. ‘매번, 틀림없이, 필연적으로 ~을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다. 또한, ‘내일 해가 뜰 것이다’라고 해도 그것은 내일이 오늘이 되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여기서 내일은 경험 속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a prior는 경험과 독립적이다. 이처럼 경험과는 독립적으로 구성한 개념이 인식이다. 인식 faculty에서는 그때 상위 인식을 갖는다. 경험과는 독립적으로 인식 능력이 실행된 것이다. 즉 이것이 경험과는 독립적인 상위실행을 의미한다.

구성적 판단과 반성적 판단
1) 구성적 판단 : 일반적인 것이 주어지고 특수한 것은 아직 주어지지 않은 판단
2) 반성적 판단 : 특수한 사례는 주어졌으나 개념, 범주가 주어져 있지 않는 판단

구성적 판단은 일상적인 판단 활동에 해당되는데, 선재하고 있는 개념을 주어진 특수한 사례에 대입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살인이라는 개념과 살인의 하위개념이 이미 주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과실치사, 계획적 살인, 우발적 살인 여부만 확인하면 된다.

반성적 판단은 어떤 특수한 사례가 일어났는데 그것이 어떤 개념에 포섭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재판에서 판례가 없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들뢰즈는 택시에서 담배를 피는 경우를 사례로 든다. 그것은 버스라는 대중교통수단에서의 금연이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 행위인가? 혹은 돈을 내고 빌린 사적 공간에서 일어난 행위인가? 영화의 장르들을 개념이라고 본다면 갑자기 한 영화에서 그것의 장르나 범주에 맞지 않는 이미지들이 튀어나올 때 그것을 어떤 개념으로 포섭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긴다.

이처럼 장르 또는 개념이 포섭할 수 없는 어떤 특수한 것이 개념, 범주의 한계를 향해 갈 때가 있다. 이것을 자신의 한계에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이때가 바로 사유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반성적 판단은 사유하게 만드는 쇼크 같은 것이다.

→ 하나의 faculty가 자기 고유의 한계를 발견하고 한계에 도달한다. 이때 초월적 실행이라 한다. 즉 비자발적이고 초월적인 실행으로서 상위 형식의 실행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인식 faculty에서 말하듯 대상을 인식하고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은 자발적인 것이다.


▶ 스피노자에 따르면 어떤 대상을 만나[폭력적 마주침] 우연히 기쁨을 느끼거나 슬픔을 느끼는 것은 1종 인식에 속한다. 이때 그 기쁨의 원인을 찾고 그것을 증가시키고 조직하려 노력하는 것이 바로 지성이다. 기쁨의 원인 찾고 기쁨의 대상과의 마주침을 조직화하려는 노력은 이성이나 지성이 하는 것이다.

▶ au hasard de rencontre : 우연한 마주침대로(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 기쁨을 주는(혹은 역량을 증가시키는) 마주침을 조직화하지 않고 주어진 대로, 마주치는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