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비정상인들] 11강

권순모
202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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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인들 1975년 3월 19일 강의

 

 

올해 강의 주제는 비정상적 인물의 출현과 정신의학의 특권적 대상으로서의 이상영역의 출현 문제였다. 거대한 괴물, 어린 자위행위자, 다루기 어려운 아이로부터 비정상의 계보를 그리고자 했으나 세 번째 문제는 누락되었다. 오늘 강의에서는 그것의 측면이나마 대략 그려보고자 한다.

 

샤를 주이 사건을 통해서 본 새로운 정신의학의 등장

괴물, 어린 자위 행위자, 고분고분하지 않은 아이, 규범적 교육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등이 혼합된 인물 사례를 살펴보자. 1867년 가을 낭시에서 일어난 품삯 농사꾼인 샤를 주이 사건을 통해 비정상적 인물이 정신의학의 대상이 되는 방식과 시기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정신감정보고서에 따르면 사건 당시 40세이던 주이는 농사일을 거들며 품삯을 받아 살던 마을 바보였다. 어느날 주이는 들판에서 소피 아당을 시켜 자위행위를 했다. 소피 아당은 한 농부에게 ‘엉긴 우유 놀이’를 자랑했다. 며칠 후 마을 축제 날 주이는 소피 아당을 숲속에서 강간하고 돈을 주었는데 부모에게 들켜 고발당했다. 그는 기소되어 지방 의사에서 1차 정신감정을 받고 다시 낭시에 있는 정신병원인 마레빌로 이송되어 두 의사에게 2차 정신감정을 받았다. 이후 예심판사로부터 면소판결을 받아 종신 수감이 결정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정신의학의 대상 영역의 등급과 기능의 양식이 완전히 변했음을 알 수 있다. 길가나 숲속 큰 나무 밑에서 벌어지던 시골 마을의 야외 섹슈얼리티를 법의학이 정신의학화했다. 이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시골 마을 풍경에 정착되어 있던 인물과 관행을 정신의학화했다는 사실이다. 주이는 마을에서 낯선 사람이 아니었고 경제적 기능을 갖고 마을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주이의 정신의학화는 외부적 상위 코드로부터 온 정신의학화가 아니었다. 이 사건을 발견하고 군수에게 알려 적절한 조치를 요구한 것은 속옷 검사를 한 소녀의 가정이었다. 이로 인해 소녀가 따귀를 맞고 끝날 수준의 사건이 전혀 다른 수준의 등급에 올려졌다. 가족, 마을, 군수, 첫 번째 의사까지 소녀에게는 소년원, 어른에게는 재판소 혹은 정신병원을 요구했다. 몇 년 전까지도 일상적이었을 사건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소송 메커니즘, 즉 기술적‧의학적‧사법적 심급에 호소해 해결하고자 했다.

이 법적 절차에 정신의학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앞서 살펴본 앙리에트 코르니에 사건에서는 광기를 정신의학화하고 범죄에 최소한 원인을 제공한 육체적 요인으로서 여성의 생리를 발견했다. 기질이 변한다고 판단되는 지점에는 살육의 충동을 배치하고 그것을 괴물적이고 병리학적인 질환이라고 주장했다. 인격 전체와 행위 사이의 비유사성과 이질성‧단속성‧부분성, 그리고 생급스러움이 앙리에트 코르니에의 행위를 정신의학화하도록 허용해 주었다. 반면 주이에 대한 보네와 뵐라르의 정신의학감정 보고서에 따르면 주이의 행동과 행위에 대한 정신의학화는 코르니에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정신의학자들은 주이의 행동에서 개인을 구조적으로 특화시키는 항구적 낙인을 찾았다. 그들은 주이의 머리 부분의 치수를 잰 후 입은 너무 크고 입천장은 백치의 특징인 아치의 곡선을 이루고 있다고 확인했다. 정신의학자들은 이러한 신체의 기형은 선천적인 상태의 구조적‧물리적 결과이며 주이의 일탈적 행동은 선천적인 상태의 충동적‧역동적 결과라고 보았다.

결론적으로 편집증을 강조하던 정신의학 시대에 사람들은 앙리에트 코르니에 사건을 계기로 범죄의 징후를 단초로 하는 병리학적 절차를 수립했다. 샤를 주이 사건에서는 반대로 항구적인 부동의 낙인을 범죄 행위에 결합시켰다. 이로써 불연속의 원동력인 병리학적 정신의학 대신 결정적인 일탈을 보장하는 항구적 상태의 정신의학이 성립되었다.

