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note[스피노자와 표현 문제] 20210226

권순모
2021-04-03
조회수 154

20210226스피노자와표현문제



19장 지복至福



제3종 인식의 세 가지 규정

1종 인식은 외생적 부분 사이의 마주침만을 대상으로 한다. 2종 인식은 특징적 비比에 관련되고 3종 인식은 영원한 본질에 관련된다. 3종 인식이 대상으로 하는 본질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본질은 특수하다[particular/일반적이지general 않다. 3종 인식에서는 signular하다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임]. 본질은 실재적[=가능태가 아니라] 존재, 하나의 자연학적 사물res physica[=물질적인/물리적인 것=관념적이지 않은 것], 역량 혹은 강도의 정도다. [2] 각각의 본질은 다른 모든 본질과 화합한다. 3종 인식에서의 본질의 화합은 2종 인식에서의 실존 양태 간의 화합과 다르다. 2종 인식에서는 상대적인 화합이었지만 3종 인식에서는 절대적 화합이다. 2종 인식에서 더 혹은 덜 일반적인 화합/합치, 공통개념이 있었지만 3종 인식에서는 개별적 화합이다. 여기서 ‘일반적인’은 ‘보편적인’의 의미를 갖는다. 스피노자가 비판한 것은 보편자 일반이 아니라 추상적 보편개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추상을 빼면 ‘일반적인’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3] 본질은 표현적이다. 이는 신을 표현한다는 의미다. 각각의 본질은 신의 역량의 일부분이다. 신의 본질이 개별 본질에 의해서 펼쳐진다. 개별 본질이 신을 표현한다. 본질을 대상으로 하는 인식이 제3종 인식인 것이다.

최고의 인식=3종 인식의 소여는 세 가지다. [1] 우리 자신 혹은 우리의 본질에 대한 적합한 관념 [2] 최대 다수/최대한 많은 사물에 대한 적합한 관념 [3] 신에 대한 적합한 관념. 3종 인식에는 세 가지 관념, 즉 우리 자신, 사물, 신에 대한 관념이 있다.



제3종 인식의 능동적 기쁨들

나 자신, 사물, 신에 대한 관념이 3종 인식의 세 가지 관념이다. 여기서 나와 사물에 대한 관념은 1종 인식이나 2종 인식에서 가졌던 관념과 다르다. 신 안에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 대한 관념, 신 안에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관념이다. 3종 인식은 우리의 작용 혹은 이해 역량,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의 본질에 의해 설명되는 한에서 신의 사유 역량을 형상 원인으로 갖는다. 그래서 3종 인식의 관념에서 파생되는 변용들은 모두 능동적 변용이다. 본질에서 설명되므로 능동적/자기 원인이라는 것이다.

3종 인식의 적합한 관념에서 파생되는 기쁨,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욕망은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려는 욕망이다. 보통 1종 인식 단계나 2종 인식 단계에서는 사물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용이 일어나지만, 3종 인식에서는 신 안에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인식하려는 욕망이 생긴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랑이 생긴다. 모든 본질은 그것들을 착상하는 자로서의 신을 표현한다. 3종 인식에서는 [질료 원인으로서의] 신 관념에 기쁨이 동반되고 이 기쁨으로부터 지적 사랑이 싹튼다.

# 신의 형상 원인은 신의 역량이다. 우리의 이해 역량은 신의 사유 역량의 일부분이므로 곧 형상 원인이 된다. 형상적 차원에서의 원인은 이해 역량 또는 신의 사유 역량이고 질료적 차원에서의 원인은 신 관념, 즉 모든 관념이다.



