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생명관리정치의 탄생] 4강

권순모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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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8일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4강. 1979년 1월 31일

(임의 제목 : 독일 신자유주의 형성의 역사 – 경제적 자유가 국가 정당성의 기초가 된 과정)

 

국가혐오(113~115쪽)

1950~52년, 藝術史家 버나드 베런슨 “내가 원자폭탄에 의한 세계파괴 ... 못지 않게 두려워하는 것이 ... 바로 국가가 인류를 침략하는 것이다”

국가혐오는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원천에서 기인하고 수많은 주동자들이 있다.

주동자 가운데 정치적 망명자들은 1920년, 1925년 이후부터 현대 세계의 정치의식을 형성하는데 분명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19세기 말의 정치적 망명은 소위 사회주의의 대대적인 전파자 역할을 담당했다. 이에 비해 20세기의 정치적 망명, 정치적 반체제 세력은 반국가주의나 국가혐오의 중요한 전파자 역할을 했다.

국가혐오는 통치성 위기의 중요한 징후들 중 하나이다. 18세기 말 전제주의, 압제, 독재,에 대한 비판, 혐오와 같은 통치성의 위기가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국가에 관해 막연한 혐오가 있다. 국가 또는 국가혐오를 둘러싼 이 문제를 통치성에 관한 분석을 출발점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방법의 문제 : 권력메커니즘 분석에서 국가 이론을 괄호친 것의 의미와 관건(115~117쪽)

국가 또는 국가혐오를 통치성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이 작업은 국가이론을 건너뛰고 있고 건너뛰고자 하고, 건너뛰어야만 한다.

국가이론을 건너뛴다는 것은 국가메커니즘의 현존과 효과를 소거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국가화를 포착하는 작업이다.

국가이론을 건너뛴다는 것은 국가의 본성, 구조, 기능 등을 그 자체로서 그리고 그 자체를 위해 분석하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의미.

국가이론을 건너뛴다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보편자로서의 국가가 어떤 것이냐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그것을 계속 확장시켜 우리의 사회 같은 한 사회에서 광인, 병자, 어린이, 비행자 등의 지위가 어떤 것일 수 있는지를 연역하려 하지 않는 것을 의미.

국가의 본질인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으로부터 연역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런 분석을 건너뛰는 이유는 첫째, 역사가 연역적인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고 둘째(훨씬 중요), 국가가 본질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고 그 자체 권력의 독자적 원천도 아니다.

국가는 부단한 국가화 혹은 부단한 다수의 국가화에 의해 발생된 효과이고 그 외형이며 그 유동적인 절편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는 재원, 투자양식, 결정의 중심, 관리의 형태와 유형, 지방권력과 중앙관청 간의 관계 등을 바꾸거나 이동시키거나 동요시키거나 은밀히 유입시키거나 하는 부단한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효과. 국가는 다수의 통치성 체제가 불러일으키는 유동적 효과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 잘 드러나는 주제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국가를 둘러싼 불안, 국가혐오에 대해 분석, 재검토를 제안한다. 이러한 국가 문제에 대한 탐구를 수행하는데 국가에서 그 비밀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국가 외부로 이동해 통치성의 문제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실천 : 1948~62년 독일 신자유주의, 미국 신자유주의(117쪽~120쪽)

- 자유주의 통치성이 현재 어떻게 자기 자신을 프로그래밍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18세기부터 20세까지 반복되어 나타난 문제를 포착하고 명백히 하려고 한다. 다음 세 주제를 파악하고자 함. 1. 법과 질서의 문제, 2. 시민사회와의 대립에서 발생하는 국가 문제, 3. 생명관리 정치 문제.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래밍은 두 가지 주요 형태로 포착된다.

1. 독일 신자유주의 : 바이마르 공화국, 1929년의 위기, 나치즘의 전개, 나치즘의 비판, 戰後 독일 재건.

2. 미국 신자유주의 : 뉴딜정책,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대한 비판, 전후 연방정부의 개입주의, 해리트루먼․존F 케니디․린든․존슨 등 민주당 행정부가 수립한 프로그램에 맞서 전개.

- 두 형태 사이에는 많은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공통의 적이며 학설상의 중요한 반대자인 케인즈,

두 번째는 동일한 혐오 대상인 통제경제, 계획, 국가의 개입주의, 총량에 대한 개입주의

세 번째는 두 형태의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순환했던 모든 일련의 학자, 인물, 이론, 저서(대체로 오스트리아 학파, 오스트리아 신자유주의, 인물로는 폰 미제스, 하이에크 등과 관련)


독일의 신자유주의 (1) : 정치적, 경제적 맥락(120~121쪽)

- 통치성의 문제와 관련해 독일 신자유주의가 다른 것들보다 이론적으로 더 중요해 보인다.

