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비정상인들] 2강

권순모
202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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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인들 2강 1975년 1월 15일 강의

 

광기와 범죄

 

① 왜 1강에서 법-의학감정서를 왜 보여주었는가? 본래 1810년 형법 제64조에 따르면, 병리학이 무대에 등장하면 법률에 의거한 범죄성은 사라져야 한다. 광기의 경우에는 의료 기관이 법률기관을 대신해야 한다. 사법 기관이 광인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이 기관(재판 기관)은 광인[rectius: justice / 라틴어 rēctior의 복수] - 사법 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임 - 을 포기해야 한다. 즉 위법성 조각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② 하지만 당시 감정(鑑定)은 법률적 관행을 다른 메커니즘으로 바꾸어 놓았다. 광기와 범죄 사이에 “관계”를 맺어주기 시작하였다. 정상참작이 결정되었을 때는 범죄의 정황이 아니라 범죄자에 대한 감정, 평가, 진단에 따라서 형벌이 조율되었다. 그러면서 감정(鑑定)이 가져온 효과와 제도화는 종전 의학적·법률적 담론의 상호배제를 의학적·법률적 이중의 평가로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병적 악의와 소아증

 

① 의학적·법률적 이중의 평가에 의한 “수행과 기술”이 “병적 악의”라는 새로운 장을 만들었다. 감정서에 등장하는 ‘게으름, 오만, 고집, 악의’ 등의 단어들은 전기적 요소일 뿐이지 범죄 행위를 설명하는 원칙들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유치한 사건이 “마치 미래의 범죄를 예고하는 것인 양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환원 작업을 통해 어린 시절의 소소한 사건들은 이미 범죄의 유사물이 된다.

 

② “유치한 단어들로 주조된 이 모든 변태 개념의 장은 법률 권력의 장에서 의학적 개념이 기능하도록 도왔고, 반대로 법률적 개념들은 의학 관련 장에서 기능하도록 도왔다.” --> 푸코는 이들의 작용이 교환기의 기능을 강력하게 수행했고, 인식론적으로 허약한 만큼 더욱더 강력하게 기능했다고 보고 있다.

 

위험한 개인

 

① 감정(鑑定)이 수행한 또 다른 기능은 “감옥이냐 병원이냐” “속죄냐 치유냐”의 제도적 양자택일을 사회적 반응의 동질성의 원칙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개인에 대한 교정적 관심에서 사형이라는 최종적 법률적 제재에 이르는 연속체”가 거대한 실천과 억압적이고 징벌적인 거대한 제도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푸코는 치료의 극점과 시법적 극점을 가지고 있는 연속체(혼합적 제도)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② “병적 악의”라는 개념은 일련의 사법적 개념과 의학적 개념들을 하나씩 봉합하는 것을 허용하였으며, “위험한 인물” 개념은 의학제도와 법학제도의 단절없는 연결고리를 이론적으로 정초하고 합리화하는 역할을 한다.

※ 법의학감정의 이론적 핵 : 위험과 변태

 

정신감정가는 위부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① 푸코가 법의학감정서를 통해 강조하고자 한 바는 감정서가 지닌 그로테스크하고 위부적인 성격이었다. 의학과 법률의 결합은 ㉠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담화이며, 아이에게 훈계하는 도덕적 담화의 재활성화에 의해서만 수행되고, 또 그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 변태의 장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담화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회적 위험이라는 문제 주변에서 형성되는 담화이기도 하다. 즉 ”공포의 담화“이며, ”위험을 감지하고 그것에 대항하는 기능을 가진 담화“이다. 공포와 도덕에 의해서 형성된 인식론적 체제는 아주 허약할 수 밖에 없다(광기에 대해서도 그렇다).

 

② 감정서를 통해서 사람들이 나타내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부모에게 걱정을 끼쳐 드렸다, 학교에 자주 결석했다. 게을렀다, 그에게 책임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는 바이다...등의 문장) 푸코는 사법적 권한이 장엄하게 의학 지식에 자리를 내주는 이 메커니즘의 한가운데에서 ”겁에 질린 무식한 위부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그때부터 “이중의 기계”가 작동하는 것, ’어릿광대짓과 정신감정가의 기능은 완전히 동일‘하다고 보았다.

