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비정상인들] 5강

권순모
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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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인 5주차] 1975년 2월 5일 강의

 

 

식인귀의 나라에서

 

즉 초기 범죄심리학이나 형사정신의학을 지배한 것은 식인과 근친상간의 두 얼굴을 가진 괴물이었다. 범죄적 광인은 괴물, 즉 자연에 반하는 자연물이었다.

동화의 거대한 식인귀는 19세기 말에 이르면 일반적 변태의 장에서 한 극단적인 형태나 과장이 되어 정신의학, 범죄심리, 형사정신의학의 다반사가 되었다. 어째서 이 예외적인 괴물성이 분화된 인물들로 바뀌었는가?

또한 어떠한 과정을 거쳐 범죄정신의학은 식인괴물을 심문하는 형태에서 모든 관습, 변태행위, 장난에 대해 질문하고 분석하며 가늠하는 실행이 되었는가?

 

괴물에서 비정상으로

 

즉 이것은 괴물에서 비정상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다룬다.

정신의학에서 큰문제로부터 작은 문제, 가시적인 것으로부터 비가시적인 것, 중요한 것에서 덜 중요한 것으로 문제제기하는 현상을 필연적 혹은 당연한 경향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또한 그 과정이나 원칙을 정신공학, 정신분석학, 신경병리학과 같은 기술학문의 출현에서 찾아서도 안된다.

그것은 이와 같은 전이가 이와 같은 현상 혹은 기술의 출현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

 

범죄정신의학을 창시한 세 명의 괴물

 

세 괴물은 셀레스타의 아내, 파파부안느, 그리고 앙리에트 코르니에이다.

이들은 식인, 참수, 왕의 시해 문제를 담고 있다. 18세기 말 세 사건은 정신의학적 범주로서가 아니라 사법적 범주로서의 괴물이 나타난 풍경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중 코르니에 사건이 범죄적 괴물성의 문제를 고착시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셀레스타 사건은 기아에 의한 식인행위를 대상으로 한다. 이것은 배고픔이라는 동기가 부각되었으며 광기의 문제는 제기되지 않았다. → 결국 부유하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

파파부안느 사건은 환각 혹은 착오에 의해 일어난 아동살해를 대상으로 한다. 이것은 환각, 환상, 잘못된 신념 즉 광기의 영역으로 재기입되었다. → 이 때 범죄는 광기에 흡수된다.

코르니에 사건은 보다 복잡하다. 이웃 아이를 살해한 이 사건은 광기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임상의학에서 벗어나 정신의학의 심급으로 보내졌다.
→ 우울증 및 다수의 자살시도를 하였던 전력, 아동살해는 ‘이유가 없이’ 저지른 범죄.

 

이해의 부재라는 개념 주변에 형성된 의학권력과 법률권력

 

코르니에 사건은 앞선 두 이야기와는 달리 이해의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범죄정신의학의 문제가 제기된다. 정제하자면 그 자체가 범죄정신의학을 구성하며, 현재의 범죄정신의학이 형성된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추문과 당혹이 전개되었으며, 일련의 조작들이 전개되었다. 여기서 행해지는 여러 조작들은 범죄이유가 없다는 사실은 가리고, 대신에 범죄의 이유를 발견하거나 확인하는 일을 한다.

즉 정신의학의 모든 조작들은 이유, 이해의 부재를 정신의학 개입의 정박지점으로 한다.

비정상, 범죄정신의학, 정신의학 전체, 그리고 인문과학 전체에 있어 중요한 작동 메커니즘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해의 부재를 둘러싼 법률 권력과 의학 권력의 관심을 살펴야 한다.

법률 권력이 이해의 부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새로운 형사 제도에서 범죄를 측정하고 처벌을 조정하는 것은 잠재적 이해가 전제되기 때문이다. 즉 이해가 범죄의 내적 합리성이고 처벌 또한 합리화해주는 것이다. 즉 ① 실제 행위의 합리성을 공적으로, 실증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 때만 처벌이 가능하며 ② 행위에 내재된 이해들은 이해 가능한 역학을 이루어야만 한다. 또한 행위의 주체를 처벌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주체의 이유 또한 필요하다.

즉 범죄를 저지른 주체의 이성이 법의 조건이며, 이성이 결여되었다면 법을 적용할 수 없다. 이것이 64조에 내재된 내용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유없는 행위의 경우 형벌권이 정당화될 수 없다. 이 때에는 정신의학에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공중보건과 특히 사회보호영역의 특별분야로서의 정신의학의 제도화

 

의학권력, 특히 정신의학이 이해의 부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정신의학이 의학 이론 혹은 의학적 앎이 아닌 공중보건의 한 특수 분야로서 기능했기 때문이다. 즉 정신의학은 질병 때문에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에 대한 사회안전의 분야였다.

즉 정신의학은 사회적 예방, 사회체 전체의 보건으로서 존재했다. 이것은 공중보건의 한 분야로, 정신의학이 앎의 제도로 정당화되고 의학적 앎으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코드화가 실현되어야 했다.

