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비정상인들] 6강

권순모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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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2월 12일 강의





2월 12일 강의의 화두 : 정신의학은 어떻게 앎의 체계로 자리잡았는가?



앙리 코트니에 사건이 주는 의미 : 이해의 체계가 작동될 수 없다는 논리로 무죄가 되는 순간, 정신의학은 코트니에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본능을 발견함.- 본능은 처벌 불가능한 범죄라는 법률적 골칫거리를 이해가능한 용어로 만듦으로써 형법과 정신의학이라는 두 권력 메커니즘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역할을 함.



문제가 되는 것은 이해를 파악하기 힘들 때 등장한 본능이라는 개념이 어느 순간에 19세기 정신의학의 거대한 분류학적 구조에 삽입되었는가임. - 2월 12일의 강의에서 푸코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본능의 문제틀에서 출발한 정신의학적 권력과 앎의 일반화 과정임.



푸코가 분석한 정신의학적 권력과 앎의 일반화 과정



1. 첫 번째 과정 :

1) 1840년대 새로운 행정 규제 내부에 자리잡은 정신의학.

- 1938년 정신병자를 수용할 수용시설이 의학적 성격을 띠고 정신의학이 의학의 한 학문이자 임상의학의 특수 분야로 인정받음.

- 기관수용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의학적 증명서를 필요로 함, 그러나 의학적 결정에 행정부가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는 없음.

- 개인의 정신병의 상태에 의해 야기되어 사회적 안전과 질서를 위태롭게 할 만한 정신병이 수용의 대상이 됨.

- 문제의 초점이 이동 (정신착란의 상태를 보이는가 → 사회질서를 교란시키고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가?) 의식 수준에서의 가능성의 낙인이 아니라 행동 수준에서의 위험의 근원이 문제가 됨.

- 광기의 위험성을 과시적으로 보여주던 편집증의 중요성이 축소됨, 행정부는 보호 시설 수용을 통해 과거 편집증이 이론적으로 제시했던 광기와 위험사이의 종합을 사회 치안유지를 고려하여 현실적으로 다룸.

- 어떤 예외적이고 괴물적인 주체가 아니라 보호 시설에 보내진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게 됨.



2) 글르드넬 사건의 특징

- 글르드넬 자신의 병을 의식하고 자기에게 가해지는 법률-행정-정신의학적 통제를 기꺼이 받아들였음. 관리는 의사를 대동하고 관련 과정을 성실하게 처리함.

- 의료-사법-가정-환자의 완벽한 협력이 이루어짐. (사법의 황소와 정신의학의 당나귀?)

- 죽음의 충동이 정신의학의 배타적 대상이 됨. 그리고 관청과 정신병원의 이중의 개입을 요구함.



2. 두 번째 과정 : 가족요구의 변화

- 1838년 이전에는 아버지의 권한과 가족회의와 느린 사법 절차 후에 수용명령이 떨어졌다면 1938년 이후에는 의학증명서를 조건으로 한 직계가족의 자발적 수용 요구에 따라 수용됨→ 가족은 사법 당국에 최소한으로 의존하면서 의학 권력과 지식에 연결됨.

- 환자의 법률적 무능성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환자의 위험성을 증명해야 함.→ 행동의 차원에서 동요.무질서.위협.위험 등 일련의 모든 행동들을 정신의학화함.

- 정신과 의사는 가정의 무대에서 전개되는 모든 동요와 곤란을 의학적으로 떠맡음.→ 환자-가족 관계를 치유하는 의사



2) 라비에르

- 다양한 징표(가족들을 향한 폭력, 애정결핍)가 다른 곳에 배치되어 범죄의 예고적 요소가 되거나, 혹은 광기의 전조가 됨.

- 짓궂음, 악의. 혼동 등 가정 내의 무질서에 불과한 요소들이 범죄 혹은 병리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이제는 내적 광기를 매개로 해서 완전하게 의학화함.



3) 정신과 의사의 개입

- 가족. 이웃. 감화원과의 관계를 전체적으로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개입 → 규율적 심급을 늘리고 병리학화

- 가족간의 관계, 근본적인 사랑의 관계의 틈새가 관찰의 본질적인 구조를 이룸→ 가족 내 관계는 그들의 긍정적인 요소를 광기에 주는 대신, 그들의 틈새 때문에 병리학적 요소가 됨.



3. 세번째 과정

사람들을 판별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마련해 주도록 정신의학에 요구하는 정치적 요구가 나타남.



