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비정상인들] 8강

권순모
202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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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 2.26 강의

 

-- 16세기 초부터........정신지도에는........ 담론 영역, 간섭의 장,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육체적 혼란이 ......대응하고 있다.  중세의 고행적 수행과 신학에 의해 그저 단순히 죄악의 근원으로 여겨졌던 몸, 그 육체적 물질성에서부터 권력행사의 영역이며, 동시에 객관화의 영역인 살[肉]이라는 복합적이고도 유동적인 영역이 분리되었다.........그러한 육체, 한 마디로 감각적이고 복합적인 淫慾의 육체이다.............내가 여러분들에게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처럼 육체를 살[肉]로 정의하기, 육체를 살로 폄하하기, 살에 의해 육체를 죄악시하기였다.  이것은 동시에 육체 분석의 조사와 담론의 가능성이다.  인간의 과오를 육체 속에 배치하고, 육체를 살로서 객관화하는 능력 등...

 

-- 고백 신부 또는 양심 지도 신부가 행하는 .....이 정신 지도의 새 기술을 특징짓는 것은 철저성과 독점성의 규칙을 따른다는 점이다..........무한한 분석적 담론과 끊임없는 감시의 대상으로서 모습을 드러낸 이래, 살은 완벽한 시험의 과정과 상관적 침묵의 규칙을 동시에 발전시켰다.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오로지 여기에서, 그에게만 이야기해야 한다.

 

-- 17세기에(18세기나 19세기도 그럴테지만) 성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들이 고백하는 것이었다.

 

-- 내가.............복원하고자 했던 그 고백-침묵의 장치.......살을 대상으로, 그것도 철저한 담론의 대상으로 나타나게 만드는 이 장치, 이 양심 지도의 테크닉의 영향을 받는 계층은 신학교나 수도원 같은 상층에 위치한 사람들이었다......그러나 나는 그것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살의 주제가 큰 중요성을 지니는 카톨릭 신비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16세기 후반부터, 특히 프랑스에서는 17세기부터) 아마도 바로 이 테크닉에서부터일 것이다........그러니까 양심 지도 장치는 제일 상층부에서 ...신비주의의 형태를 생겨나게 했다.

  그리고 그 하층부에서는.....다른 현상을 생겨나게 했다.  이 현상이 바로 신들리기이다........................15세기에서 17세기초까지 극성을 부렸던 대대적인 마술의 열풍과 16세기 말에서 18세기 초까지 전개되었던 신들리기의 거대한 물결은 ......그리스도교 중흥 운동의 일반적 효과 안에서 상호 교체될 수 있는 것이지만, 서로 다른 계열의 결과들이고 판이한 메커니점 안에 놓여 있는 것이다.

 

-- 마술..........샤면적 제의 형태가 이어져 내려오는 곳에서 15~16세기의 그리스도교는 갑자기 장애물을 만나 이 장애물을 포위하고, 이 장애물에 顯鉉현현 또는 저항의 이미지를 동시에 부여하려고 했다.  이제부터 종교 재판이라는 메커니즘에 의해 코드화되고 다시 취급되고, 판단되고 억압되며, 화형에 처해지게 되는 것은 ....이 마술이었다.  마술은......도시적이라기보다는 좀더 농촌적인 주변적 현상이다.

 

-- 신들리기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그것은 외부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내부적이었다......몸에 대한 세부적이고 종교적인 포위이며, ...철저한 담론과 독점적 권위라는 이중의 메커니즘에 의한 포위였다.

 

-- 마녀는 마을의 끄트머리, 또는 숲의 경계선에서 사는 여자이다.  마녀는 나쁜 그리스도교인이다.  반면에 신들린 여자(16, 17세기, 그리고 18세기초의)는 .......전혀 외부의 누구에 의해서도 고발되는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은 자백하는 여자, 그것도 스스로 고백하는 여자이다.....도시여자이다.  한술 더 떠서 보통 여자가 아니라 수녀이다.  게다가 보조 수녀가 아니라 원장 수녀 혹은 상급 수녀이다.