앙리에트 코르니에 사건에서 발견된 충동적 광기에서 나타나는 병리적 과정은 [1] 충동의 솟아남, 부풀어오름, 팽만 상태 [2] 역동성의 증식=과도함이다. 병리학적인 핵심은 충동의 힘이 불가항력적인 것에 있다. 그로 인해 맹목성을 띠게 되어 이해도 계산도 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충동적 환각’이라 부르는 것이다. 반면 샤를 주이의 경우 행위의 정신의학화를 허용하는 상태의 핵심에는 불충분‧부족‧발달 정지 등이 있다. 그에게는 기능적 불균형이 나타나는데 억제‧통제는 물론 하위심급의 예속‧지배‧정비를 보장하는 상위 심급조차 부재한 가운데 하위 심급이 기능장애를 일으킨다. 충동은 기능이 균형적으로 작동하고 구조가 제대로 배치되면 적절한 규칙에 따라 ‘정상적으로’ 기능하지만, 충동적 활동을 재배치하거나 제한하는 역할을 맡은 심급들이 그것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하면 ‘비정상적으로’ 기능하게 된다.

 

정신의학 권력과 그 지식을 널리 보급시키는 역사적 조건으로서의 어린이

이처럼 주이에 대한 정신의학감정서에는 새로운 유형의 분석 사례가 등장한다. 두 정신의학자는 주이의 육체를 조사하고, 생식기관을 검사하면서 그가 갖고 있는 결함을 행동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즉 주이의 정신의학화를 부른 것은 양적인 과도함이나 욕구 충족의 비상식성이 아니라 억제의 결함이고, 발달 부진이었다. 그는 소아증 환자였다. 도덕심도 어린아이의 상태와 같고 섹슈얼리티 역시 소아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에 등장한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본 어린아이의 새로운 위치다. 어린이 주변에 삶과 행동 및 능력의 부동성을 배치하는 것은 곧 정신의학화를 의미했다.

광증치료사(에스키롤학파, 특히 앙리에트 코르니에를 담당했던 사람들)의 분석에서 코르니에는 어른이 된 다음에 과거의 아이적 모습과 닮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병에 걸린 것으로 간주되었다. 병리학적 과정이 효과적으로 기능하고, 주체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이 병리학적 과정에서 분리되어야만 했다. 1820년대와 1860년대의 법정신의학에서는 어린이의 사악함에 대한 사법적-정신의학적 전투를 발견할 수 있다. 광증치료사들은 앙리에트 코르니에에게 “너의 어린 시절은 그후의 너의 모습과 같지 않다. 그러니까 너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반면 정신의학자들은 주이에게 “지금 너에게 죄를 물을 수 없는 것은 네가 어릴 때부터 이미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코르니에와 주이의 전기傳記가 전혀 다른 무죄의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주이의 정신감정서를 통해 정신의학의 새로운 기능 안에서 유년이 접합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앙리에트 코르니에는 여자 아기를 죽였다. 사람들은 [1] 그녀가 죽인 아이와 그녀와의 분리, [2] 그녀 자신의 유년과 분리를 통해 그녀를 정신병자로 만들었다. 그것은 광기와 유년 사이의 철저한 단절을 의미한다. 샤를 주이는 [1] 자신의 어린 시절, [2] 자신과 관계가 있는 어린아이(소피 아당)와의 근접성에 의해 정신의학화되었다. 즉 어린아이‧유년‧소아증이 범죄자와 희생자 사이의 공통의 특징이었기에 정신의학화된 것이었다. 이제 발달의 역사적 단계로서의 유년, 행동의 일반적 형태로서의 유년이 정신의학화의 주요 도구가 되었다. 정신의학이 성인, 혹은 성인 전체를 붙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유년에 의해서이다. 유년은 정신의학을 일반화시키는 원칙이며, 동시에 정신의학에서 성인을 사로잡는 함정이었다.

 

어린이‧어린 시절의 도입에 따른 정신의학의 일반화

[1] 어린이와 어린 시절의 초점화 : 정신의학은 1860년대 이전부터 어린이를 발견했다. 정신의학은 유년을 자신의 앎과 권력의 조준으로 삼으면서 널리 대중화되었다. 유년은 정신의학적 앎과 권력의 일반화를 위한 역사적 조건이었다. 유년 혹은 소아증이 행동 분석의 여과 장치가 된 순간부터 하나의 행동을 정신의학화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질병의 한가운데에 집어넣어 공인되고 일관성을 가진 징후학 속에 재배치할 필요가 없어졌다. 하나의 행동이 정신의학화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이 소아증의 흔적을 갖고 있으면 되었다. 어린이의 행동이 성인의 행동을 고정시키고 봉쇄하고 저지할 수 있으며, 또 그 안에서 재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린이의 모든 행동은 정신의학적 조사 대상이 되었다. 반대로 어른의 행동이 인과 관계, 혹은 유사 관계 속에서 어린이의 행동과 겹쳐지고 연관지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성인의 모든 행동도 정신의학화될 수 있었다. 결국 어린이의 모든 행동은 그것이 어른을 결정하므로 남김없이 훑어보아야 하는 것이 되었다. 한편 소아증의 흔적을 살펴보기 위해 어른의 행동 역시 전면적으로 훑어보아야 했다.