 

광기를 사회적 위험으로 코드화하기

 

먼저 광기를 질병으로 코드화해야했다. 이에 따라 광기의 무질서, 오류, 환각은 병리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와 같은 접근 작업 후에야 공중보건상 예방체계가 의학적 앎으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이와 동시에 광기를 위험으로서 코드화하는 것 또한 필요했다. 이를 통해 광기는 수많은 위험과 재난을 근본적으로 품고 있는 현상으로 부각되었다.

광기를 질병화하고, 위험화함에 따라 정신의학은 실질적인 공중보건학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신병의 예방과 치유, 앎을 사회적 예방으로서 지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코드화는 19세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정신의학의 전성기는 두 코드가 효과적으로 맞춰졌을 때, 그리고 동일한 개념체를 가졌을 때이다. 즉 광기를 질병으로 구성하고 위험으로 간주함에 따라 일련의 위험들이 분류되었고, 정신의학은 공중보건에 파견된 의학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신의학이 공중보건, 사회보호영역에서 앎과 힘으로 기능한 순간부터 그것은 모든 광기 안에 자리잡고 있는 핵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그와 동시에 광기와 범죄의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상호 귀속성을 수립해야 했다.

그리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 정신의학은 권위를 가지고 사회에 과학적으로 개입하고 공중보건권력으로서 정당화해야 했다. 따라서 정신의학은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곳에서조차 위험을 감지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줘야 했고, 그것을 감지하는 전제조건은 그것이 의학적 인식이라는 것을 알려야 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범죄와 정신의학이 연결된다.

즉 정신의학이 광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광기에 대한 앎이 지극해졌기 때문에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앎과 권력으로서 구성되기 위해서였다.

 

이유없는 범죄와 정신의학 확립의 신고식

 

이 때문에 이유없는 범죄에 대해 정신의학이 개입하게 된다. 즉 그 이유가 탐지되지 않는 범죄가 발생할 때 정신의학은 이를 예견할 수 있고, 기저의 ‘질병’을 알아낼 수 있다.

정신의학은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해 어떤 표시나 위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데에서 자신의 앎과 힘의 지배권을 입증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정신의학이 이유없는 범죄에 대해 열렬한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정리하면 사법제도의 내부 문제와 요구사항, 그리고 정신의학의 욕망 속에서 이유의 부재에 대한 보완관계가 맺어졌다. 이유없는 범죄는 처벌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법률권력에 당혹감을 부여한다. 정신의학은 여기서 이유를 분석하며 앎과 힘을 정당화할 수 있다. 두 메커니즘이 맞물려 작동하는 과정은 이와 같다.

 

앙리에트 코르니에 사건

 

코르니에 사건은 법률권력과 의학권력의 두 메커니즘이 완전하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해당 사건은 이유와 동기, 이해가 부재하였다. 때문에 해당 사건을 담당한 판사들은 곧바로 정신의학감정서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즉 법률권력의 행사에 있어 정신의학에 대해 요구, 호소, 참조가 수행된 것이다.

(푸코는) 여기서 법률권력 측의 기소장과 정신의학 측의 감정보고서를 살펴본다.

기소장은 코르니에의 행위에 어떠한 이해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재코드화하였다. 또한 행위의 주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비록 그녀의 행위에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행위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또는 그녀의 행위가 막연한 상태로나마 그녀의 모든 존재 안에 이미 들어 있는 것이다. 그녀의 방탕과 그녀의 사생아들, 그리고 그녀 가족의 방기(放棄), 이 모든 것이 이미 그녀가 자기 옆집 아이를 죽인 행위의 유사물이고 또 그 행위의 준비인 것이다.”

이는 즉 행위의 이해 가능성 대신 주체와 이전 행위의 유사성을 들어 주체의 책임을 물었고, 행위의 판단을 통해 주체를 처벌할 권한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기소장에서는 전통적인 질병의 징후가 없음을 부각하였다. 즉 이 사건은 광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면밀한 계획에 의한 것임을 증명하였으며, 이유가 존재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기소장은 이와 같은 이해의 부재를 뒤덮기 위해 행위에 대한 주체의 형사책임을 드러냈다. 기소장에 적힌 ‘맑은 정신’은 정신착란이 아님에도 형사책임 혹은 법적용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감정보고서는 이해관계의 부재를 질병의 표시로서 기능케 하였다. 이를 위해 이유의 부재를 일반적인 징후학 속에 집어넣는 작업을 하였다. 이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① 단순한 병자화 → 코르니에는 점차 명랑한 상태에서 슬픈 상태로 넘어갔다. 이것은 행위와 인물 사이의 유사점을 없애는 것이었다.
② 질병적 분류 → 코르니에는 생리 중이었다. 이는 정신과 신체의 상관관계를 찾아내려는 시도였다. 더불어 병적인 것과 처벌 가능한 것 사이의 애매한 가능성을 제거하고 의학적 자명성을 제시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질병’이 지속되어 기상도 위의 기후처럼 통과하는 모습을 증명해야 했다. 기소장 및 감정보고서에 따르면 모두 코르니에의 도덕적 의식이 온전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시사하는 것은 이해나 이유 없는 행위가 도덕적 의식의 장벽을 뛰어넘음을 의미한다. 즉 이유 없는 행위 전체가 아닌, 일정 수준에서 이유가 없는 행위를 지적하게 된다.