 

의학감정 안에서의 정신의학의 인식론적 수준과 그 퇴행

 

① 우선 우리가 19세기에서 오늘날까지 목도하는 현상은 매우 이상한 역사적 후퇴이다. 초기 정신감정서들은 지식을 단순히 사법 제도 안에 옮겨 놓는 것이었다. 지금의 정신감정서는 우리 시대의 정신의학적 지식과 완전히 유리되어 있다. 그 이유는 현대 정신의학감정가의 말이 정신의학의 인식론적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는 데에 있다.

 

② 정신의학적 지식이 해체되고 질이 저하되고, 후퇴하는 현상 속에서 무엇이 다시 나타나는가? <1728년 자기 아이를 비세트르 병원에 받아달라는 한 어머니의 청원서>를 인용함. “만일 더 오래 머물렀다면 어머니는 완전히 파산했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결코 휴식을 얻지 못할 것이며, 그들의 생명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푸코는 18세기말의 사법 개혁이 없앴다고 주장했던 거대한 관행이 우리 시대의 지식과 제도를 통해 다시 활성화되어 현재 우리 옆에 가까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구체적으로는 통제, 평가, 개인의 성격 규정과 연관된 권력 효과의 모든 것이 더욱더 활성화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푸코는 그 활성화(관행의 재활성화)를 “퇴보”로 규정했다.

 

의학 권력과 법률 권력 사이의 갈등의 종식

 

① 관행의 재활성화에 따른 퇴보 이외에도 그것과 대척점이 있는 다른 역사적 과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법의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무한한 권력의 요구이다. 19세기초 이래 끊임없이 의사의 사법권 혹은 판사의 의료권이 집요하게 요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법 기관은 이를 두고 침입, 몰수, 자기 영역의 박탈로 간주했으나, 19세기말부터 직업·기능·판결의 의학화를 요구하는 판사들의 숫자가 증가했다. 의사들은 “의사로서 나는 사법적인 능력도 있다”고 거듭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중엽에는 판사들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의 기능이 판결과 속죄의 치료 기능을 갖기를 원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②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사법 개혁은 일종의 의학-사법적 권력을 효과적으로 조직했다. ㉠ 중죄 재판소에 출두하는 모든 개인들은 의무적으로 정신감정을 받아야만 했다. ㉡ 이 제도의 정착은 특별 재판소와 아동재판소의 신설로 나타났다. 이들 재판소에서 판사들에게 주어진 정보는 심리학적 사회적·의학적 정보였다. 즉 범법행위 자체보다 개인적인 규율 상태, 삶과 존재의 문맥을 더욱 중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서와 비정상인들

 

① 현재 기능하고 있는 법-의학감정서는 정확히 의학적인것도, 법률적인 것도 아닌 “어떤 메커니즘”이 양자의 경계선에 침입한 것으로 보인다. 법-의학감정서 안에서 사법과 정신의학은 각기 변조되었고, 두 학문은 고유 목적과 상관이 없고 자기 고유의 규칙성을 실행에 옮기지도 않는다. 법-의학감정서가 상대하는 것은 범법자나 무죄인이 아니고 비-환자에 대립되는 질환자도 아니다. 그것은 뭐랄까 “비정상인”의 범주이다. 대립의 장이 아니라 정상에서 비정상으로 가는 단계 속에서이다.

 

② 감정서는 다른 대상을 겨냥하고 있으며, 전혀 다른 테크닉을 구사하고 있다. 그 테크닉은 법률적 개념이나 의학적 개념으로 교묘하게 뒤덮인 일종의 은폐적이고 기만적인 “제3의 용어”를 만들어낸다. 푸코는 “재3의 용어”를 법률적 권력도 아닌 의학적 권력도 아닌 “제3의 권력” - 푸코는 임시적으로 “규격화 권력”으로 이야기함 – 이라는 권력 기능에서 나오는 용어로 보았다.