[2] 쾌락과 그 체계, 충동과 그 기제, 타성과 결함을 가진 백치 혹은 지진遲進의 통합 : 에스키롤 시대(19세기 초부터 1840년까지)의 정신의학은 쾌락과 충동 사이에 접합점을 찾지 못했다. 충동이 병리학적 기제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쾌락에서부터 벗어나야 했다. 쾌락을 수반한 충동은 쾌락을 촉발하는 것으로 주체에 의해 인식되고 기억되므로 병리학이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충동의 병리학화는 쾌락을 배제한 반면 백치는 병리학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샤를 주이에게는 어린 자위 행위자, 커다란 괴물, 그리고 모든 규율에 저항하는 사람이 한데 합쳐져 있다. 이제부터 충동은 쾌락을 간직하면서도 완벽하게 병리학적인 요인이 될 수 있었다. 충동의 기제와 과정, 그리고 충동이 주는 쾌락들이 소아증의 수준이고, 소아증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쾌락-충동-지진, 그리고 쾌락-충동-정신박약, 이제부터 이 모든 것이 단일한 외형 속에서 구성된다.

[3] 정신의학의 신경학, 일반생물학과의 관계 형성 : 에스키롤적 정신의학은 모방 의학이다. 체질의학처럼 징후의 목록을 작성해야 하고, 여러 가지 질병을 상호 관련 속에서 명명하고 분류하고 조직해야 했으며, 질병의 형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요소를 체질, 혹은 몸에서 찾음으로써 체질의학과 비슷한 유형의 병인론을 세워야만 했다. 반면 개인과 행동의 정신의학이 유년에 초점을 맞추면서부터 발달신경학 혹은 발달의 중단으로서의 신경학, 그리고 일반생물학은 정신의학이 과학적 앎 혹은 의학적 앎으로 기능하는 데 보증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4] 병리적이지 않는 비정상적인 충동의 출현 : 유년 혹은 행동의 소아증이 병이 아니라 불균형 상태, 정상적으로 기능하지도 않는 상태로 제시된다. 예고 없이 나타나 구조 전체를 뒤흔들며 정상적 발달과 불균형을 이루는 충동이 바로 정신의학의 일반적 대상이 되었다.

 

어린이의 정신의학화와 정상적 비정상적 행동과학의 구성

행동과 구조의 소아증을 연구하는 학문이 된 정신의학은 정상‧비정상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 되었다. 1860년대 전후에 시작된 새로운 정신의학은 [1] 유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인간의 행동 일반을 분석하는 일반적 심급이 되었다. 정신의학은 개인의 삶 전체가 아니라 유년을 깊이 파고 들어감으로써 일반적 행동의 통제 심급이며 권위 있는 재판관이 될 수 있었다. [2] 병을 치료하는 기술이나 병에 대한 앎이기를 그쳤다. 이때부터 정신의학은 정신착란‧실성, 진실에 대한 참조, 질병을 제껴두고 인간의 행동, 행동의 일탈과 이상에 새롭게 관심을 두었다. 이로 인해 19세기 초부터 광기를 병리화해 그것을 다루는 의학으로 자리잡기 위해 노력했던 정신의학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역설적인 상황에 놓였다. 이제부터는 의학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정신의학에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 정신의학의 권력 효과는 의학의 지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정신의학은 권력 효과와 권력 효과의 대전제인 의학적 지위를 질병이 아니라 이상에 적용했다. 19세기 중반부터 정신의학은 병리학적 과정이 아닌 대상 영역을 자기 통제하에 두기 위해, 오로지 의학적으로 자격이 부여된 권한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대상의 비병리학화, 이것이야말로 정신의학이 자신의 의학적 권력을 일반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었다. 이러한 정신의학 권력은 유년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고 이로부터 정신의학의 일반화가 이루어졌다.