 

-- 마술은 그리스도교의 외부적 경계선에서 나타났다.  신들리기는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권력과 통제의 메커니즘을 뿌리박으려 하는 곳, 개인들의 몸 안에 담론적 의무를 뿌리박으려 하는 바로 그 내부의 요람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신들리기가 나타난 것은, 그리스도교가 개별적이고 의무적인 담론과 통제의 메커니즘을 기능케하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신들리기 현상에서 중심 인물은 고백 신부·지도 신부·안내 신부이다.........그러니까 신들리기 장면과 그 메커니즘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사제의 권한(양심 지도의 권한, 담론적 강제와 권위의 권한)을 가진 성스러운 사람이었다.  마술은 악마와 마녀라는 이중의 형식인데 반해, 신들리기는 삼각형의 관계, ....즉 악마가 있고....신들린 수녀가 있으며.....그 둘 사이에 고백 신부 혹은 양심 지도 신부가 있다.

 

-- 마술에 끌려 들어간 마녀의 의지는 사법적 형태의 의지였다.  마녀는 제안된 교환에 응했을 뿐이다.  "그대가 내게 쾌락과 힘을 제공하면, 나는 그대에게 내 몸과 영혼을 주겠다"라는 것이다.  마녀는 교환에 동의하고, 계약에 서명하였다.  결국 그녀는 법률적 주체이다.  그녀가 처벌받는 것은 바로 이 자격으로서이다.  그런데 신들리기에서는 의지가 모든 애매모호한 욕망으로 가득 차있다.

 

-- 두 종류의 동의와 두 종류의 몸이 있다................................

  마녀의 몸은 그녀를 악마적 힘에 참여하게 해주고, 따라서 그녀를 추적하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도록 해주는 어떤 위엄의 혜택을 받으며, 또 한편으로는 어떤 표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 표징은 악마와도 연결되지만 동시에 악마를 쫓는 판사나 사제와도 연결되는 표적이다.  마녀는 자신의 위엄에 의해 고양되는 순간에조차 이 표징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악령에 사로잡힌 여자[신들린 여자]의 몸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위엄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고, 그 자체가 연극의 장소이다.  여러 가지 서로 다른 힘들과 그 힘들의 대결이 표출되는 것은 바로 이 몸 안에서이다.....................................

성채로서의 몸, 전투로서의 몸, 악마와 그에 저항하는 신들린 자의 싸움, 신들린 자의 몸 안에서 저항하는 힘과 동의하고 배반하는 힘 사이의 싸움이다.  악마와 구마신부·양심 지도 신부 사이의 싸움이다.  그리고 신들린 여자는 어느 때는 그들을 돕고 또 어느 때는 그들을 배반한다.  왜냐하면 어느 때는 쾌락을 위해 악마의 편에 서고, 또 어느 때는 자신의 저항을 통해 구마 신부나 양심 지도 신부 편에 서기 때문이다.

 

--신들리기의 표시나 낙인은 마녀의 몸에 있는 것 같은 반점이 아니다.  그것은 전혀 다른 것으로 나중에 서구 의학사와 종교사에서 아주 중요하게 될 요소인 경련, 바로 그것이다.....................경련은 종교와 신비주의 쪽만이 아니라 의학과 정신의학 쪽에까지도 실을 늘여 놓은 개념의 거미줄이다.  그후 2백 년간 경련은 의학과 가톨릭 사이의 중요한 논쟁의 내기가 되었다.

 

-- 경련을 일으키는 살은 자기 성찰의 법에 관통되는 육체이고, 철저한 고백의 의무에 복종하는 육체이며, 자기 성찰에 반대하여 머리칼을 곤두세우는 육체, 그리고 철저한 고백의 의무에 반대하여 머리칼을 곤두세우는 육체이다.......경련을 일으키는 살은 16세기의 새로운 그리스도교 중흥운동 물결이 구성한 육체적 포위 메커니즘의 최종적인 결과이며, 동시에 방향 전환의 지점이기도 하다.  경련의 살은 이 그리스도교 중흥 운동에 대한 개인의 육체적 차원에서의 저항인 셈이다.