- 1948년 4월 유럽에서는 다음 세 요청에 의해 명령된 경제정책이 군림하게 된다.

1. 재건의 요청 : 전시경제의 평시경제로의 재전환, 파괴된 경제적 잠재력의 재구성 등

2. 재건의 주요도구로서의 계획화 요청 : By 국내 수요와 마셜플랜(유럽재건프로그램)의 압력

3. 파시즘이나 나치즘 재출현을 피하기 위해 제기된 사회적 목표에 의해 구성된 요청

이 세 요청이 함의하는 것은 개입정책이다. 즉 자원 배분, 가격균형, 저축수준, 투자 선택에 관련된 개입정책, 완전한 고용정책. 케인즈주의 정책.

 

1947년 에르하르트가 소집한 학술위원회와 그 프로그램 : 가격 자유화와 통치 개입의 제한(121~122쪽)

1947년 12월. 바이존이라고 불리던 지역 영국과 미국에 의한 점령지역 안에 독일 경제행정부 산하 학술위원회 형성되어 있었다.

학술위원회는 1948년 4월 18일 보고서를 제출하여 다음의 원칙을 표명한다. “학술회원회의 의견에 의하면 경제절차를 이끌어가는 기능은 가격메커니즘에 의해 가능한 한 최대한 폭넓게 보증되어야만 한다.” 이 원칙으로부터 다음의 결론이 도출된다. 즉 세계가격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가격의 자유화가 즉시 요구된다는 결론.

 

1948년 에르하르트가 규정한 무정부상태와 ‘흰개미 국가’ 사이의 중간 길(122~125쪽)

1948년 4월 28일 프랑크푸르트 총회에서 에르하르트(당시 바이존의 경제관리국장이자 독일 측 경제행정 책임자. 1951년 경제장관이 되고 독일 경제의 기적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인물)가 가격 자유의 원칙을 세우고 가격의 단계적 자유화를 요구한다.

에르하르트의 연설 : “국가의 억압으로부터 경제를 해방시켜야만 한다”. “ 무정부상태와 흰개미 국가를 동시에 피해야만 한다”왜냐하면 “시민의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확립하는 국가만이 정당하게 인민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기 때문”.

에르하르트의 연설은 경제적 자유주의보다 훨씬 더 일반적인 원칙, 즉 국가에 의한 개입을 일반적으로 제한해야한다는 원칙의 내부에 개입되어 있다. 그리고 에르하르트의 연설은 국가 정당성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


그 이중적 의미 : ① 국가의 정치적 대표성의 조건이 되는 경제적 자유의 존중(125~126쪽)

“시민의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확립하는 국가만이 정당하게 인민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기 때문”

이 구절의 두 가지 의미 중 첫째는 근본적 자유, 시민의 근본적 법권리를 침해한 국가는 더 이상 시민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 구절은 다음의 전술적 목표에 상응한다. 즉 나치즘의 입법적 또는 법규적 범위 내에서 행해졌던 것들에 대해 독일인들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지만 반면에 그 국가는 소급적으로 대표권을 상실했고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국가가 행한 것은 독일 국민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이라고 여겨질 수 없다는 것이다.


② 정치적 주권 형성의 단초가 되는 경제적 자유의 제도화(126쪽)

둘째는 1948년 독일 재건 이전 상태에서 새로운 독일 국가를 기초하기 위한 역사적 법권리와 사법적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를 인정하고 그 결과 개인의 자유와 책임에 자리를 마련해주는 국가만이 인민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역사에서 상실된 상태에 있는 역사적 법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독일이 분할 점령되어 있는 상태에서 자신을 표명하는(독일을 대표할만한) 기구, 합의, 집단의지가 없으므로 사법적인 정당성 요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당대 독일 통치성의 근본적 특징 : 사법적 정당성과 정치적 합의의 원천이 되는 경제적 자유(126~130쪽)

- 에르하르트의 텍스트가 함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즉 경제적 자유라는 제도가 정치적 주권을 만들어 내기 위한 사이펀(유체를 중력에 반하여 끌어올릴 수 있는 기구) 또는 기폭제로 기능해야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의 행사를 보증함으로써 국가를 정당한 것으로서 창설한다는 관념이다. 현대 독일 통치성의 근본적 특징 중 하나. 경제는 국가를 위해 정당성을 생산하며 국가는 이 경제의 보증인이다. 즉 경제가 공법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현대 독일에서는 언제나 경제제도에서 국가로 가는 회로가 발견된다. 이 경제제도로부터 출발하는 국가의 항구적 발생, 국가의 항구적 계보가 존재하는 것이다.