 

19세기말 새로운 질병학의 구성

19세기 말 정신의학적 앎의 효과와 정신의학적 권력의 효과를 유지했던 정신의학의 담론과 구조를 분석하기 위해 새로운 질병학의 구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모든 일탈적‧비정상적 행위를 병의 증상으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이상 징후로서 묘사하고 조직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상식적 행동은 자율적이고, 식별 가능한, 특별한 징후로 고착화되었다. 정신의학은 비정상적인 징후를 보이는 사람, 이상으로 고착된 엉뚱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광장공포증, 밀실공포증, 방화벽, 도벽, 성기노출증, 성도착자, 피학성 변태성욕자, 그리고 1865-1870년대부터 모든 이름 없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역사. 모든 이상 징후의 역사가 정신의학의 장 안에 솟아오르고, 20세기 말까지 한 시대를 가득 메웠다. 이 모든 것은 병의 증세가 아니라 징후였다.

[2] 착란의 회귀, 착란의 재평가 : 정신의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정신병의 핵이었던 착란의 덮개를 비정상에 다시 씌웠다. 착란은 정확히 의학적 대상이었으므로 비정상적 행동에서 그 흔적을 발견하면, 바로 그것을 질병으로 전환시켰다. 이렇게 비정상의 정신의학화는 착란의 분석을 쾌락과 충동의 분석에 맞추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피해망상‧소유망상‧색정광의 유해한 발작 등과 같은 착란의 분류화가 이루어졌다.

[3] ‘상태’라는 이상한 개념의 출현 : 1860-70년경에 도입된 정신의학적 대상으로서의 ‘상태’는 고유의 유발‧원인‧과정 등이 있지만 질병이 아니다. 상태는 비정상의 토대이다. 하나의 상태를 가졌거나, 그 가능성을 가진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비정상적 개인을 특징짓는 상태는 병인이 풍부하고 절대적이다. 한 사람의 행동이나 신체에서 병리적이거나 탈선적인 것은 모두 상태에서 생겨난다. 상태는 근본적으로 개인의 조정 능력의 결함이다. 상태는 흥분과 억제 작용의 교란, 금지되고 통합되고 억제되어야만 하는 것이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풀림, 역동적 단일성의 부재라는 특징을 갖는다. [1] 상태 개념은 표면적으로 전혀 같은 점이 없다 해도 배경이 단일하기만 하면, 모든 신체적 요소나 일탈적인 행동들을 한데 묶어 연관 관계를 형성한다. 상태 개념에는 굉장한 통합 능력이 있다. 비정상의 의학화와 병리학화 안에서 상태 개념이 지닌 통합 능력은 크다. [2] 상태 개념에서 생리학적 모델을 발견할 수 있다. 상태는 발달이 중단되었거나 전진적 발달에서부터 후진적 발달로 퇴보한 개인의 구조 또는 전체 구조이다.

징후의 질병학과 망상의 질병학, 상태의 질병학, 이 세 가지는 19세기 말 의학권력화하고자 하는 정신의학의 과업과 일치한다.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정신의학은 질병의 장을 벗어나게 되었다. 이것은 자신의 기능을 위해 거대 이론과 거대 구조화를 이루었던 비정상 병리학의 역설이었다. 상태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상인 일종의 인과적 배경인데, 그렇다면 개인의 몸을 결정적으로 특징짓는 상태는 어떤 신체가 만들어 내는가? 19세기 말 정신의학은 자기 고유의 원인성에 의해 이 기능장애 상태의 주체이며 희생자인 개인의 나타남을 설명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몸의 뒷부분을 발견한다. 비정상적 몸의 뒤에 있는 뒷-몸은 부모의 몸과 조상의 몸, 가족의 몸, 유전의 몸이다.

 