제3종 인식의 능동적 기쁨과 제2종 인식의 능동적 기쁨의 차이 ─ 우리 자신에 대한 관념

3종의 능동적 기쁨과 2종의 능동적 기쁨은 똑같은 능동적 기쁨인데 어떻게 다를까? 2종 인식의 능동적 기쁨에는 개체의 질적 뉘앙스, 역량의 디그리가 결여되어 있다. 2종 인식에 머물러 있는 한에서는 우리가 갖는 적합한 관념은 우리 자신에 대한 관념이 아니다. 3종 인식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관념은 신 안에 있는 우리 그대로의 본질에 대한 관념이다. 이것을 2종 인식에서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인식 문제를 처음 제기했을 때는 우리 인식의 제한, 실존에 대한 제한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즉 수동적 변용, 부적합한 관념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제한에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 또는 우리 신체에 대한 적합한 관념을 곧바로/직접적으로 갖지 못한다. 부적합한 변용 관념에 의해서만 우리 신체를 인식한다. 그리고 이 부적합한 변용 관념의 관념에 의해서만 우리 자신을 인식한다. 우리의 실존의 조건 때문에 적합한 관념, 우리 자신의 신체 또는 정신의 관념을 가질 수 없다. 2종 인식의 적합한 관념은 우리 신체와 외부 물체/신체들의 공통 특성에 대한 관념이다. 외부 신체를 배제하고 우리 신체에 대한 관념만을 가질 수는 없다. 우리 신체와 외부 신체의 공통 특성에 관한 관념도 적합한 관념이다. 공통 특성에 대한 관념은 우리 자신에 대한 적합한 관념도, 다른 사물에 대한 적합한 관념도 구성하지 않는다. 공통 특성이 아닌 각자는 적합한 관념이 아닌 것이다. 이 관념들도 우리의 본질에 의해 설명되지만, 이 본질의 관념을 구성하지 않는다. 그래서 3종 인식에 가서야 신 안에 있는 그대로의, 신에 의해 착상된 그대로의, 신이 생각한 그대로의 우리 자신과 다른 사물에 대한 적합한 관념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3종의 관념에서 파생되는 능동적 기쁨과 2종의 관념에서 파생되는 능동적 기쁨은 다른 것이다. 정신 활동[정신의 능동성]의 두 가지 형식/형태, 우리가 능동적이 되는 방식, 스스로 능동적이라고 느끼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2종 인식의 방식과 3종 인식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사물들을 영원의 상相 아래 착상하는 것[제2종 인식 ─ 들뢰즈]은 이성의 본성에 속하며, 물체/신체의 본질을 영원의 상相 아래 착상하는 것[제3종 인식 ─ 들뢰즈] 또한 정신의 본성에 속한다.



외래적/부수적 변용들과 본유적/생득적 변용들

수동적 변용과 능동적 변용이 구별된다. 수동적 변용은 바깥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외래적이다. 능동적 변용은 우리의 본질 혹은 우리의 이해 역량에 의해 설명되기 때문에 본유적이다. 여기에는 두 차원이 있다. 첫째 공통 개념은 가지고 태어나는 것, 즉 본유적이긴 하지만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는 것이다. 1종 인식의 수동적 변용 중에서 기쁨에서 출발해서 공통 개념을 형성할 수 있다. 공통 개념의 능동적 기쁨은 1종 인식의 기쁜 수동적 변용에서 기회 원인을 얻는다. 1종 인식의 수동적 변용 중에서 기쁜 수동적 변용이 기회 원인이 되어서 공통개념으로 갈 수 있다. 즉 공통개념은 권리상 본유적이지만 기회 원인로서의 외래적 변용에 의존한다. 공통개념은 신 안에 있다. 공통 개념들을 필연적으로 포함/이해하는 다른 관념[3종 인식]을 신이 먼저 갖고 있는 한에서 신 안에 있다. 공통 개념은 신 안에서는 우리가 2종 인식에서 느끼는 기쁨에 상응하는 기쁨의 원리 역할을 할 수 없다. 신은 수동적 기쁨을 느끼지 않고 2종 인식의 능동적 기쁨도 느끼지 않는다. 신에게 인식이 있다면 3종 인식만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한다.



제2종 인식의 본유적인 것과 제3종 인식의 본유적인 것

3종 인식의 관념은 본유적인 것의 더 심층적 차원을 구성한다. 본유적인 것에는 두 차원이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첫 번째 차원은 공통개념, 2종 인식의 차원이고 표층적 차원이다. 다으므로 두 번째 차원은 3종 인식의 차원으로 심층적 차원이다. 3종 인식의 기쁨은 본질 자체의 참된 변용이다. 여기서 기회 원인 역할을 하는 것은 공통 개념이다. 2종 인식의 기쁨에서 기회 원인 역할을 한 것은 1종 인식의 기쁜 수동적 변용들이다. 3종 인식의 적합한 관념에서 파생되는 기쁨이 바로 지복이다. 3종 인식의 기쁨은 작용 역량을 증가시키는 기쁨[=2종 인식의 기쁨]이 아니다. 작용 역량의 증가를 전제하는 기쁨도 아니다,



#1종 인식에서 2종 인식으로 가는 것을 설명하나, 2종 인식에서 3종 인식으로 어떻게 가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차이만 이야기 한다. 그래서 이 부분 이해는 어렵다.