- 경제적 자유는 법권리의 정당화와 함께 항구적인 (정치적) 합의를 생산한다. 여기에서 항구적인 (정치적) 합의는 투자자, 노동자, 고용주, 노동조합 모든 경제 참여자들이 이 자유의 경제 게임을 수락한다는 조건 아래에서 생산되는 합의.

경제적 자유가 생산한 법권리의 정당화와 항구적 합의는 경제제도로부터 국가에 이르게 되는 계보와 대칭을 이루며 경제제도로부터 체제 및 체계에 대한 인구의 포괄적 지지에 이르게 되는 회로를 생산하게 된다. 이것이 경제성장.


과거와 단절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역사의식의 축이 된 경제성장(130~133쪽)

- 16세기 독일에서 개인의 부유화는 구원의 징표인 것에 반해, 20세기 독일에서 개인의 부유화는 포괄적 부유화의 징표가 된다. 개개인이 국가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의 일상적인 징표. 즉 경제가 권력의 구조, 메커니즘, 그 정당화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정치적 징표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독일 마르크, 견실한 성장률, 확대되는 구매력, 유리한 국제 수지 등은 현대 독일에서 적절한 통치가 가져다준 효과이기도 하지만 국가를 창설하는 합의가 부단히 표명되고 강화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국가는 스스로의 현실적 기초를 경제적 자유의 존재와 실천 속에서 재발견하는 것이다. 독일 국가는 경제를 통해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의 시간성이 아닌 경제성장의 시간성이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독일기독교민주동맹과 독일사회민주당의 동의(133~141쪽)

에르하르트 연설 후 1948년 6월부터 가격 자유화가 전개되었다. 공산품 가격,식품 가격, 석탄 가격, 전기요금의 자유화. 그리고 1953년 대외 무역을 위한 교역 자유화 달성되면서 경제 자유화가 거의 이뤄졌다.

경제 자유화는 독일에서 많은 저항을 유발했다. 가격 자유화가 가격 상승을 초래했기 때문이다.독일 사회주의자들은 에르하르트 해임을 요구하고 통제경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총파업을 일으켰다. 그러나 파업은 실패하고 물가는 안정되었다.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현실에 각인된 방식은 일련의 동조이다. 독일기독교민주동맹, 사회경제학에 종사하는 기독교 이론가들, 노조들, 독일사회민주당의 동조가 있었다.

특히 독일사회민주당은 1950년까지도 맑스주의 경향의 사회주의 원칙에 충실하였다. 그러나 1955년 실러의 책을 계기로 1959년 독일사회민주당은 바트고데스베르크 당대회에서 계급투쟁,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등을 명백히 포기하게 되었다.“가능한 한의 경쟁을, 필요한 만큼의 신중한 계획화를”. 독일 경제가 합법적인 국가의 토대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동조하였다.

독일사회민주당이 신자유주의에 동조한 이유는 첫 번째, 정치적 전술이다. 독일의 새로운 정치 게임에 전혀 다른 경제 체제를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 정당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에 동의해야했다. 통치성의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다. 독일사회민주당은 게임에 잘 적응하여 1969년 빌리 브란트 수상 배출.

 

자유주의적 통치원리, 그리고 사회주의적 통치합리성의 부재(142~146쪽)

독일사회민주당이 신자유주의에 동주한 이유 두 번째는 사회주의가 통치이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역사적 합리성, 경제적 합리성, 행정적 합리성을 제기하지만 독자적 통치합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양한 종류의 통치성에 접속된 상태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 사회주의는 여기서는 이런 통치성에, 저기서는 저런 통치성에 접속되어 있기에 여기저기서 다른 결과를 발생시킨다.

사회주의에 필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행동방식과 통치방식을 규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통치성은 사회주의 내부에 있지 않다. 발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사회민주당은 자유주의 통치성과 접속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결론 (147~148쪽)

이상이 독일의 신자유주의가 구체화된 역사적 틀이다. 문제시 되는 것은 자유주의 통치성의 새로운 프로그래밍이다. 국가가 경제에 어떤 자유를 줄 수 있는지를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는 그것이 실제적으로 국가의 적법성을 기초하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어떻게 국가화의 기능과 역할을 갖게 될 수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