유전 분석과 퇴화 이론

유전 연구 혹은 비정상 상태의 근원을 유전에 두는 일은 정신적 요인의 신체적 전환을 초월하는 이론이 된다. 메타 심인 이론과 유전 연구는 정신의학의 기술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 [1] 무한정한 원인의 관용주의가 생겨난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관용론이다. 질병은 후손에게 같은 유형의 질병만이 아니라 다른 유형의 질병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질병만이 아니라 악덕이나 결점 같은 것들도 질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2] 유전에 주어진 원인의 관용성은 허구적이고 탄력적인 유전의 망을 형성한다. 유전망의 한 지점에서 일탈 요소를 찾으면 바로 후손에게 나타나는 상태를 설명할 수 있었다. 유전적 인과성은 또한 후손의 일탈의 책임을 조상의 생식 메커니즘에 돌릴 수 있게 해준다. 이와 같은 유전이론은 비정상의 정신분석이 단순히 쾌락을 다루는 기술이나 성충동을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건전하거나 불건전한 결혼, 유용하거나 위험한 결혼, 유익하거나 해로운 결혼 등을 다루는 기술이 되는 길을 열어 주었다. 결국 정신의학은 성적 충동의 비생식적 기능에서부터 오는 모 든 일탈을 자신의 영역에 통합시키는 동시에 생식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다. 허구적 병인론의 차원에서 재도덕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비정상적 상태의 질병학은 퇴화 이론으로 수렴되었다. ‘퇴화’ 이론은 1857년 모렐에 의해 수립되었다. 퇴화는 비정상의 의학화를 위한 주요한 개념이다. 퇴화한 사람은 신화적으로, 과학적으로 의학화된 비정상인이다. 유전의 계통수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질병이 아니라 비정상의 상태를 간직하고 있는 퇴화된 인물은 정신의학권력을 한없이 고양시켰다. 정신의학은 모든 일탈‧지진‧탈선을 퇴화 상태에 돌리면서 인간 행동에 끊임없이 간섭했다. 정신의학은 탈질병화의 권한, 탈병리화의 권한, 일탈행동을 유전과 결정적인 ‘상태’와 연결시키는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면서 병을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는 권한을 지니게 되었다. 정신의학이 비정상을 다스리는 기술로서 개인의 가계에 의해 유전적으로 고정된 비정상 상태를 제시하면서부터 치료 기획은 의미가 없게 되었다. 정신의학이 관장하는 영역에서 병리학적 내용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치료적 기능도 사라졌다. 정신의학은 비정상적 사람들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사회를 결정적 위험에서 보호하는 기능을 제안하고 실제로 떠맡았다. 사회 전체를 수호하라는 역할과 동시에, 유전 개념에 의해 가정의 섹슈얼리티에 간섭할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정신의학은 사회를 과학적으로 보호하는 학문이 되었고, 인류를 생물학적으로 보호하는 학문이 되었다. 개인의 이상을 관리하는 학문이 되면서 정신의학은 그 시대에 최고 권력이 될 수 있었다. 19세기 말 정신의학은 자신들이 사법에 대체될 만하다고 주장했다. 정신의학은 사법, 보건, 사회 조작과 통제를 대신해 사회의 밑바닥을 갉아먹는 위험에서 사회를 지키는 총체적인 심급이 되었다.

 

정신의학과 인종주의 : 정신의학과 사회 보호

정신의학은 퇴화 개념과 유전 분석에 주목하면서부터 인종주의와 결합되거나, 나아가 인종주의를 야기했다. 당시의 정신의학에서 발생한 인종주의는 비정상에 대적하는 인종주의이고, 상태나 증세, 혹은 결점을 보유한 개인을 퇴치하기 위한 인종주의였다. 그들은 자신의 질병, 혹은 비정상의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인종주의는 사회 내부에서 모든 개인을 체크할 수 있는 내적 인종주의였다.

서구에서는 반유대주의인 전통적 인종주의와 새로운 인종주의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 그러나 나치즘의 대두 전까지 두 인종주의가 가시적으로 조직된 적은 없었다. 독일의 정신의학은 나치즘의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기능했다. 비정상인에 대해 사회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인종주의, 이 20세기 고유의 네오인종주의는 정신의학에서 생겨났다. 나치즘은 이 새로운 인종주의를 19세기의 풍토병인 민족적 인종주의와 결합시켰다. 그러므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유럽을 휩쓴 새로운 형태의 인종주의는, 역사적으로 정신의학에서 그 근원을 찾아야 한다.

정신의학은 19세기 말부터 사회 보호의 메커니즘과 심급으로서 기능해 왔다. 법원에 나와 증언하는 정신의학자들이 던지는 상투적인 세 질문, 즉 “위험한 사람인가? 용의자는 형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용의자는 치유가 가능한가?” , 즉 의학적으로, 병리학적으로, 사법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이 세 질문이 질병이나 병리학의 의학이 아닌 비정상의 의학, 즉 퇴화자의 정신의학에서는 아주 명확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사법 기구가 정신의학에 제기하는 문제들 역시 19세기말의 퇴화를 다루는 문제의 재활성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유전‧조상‧유년, 개인적 행동에 대한 믿기 어려운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법의학감정서에서 아직도 발견되는 위부Ubu적인 묘사 역시 분명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들은 법원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불려 나온 퇴화 이론의 유동적 덩어리이며 찌꺼기이고, 퇴화 이론에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 그것은 19세기 중반기 정신의학의 기술 및 기능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 개념과 과정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후 작업

무정부주의와 사회적 무질서, 무정부주의의 정신의학화 등을 출발점으로 삼아 19세기 말의 정신의학이 사회 수호 권력으로서 기능했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그것은 정치적 범죄, 사회 수호, 질서의 정신의학에 대한 작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