 

③ 감정서와 함께 현대인은 비정상인들과 관련되는 재판 절차를 가지게 되었다. 이 절차는 “규격화 권력”의 개입을 돕고 그 고유의 힘과 그것이 의학과 법학 사이에서 수행하는 연결 효과에 의해 사법 권력과 의학 권력을 변모시키며, 스스로 비정상인의 통제 심급이 되어간다. 감정서가 중요한 정치적 문제이며 동시에 이론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 혹은 비정상적인 사람을 통제하는 심급으로서의 법-의학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감정서가 이상한 권력 계보와 맥이 닿아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억압 개념 비판

① 푸코는 기존의 “권력의 주요 기능이 억압이고, 그 효과의 수준은 근본적으로 상부 구조적이며, 결국 그 메커니즘이 주로 무지와 맹목에 연결되어 있는 그런 권력”과는 다른 개념의 억압과 전혀 다른 타임의 권력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그 예로 나환자의 추방을 들고 있다.

 

나환자의 추방과 페스트 환자들의 포용

 

① 나환자 추방(분할, 거리두기, 비접촉 규칙 등을 포함하는 “주변부로 밀어내기” 관행)의 모델은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사라졌다. 하지만 푸코는 “나환자 추방의 모델과 관행이 역사적으로 생생하며 우리 사회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살아 있다”고 믿고 있다(거지, 부랑자, 게으름뱅이, 방탕아의 추방이 나환자 추방의 모델이었다고 푸코는 추측함).

 

② 푸코는 18세기에 나환자 추방 대신에 “페스트 환자의 끌어안기”가 통제의 모델로 채택된 것이 18세기의 중요한 현상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다. 페스트 상태의 도시는 구(區), 가(街), 길로 나뉘어졌으며, 각각 담당관, 감독관, 감시관, 그리고 도시 전체에는 총독 내지는 임시로 권한이 부여된 행정관이 있었다. 이를 통해 해당 지역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분석된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조직이 가능했다.

 

③ 푸코는 이러한 조직을 두고 어떠한 침입도 허용되지 않는 거대한 피라미드가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그 피라미드에 침입할 수 없는 이유를 두고, 푸코는 위계적이어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권력의 수행 때문으로 보았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그 지역에서 관찰되는 모든 일들은 “지속적”으로 기록되고, 모든 정보들이 커다란 장부 속에 재기입되었다. 행정관은 모든 정보들을 도시 중앙 행정부가 가지고 있는 중앙 장부와 대조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④ 페스트 환자들에 대한 조치는 나환자의 경우처럼 추방만 하지 않을 뿐, 나환자 관련 모든 관행과 완벽하게 대구를 이룬다. 담당관, 감독관, 감시관, 행정관의 조사를 통해서 권력은 한 개인이 규칙을 잘 지키는가, 규정된 보건 수칙을 잘 지키는가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개인을 평가하게 된다. 18세기 중엽 폐스트 발병에 따른 “포용(추방이 아닌 것)”적인 조치 속에서 개인의 미세한 결에까지 이르는 “권력의 세분화이며 개인화”가 기능하게 된 것이다.

 

권력의 포지티브한 기술 발명

 

① 문학에서는 페스트를 극도로 혼란스러운 공포의 순간으로 그린다. 하지만 정치적 측면에서 페스트는 “정치 권력이 완벽하게 행사되는 멋진 순간”이다. ㉠ 정치 권력에 의한 주민의 분할 지배가 철저히 이루어짐, ㉡ 개인의 시간, 공간, 환경, 육체에까지 침투해 들어가는 순간, ㉢ 아무런 장애물없이 대상을 완전히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음.

 

② 푸코는 페스트에 대한 대응은 모든 사람을 끌어안고, 관찰하며, 앎을 형성하고, 그 관찰과 앎에서부터 권력의 효과를 증식시키는 포지티브한 대응(나환자에 대한 네거티브 대응)으로 보았다. “(나환자 등을) 내쫓고, 제외시키며, 금지하고, 주변부로 몰아내는 억압적 권력 기술에서 포지티브한 권력으로, 다시 말하면 무언가 만들고 관찰하는 권력, 모든 것을 아는 권력, 스스로의 효과에서부터 자신의 힘을 증식시키는 그러한 권력으로 넘어갔다.”