 

-- 마술이 그리스도교 팽창의 물결, 그리고 종교 재판이라는 도구에 대한 저항의 중심이고 방향 전환의 지점이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 신들리기는 참회실·양심 지도 등의 또 다른 그리스도교 중흥 운동 기술의 결과이며 전환 지점이었다고 말이다.  마술과 종교재판이 연결되듯이 신들리기와 참회실이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 신들리기는 언제나 몸의 정치적 역사의 한 부분이었다.

 

-- 경련의 함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육신을 관리하는 것, 나는 그것이야말로 17세기 이래 몸과 살, 또는 성에 대한 교회의 대논쟁과 문제 제기의 요체였다고 생각한다.................................살을 지도해야 하지만 몸이 신들림이라는 저항의 현상으로 대들지 않게 해야 한다.

 

-- 1725년에 로마 공의회가 고백 신부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충고가 [보여주는게 있다.]

  고백의 구조 내에 두 개의 규칙이 적용하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두 단계로 분석해 보겠다.  하나는 철저하고 배타적인 담론의 단계이고, 또 하나는 억제된 진술이라는 새로운 규칙의 단계이다.  모든 것을 말해야 하지만 그것을 가능한 한 적게 말해야 한다........그래서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알퐁스 드 리구리는 근·현대의 고백 형태를 특징짓게 될 일련의 규칙들을 만들어 냈다.

 

-- 사물을 명명하지 않은 채 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련의 樣式과 修辭의 도입이다.  성은 부끄러운 것이라는 코드가 고백의 수행 속에 도입된 것은 그렇게 해서였다.  17세기 한중간에 나온, 내가 방금 인용했던 탕뷔리니의 텍스트에는 아직 그 흔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것이 교회가 경련에 대처하기 위해 사용한 첫번째 조치이다.  그것은 양심지도와 고백의 양식상의 변조이다.

  교회에 의해 채택된 두번째 방법, 두번째 절차는 더 이상 내적 조절이 아니라 외부로의 이동이다.  다시 말하면 경련을 일으키는 사람을 아예 추방하는 것이다..............교회는 경련이 양심 지도의 모든 메커니즘을 함정 속에 끌어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경련을 제거하고 박탈하려 했다.  경련, 다시 말해서 신들림의 절정을 더 이상 고백이나 양심 지도가 아닌 전혀 새로운 담론 속에,.....다른 통제 메커니즘 속에 기입해 넣어야만 했다.  의학으로의 대대적인 권력 이양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때였다.......................신들림이 양심 지도에 대항하여 제기한 문제·질문·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는 교회 권력 자체가 의학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물론 망설이고 수줍어하는 모순적 호소였다.

 

-- 18세기부터 경련 또는 경련과 관련된 모든 현상들이 의학의 아주 중요하고도 풍요로운 영역으로 자리잡는 것을 볼 수 있다.  신경의 병과 흥분·초조·우울 등이 그것이다.  목회신학이 살로 규정한 것이 18세기에는 의학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의학이 성에 대한, 성을 근원으로 하고, 성을 토대로 하는 질병의 영역을 발견한 것은 자궁이나 체액에 대한 그리스 혹은 중세의 전통의학을 확대하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교회 권력에 의해 조직되고 분리된 이 살의 영역을 계승하면서였다.  의학이 성의 과학을 자임하고, 성을 위생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은 교회 자체의 요구에 의해 이 의학을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계승했기 때문이다..................................................

  음욕은 죄짓는 영혼이 살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데 18세기 이후 신경 조직이 바로 이 살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몸이 되었다.  신경 체계는 당당하게 음욕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것은 음욕의 물질적 ·해부학적 버전이 되었다.