제2종 인식의 신과 제3종 인식의 신

제2종의 신 관념과 제3종의 신 관념의 차이는 무엇인가? 신 관념이 공통 개념에 관계되면 2종 인식에 속한다. 우리를 3종 인식으로 결정하는/이행하게 하는 신 관념은 3종 인식과 관련되는 신 관념, 3종 인식에 속하는 신 관념이다. 18장에서 보았듯이 신 관념이 3종 인식으로 가면 의미/내용이 바뀐다.는 우리가 3종 인식에 도달해서 능동적 기쁨을 느끼면 그것은 신이 느끼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에티카󰡕 5부에서 두 가지 사랑이 나온다. [1] 어떤 기쁨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할 수 없는 신[2종 인식에 속하는 신관념]에 대한 사랑 [2] 우리가 신을 사랑할 때 그 사랑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신/기뻐하는 신[3종 인식의 신]에 대한 사랑.



제3종 인식과 표현

신 안에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의 관념[=우리 본질에 대한 관념, 3종 인식의 관념]에서 나오는 기쁨은 신 자신의 기쁨이다. 우리가 신에 대해 느끼는 3종의 사랑은 신이 자신을 사랑할 때의 사랑의 일‘부분’이다. 3종 인식의 사랑은 우리가 신에 대해 느끼는 사랑=신이 자신에 대해 느끼는 사랑=신이 우리의 본질 자체에 대해 느끼는 사랑이다. 지복은 3종 인식의 관념에서 파생되는 기쁨, 즉 능동적 기쁨 소유이자 ‘신 안에 있는 그대로의 능동적 사랑’의 소유이다. 여기서 ‘부분’은 전체의 부분이라는 의미를 갖지 않는다. 펼쳐짐을 뜻한다. 신의 본질이 우리의 본질에 의해 펼쳐지므로 우리의 본질은 신의 본질의 일부분이다. 3종 인식에서 표현의 최종 형식을 발견한다. 표현의 최종 형식은 사변적 긍정과 실천적 긍정의 동일성, 존재와 기쁨, 실체와 기쁨, 신과 기쁨의 동일성이다. 기쁨은 실체 자체의 전개이고 실체가 양태를 통해 자신을 펼치는 것이고 이 펼침에 대한 의식이다. 3종 인식에서 우리가 느끼는 기쁨은 신 자신이 느끼는 기쁨이고, 신이 느끼는 기쁨은 우리 자신이 느끼는 기쁨이다.



실존하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제3종 인식에 접근하는가?

우리의 변용 능력이 실행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 있다.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를 때만 가능하다. 1°) 수동적 변용 ─ 이중 어떤 것들은 우리의 작용 역량을 증가시키고 다른 어떤 것들은 그것을 감소시킨다. 2°) 수동적 변용 자체에 관한 선별의 노력 끝에 공통 개념의 형성 ─ 공통 개념들에서 2종 인식의 능동적 기쁨이 따라 나오고, 공통 개념에 관계되는 신 관념에서 능동적 사랑이 따라 나온다. 3°) 3종 인식의 적합한 관념들의 형성, 이 관념들에서 따라 나오는 능동적 기쁨과 능동적 사랑(지복).

우리는 언제나 수동/정념을 가질 수밖에 없고 수동적 기쁨과 함께 슬픔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슬픔보다 기쁜 정념을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고 2종 인식의 능동적 기쁨을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고, 3종의 기쁨을 가능한 한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중요한 것은 비율의 문제다. 비율상 능동적 기쁨을 늘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노력이다. 정념을 최소화시키고 능동적 변용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



이 접근의 한계

양태의 실존은 외연적 부분들에 의해 구성된다. 외연적 부분들 때문에 지속이 생긴다. 지속은 외연적 부분들이 우리에게 속해 있을 때의 기간을 말한다. 물체/신체는 외연적 부분들을 소유하는 동안 실존한다. 외연적 부분들 때문에 실존하는 동안 모든 수동/정념을 제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외연적 부분들은 끊임없이 바깥에서 결정되고 변용되기 때문이다/영향받기 때문이다. 영혼에는 신체의 외연적 부분들에 상응하는 것으로 능력들facultés이 있다. 즉 수동적 변용을 느끼는 능력, 즉 상상, 기억, 지각/식별 능력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신체에 외연적 부분이 있다면 영혼/정신에는 그에 상응하는 능력이 있다. 기억과 상상은 영혼의 진정한 부분이다. 신체의 외연적 부분과는 다르기는 하지만, 영혼은 많은 외연적 부분들을 갖는다. 평행론적 관점에서 영혼은 신체의 실존을 표현하는 동안 신체와 함께 “지속한다.”



#들뢰즈 “3종 인식에 들어간 사람은 스피노자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