그 원동력은 내재적 역동성이다. 코르니에가 도덕적 의식이 온전한 상태였던 데에서 생각해보면 내재적 역동성을 이성, 즉 이해가 막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기존의 장치가 이해할 수 없었던 역설적인 역동성이었다. 즉 형벌권의 행사를 조직했던 기본적인 원칙들이 이해 없는 행위의 역설적 역동성에 의해 위태로워졌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까지 간주되었던 인간들의 이해들을 뒤흔들어놓았다.

 

본능의 발견

 

이 사건에서 변호사 푸르니에의 변론과 정신의학자 마르크의 정신감정서는 막연하나 새로운 종류의 개념을 냈다.

‘억제할 수 없는 감정, 욕망’, ‘근원을 책임질 수 없는 잔혹한 성향’, ‘유혈적 행동’이 지시하는 것은 곧 ‘야만적인 본능’ 및 ‘본능적 행위’였다.

그러나 아직 개념이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시 정신의학적 담론에서는 이와 같은 대상을 명명할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변호사와 의사는 여기에 대해 정신착란 비슷한 어떤 추정을 하며 사건을 해체, 회수, 재투입하려 했다. 그것은 정신착란이 광기를 구성하는 주요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르니에는 어떠한 환각 행위에 의해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큰 의미를 가져오지 못하였다.

변호사는 ‘꿈 속 같은 상태’, 의사는 ‘환각 행동’이라 지칭했던 해당 개념은 새로운 대상에 대한 출현이었다. 이것은 19세기 정신의학 담론에서 명명되고 묘사되며, 분석되거나 혹은 조금씩 통합되고 발전된 모든 일련의 요소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일시적인 감정, 충동, 경향, 성향, 자율 운동 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차적인 정념적 표상이 아닌, 특이한 역동성 내에 있었다. 즉 코르니에 사건은 본능의 역동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는 곧 이유없는 행위가 본능적 행위로 전환되었음을 뜻한다.

코르니에 사건은 본능의 개념이 나타나고 형성되는 그 출발지점에 있다. 본능은 틀림없이 변태라는 문제의 커다란 매개물이고, 그것에 의해 범죄적 괴물성 혹은 단순한 병리학적 광기가 조정원칙을 발견하는 조작자이다.

본능은 19세기 정신의학이 광기에 속하지 않는 모든 혼란, 변칙, 행동을 질병과 정신병의 영역으로 끌고 갈 수 있게 하였다. 즉 모든 비정상의 문제가 과거 광기의 문제와 비슷한 영역에서 재편될 수 있던 것은 바로 이 본능 개념에서부터였다.

이것이 19세기 초 식인 괴물이 19세기 말의 작은 변태적 괴물로 바뀌는 전이과정이다. 이 전이는 본능의 개념에 의해서, 그리고 앎 속에서, 특히 정신의학적 권력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것은 본능 개념의 두 번째 이점이고 그 주요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본능의 개념이 나옴에 따라 이전의 인식에서 납득할 수 없던 문제들이 다수 등장하였다. 또한 ‘본능을 가진 것은 병리적인가?’ ‘본능을 작동시키거나 그 매커니즘을 발전시키는 것은 병인가?’ ‘본능은 교정 가능한가?’ ‘본능은 통제 가능한가?’ 등의 문제가 정신의학의 커다란 주제로 자리잡았다.

이와 같은 주제는 기존의 정신착란과 환각의 영역을 뒤덮으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본능의 문제는 모든 영역과 연결되었고, 이것은 정신의학을 의학적 모델 안에, 그리고 생물학적 문제틀 안에 재기입할 수 있게 하였다.

정신의학은 19세기 말엽 우생학과 정신분석학이라는 두 개의 커다란 기술에 의해 떠받쳐진다. 우생학은 유전과 인종 정화에 의해 인간 본능의 체계 교정 문제를 담고 있었다. 한편으로 정신분석학은 공시성 속에서 본능을 규격화하고 교정하는 대대적인 기술로 자리잡았다.

두 기술은 본능의 세계에 대한 장악력을 정신의학에 부여하기 위해 19세기 말에 수립된 양대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정상적 행위에 대해 일반적 재판권을 가지게 된 것이 이와 같은 과정에 기인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발견은 정신의학적 앎의 내부적 발견도 아니며, 이데올로기적 결과도 아니다.

그것은 권력 장치 내의 어떤 장치 혹은 그것들의 배분, 맞물림에서부터였다. 권력 장치는 한편으로는 사법제도와 사법권력의 성격을 지니면서도, 한편으로는 의학적 앎과 의학권력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변화의 원칙은 사법권력과 의학권력 사이의 작용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환각의 정신의학이 본능의 정신의학으로 넘어간 것은 바로 이 권력의 연동장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