 

-- 정신의학은 착란과 같은 정신병의 분석에서부터 충동의 교란과 같은 異常의 분석으로 넘어갔다.  그러는 동안, 아니 그보다 훨씬 앞서 18세기부터 또 다른 경로가 준비되기 시작했다.......하나의 모델을 제시해야만 했다.  그 모델이 바로 인간 유기체의 충동적이고 기본적인 메커니즘의 자동적인 방출로서의 경련이 될 것이다.  경련은 광기의 원형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고 기묘한 히스테리-간질이 19세기의 정신의학 한가운데에 구축된 이유를 여러분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이렇게 해서 여러분들은 그리스도교의 고백과 괴물적 범죄의 긴 역사가 한데 수렴되어, 당시 정신의학의 특징직 개념이며 분석인 히스테리성 간질에서 한데 합쳐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양심 지도의 영역에서 쫓겨나 의학에 의해 계승된 경련은 이제 광기의 현상분석을 위한 모델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의학이 경련을 몰수하면 할 수록, 그리고 의학이 경련을 모든 종교 의식, 혹은 신앙의 절차에 대립시키려 하면 할수록 교회는 더욱더 빨리, 그리고 더욱더 급진적으로 이 경련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 경련은 점차 하찮은 것이 되어가고, 경련에 이어 다른 것이 들어섰으니, 그것은 성령의 출현이었다.............그것은 성모의 나타남이다........그러나 19세기의 성모 현신은 신체의 접촉을 절대적으로 배제하고 있다.........성모의 모습, 그 나타남을 체험하는 존재는 .....수녀들이 아니다.   그 주체는.....순진무구한 어린아이가 될 것이다.

 

-- 몸에 대한 의학적·종교적 포위의 재편성, 살의 이동, 경련과 성모 현신의 상호적 자리옮김이 있었다.  나는 의학의 영역 안에 성이 나타나게 하는데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한 이 현상들을 과학이나 이데올로기, 또는 정신사·사회사·질병사의 용어들로는 이해할 수는 없고, 다만 권력 技術의 역사 연구로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세번째 대항-경련 기제가 있었다.  첫번째는 철저한 담론의 규칙에서 조심스러운 담론 양식으로의 이행이었다.  두번째는 경련 그 자체를 의학 권력으로 옮겨 놓는 것이었다.........세번째는 성직 권력이 규율적 교육 체계에 도움을 청한 사실이었다.  성직 권력은.....신들림의 현상들을 통제하고 저지하며 지워비리기 위해, 그들은 양심 지도나 고백 같은 이 모든 ...종교적 체험을 그 당시 병영, 학교, 병원 등에서 자리잡기 시작한 규율 메커니즘의 내부애서 작동시키려 했다.

 

-- 살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지 못했던 양심 지도 신부들이 몇 년 전에 빠졌던 그 모든 함정의 원칙이 바로 이것이었다.  즉 침대와 밤, 그리고 결국 성행위로 이어지는 전개 속에서 자세히 관찰된 몸이었다.  양심 지도 신부의 지도 대상이 된 풍요롭고 복합적이고 감각에 의해 관통되며, 경련에 의해 흔들리는 이 살에 대해서 그 구성 과정과 기원, 특히 그 기능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규정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규율장치들(수도회와 신학교 등)은 몸을 정확하게 분할하고, 그것을 꼼꼼한 분석적 공간 안에 되넣으면서 이 복잡하고 약간 비현실적인 살의 신학을 현실 속에서 정확히 전개되는 성의 세밀한 관찰로 대체하는 일을 허용했다.  그리해서 삼위일체 목회신학이 야기시킨 모든 혼란스러운 살의 근원적 메커니즘은 몸에서, 밤에, 화장실에서, 잠옷에서, 그리고 정확히 이불 속에서 찾아야만 했다.  그것을 야기시킨 목회신학은 혼란스러운 살을 통제하기 원했으나, 바로 그것 때문에 결국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새로운 영성 지도와 연결된 이 모든 살의 혼란 한가운데에서....우리는 몸을 발견하는데......특히 자위 행위를 하는 청소년의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