- 17세기 영국 혁명 이후 주권과 주권의 기초인 계약, 그리고 일반 의지와 대의 심급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법-정치적 이론이 복원 또는 새롭게 정식화됨,

- 좋은 체제와 나쁜 체제를 가르는 판별 공식을 구성하는 사법-정치적 담론의 유형을 엿볼 수 있음 (18세기 내내 주권 이론이 정치 체제 비판의 길잡이로 이용되었다면 18세기 말 이후에는 역사가 그 판별기준이 됨

- 19세기 중반 혁명의 물결 이후 정신의학이 판별기준으로 작동, 제재와 배제를 도구로 이용함.→권력으로서의 의학, 제도로서의 정신병원이 판별의 동작을 효과적으로 제재함.

- 생물학.해부학.심리학.정신의학은 정치 운동 속에서 유효성을 인정해야 할 사람과 자격을 박탈해야 할 사람을 가려냄. (인류학이 반역과 소요를 풍요로운 진짜 혁명과 분간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함 예: 가리발디, 마르크스는 성자고 조화로운 외모의 소유자, 반면에 반역자들은 외모도 별 볼일 없고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림→ 정신의학은 감정서 수준으로 묘사하고 분석하고 자격을 박탈함)





결과적으로 새로운 정신의학 참조물의 형성됨



- 즉 광기를 공동의 진실이 아니라 강요적 질서의 차원에서 나타나게 만드는 행정적 참조가 그 첫번째이고, 광기를 사회의 부동성과 정체성의 배경 앞에서 부각시키는 정치적 참조가 그 두번째임.



그렇다면 정신의학 참조물의 형성은 어떤 결과를 도출했는가?



1. 광기-충동 관계의 새로운 체계

- 부분적인 광기가 아니라 광기의 국지적 징후가 나타남 (광기는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고 가끔 드러나지만 주체 전체에 영향을 미침)

- 정신의학적 질문의 축이 생각의 논리적 형태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동의 자발성이라는 양식에 의해 결정됨.

- ‘뇌의 심각한 손상 이후 환각과, 환영, 편집증, 광적인 욕망 등이 자발적 행동을 지배한다’는 바이야르제 원칙 등장.

- 바이야르제 원칙은 정신병의 징후들이 주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제2정신의학의 창설자가 됨

→ 자발성과 비자발성, 본능과 자동적 행동 등의 문제를 정신병 과정의 중심에서 제기한 첫 번째 정신의학자가 됨.



2. 새로운 징후학이 열림

- 정신의학의 차원에서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지 못한 현상들을 모두 질병의 징후로서 부각시킴.

- 행동이 질서와 순응의 규칙으로부터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징후학적 기능이 됨.

- 여기에 더해 이 괴리가 의도성과 비의도성의 축 위에 놓이는 방식이 문제가 됨.

- 모든 행동이 병리학적 대상이 됨→ 의도성과 비의도성의 축 위에 놓여 정신의학에 의해 통제됨.

- 정신의학은 정신질환에 참조 없이 모든 행동을 정신의학화 할 수 있음. 인간의 모든 행동이 정신의학적인 심문을 받을 수 있게 됨.

- 정신의학이 질병분류학.징후학.분류학.계통학 등 같은 형식적 기준에 복종함.

- 정신적 동요는 정신의학의 담론적 형식의 수준에서 의도적 행동의 전개를 교란하는 모든 기능적.생태적 동요, 특히 신경 계통의 동요와 비교될 수 있음

- 정신의학과 일반의학은 신경학을 매개로 연결될 수 있게 됨. (정신신경학의 구성)ex: 환각을 감각 기관의 간질로 정의함.

- 정신병의 근본적인 신체증상화가 가능해짐

- 정신의학은 낯설었던 규범(법으로서의 규범, 순응의 원칙으로서의 규범, 행동의 규칙으로서의 규범)을 효과적으로 도입함. 그리고 이를 신경학을 매개로 기능적 의학 속에 닻을 내림으로 기능적 규칙으로서의 규범, 조정된 기능으로서의 규범을 끌어낼 수 있게 됨.→ 행동의 규칙으로서의 규범과 기능적 규칙성으로부터의 규범이 서로 만남.

- 이에 따른 결과 정신의학은 아주 사소한 일상적 일들 속에서 사법-의학적인 것이 된다.

- 범죄와 광기의 만남이 일상적인 일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