 

③ 고전주의 시대는 추방이 아니라 구성원들을 가까이 끌어안아 분석하는 권력, 차별화된 개인들을 분배 배치하는 권력, 앎의 형성·투입·축적·증식을 가능케 하는 일련의 메커니즘과 관련된 권력 기술을 만들어 냈다. 고전주의 시대는 “관리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④ 푸코는 고전주의 시대에 다듬어진 관리(管理)가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다. ㉠ 18세기 혹은 고전주의 시대는 정부 기구의 의지·소외·정의·대표성 등의 개념에 집중되어 있는 사법-정치적 이론을 만들어 냈다. ㉡ 18세기 혹은 고전주의 시대는 다양한 기관들로 거점을 확장한 국가기구를 정착시킨 것이다. ㉢ 18세기 혹은 고전주의 시대는 수많은 다양한 장치와 기관들에 적용될 수 있는 권력 행사의 일반 기술을 마련했다.

 

⑤ 푸코는 권력 행사의 일반 기술에 관심을 끈다고 밝혔으며, 구체적으로는 이를 토대로 “성 규격화 분석의 배경”으로 삼을 것을 이야기했다. 이어서 인간 관리의 일반적인 기술을 하나의 전형적인 장치를 내포하는데, 그것이 바로 1974년 강의에서 푸코가 이야기한 규율적 조직이다. 여기서 푸코는 전형적인 장치가 “규격화”에 의해서 완성된다고 밝히고 있다.

 

※ 푸코는 금년(1975)에 규율 장치만이 아니라 규율 장치가 지향하는바, 규율장치가 “규격화”의 표제 속에서 얻는 효과 등을 강의하겠다고 밝혔다.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① 푸코는 캉길렘의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을 통해서 규범이 권력에의 요구를 담고 있으며, 권력은 단순히 추상적인 원칙이 아니라 권력의 근거와 합법성을 마련해주는 거점임을 이야기했다. 이어서 규범은 자격 부여의 원칙과 교정의 원칙을 동시에 품고 있으며, 규범에는 배제와 거부의 기능이 없는 대신에 오히려 항상 개입과 변모라는 포지티브한 기술, 즉 일종의 규범적 기획과 연관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② 푸코는 권력이 근본적으로 억압의 부정적 메커니즘이라거나, 생산관계의 재생산이나 보존, 보호의 기능을 갖는다는 주장을 오류로 보았다. 이어서 권력이 힘의 관계에서 상부 구조에 위치해 있다는 생각 역시 오류로 판단하였다. 마지막으로 권력이 근본적으로 무지의 효과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 역시 오류로 보았다. 위의 전통적 개념은 과거의 역사적 모델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푸코의 생각이다. “내가 우리 시대라고 한 것은 최소한 18세기 말 이래의 시기를 말한다”

 

③ 18세기가 “규격화의 효과를 내는 규율”에 의해, 그리고 “규율-규격화”의 체제에 의해 새롭게 마련된 것은 아마도 억압적이 아니라 생산적인 권력이다. 18세기가 만들어 낸 것은(18세기 말 왕정, 소위 구체제의 사라짐은 정확히 이것의 결과이다) 상부 구조가 아니라 힘들의 게임·분배·역동성·전략·효과 등에 통합된 권력이다. 18세기는 보존하는 권력이 아니라 자체 안에 변화와 쇄신의 원칙을 간직한 권력을 정착시켰다. 마지막으로 18세기는 앎의 형성에 의해서만 기능하는 권력 유형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은 규율과 규격화를 통해서였다. 푸코가 17세기부터 19세기말까지 사람들이 성의 영역에서 규격화를 어떤 방식으로 수행했는가를 분석하면서 참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권력 효과이며, 권력 메커니즘의 포지티브한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