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정신의학의 권력] 12강

권순모
202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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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강. 1974년 2월 6일

 


1. 신경학적 신체

가. 신경학적 검사 – 자극과 반응의 도식

나. 신경학적 포획장치의 확립 – 실어증 연구와 척수로 환자의 보행 연구

다. 신경학적 검사에서의 환자와 의사의 권력

2. 신경학적 임상의학 장치와 히스테리

3. 히스테리를 둘러싼 거대한 술책

가. 첫 번째 술책 – 징후학적 시나리오

나. 두 번째 술책 - ‘기능적 마리오네트’의 술책

1) 최면 및 암시

2) 외상성 장애자와 대조

다. 세 번째 술책 – 외상을 중심으로 한 재배치

4. 히스테리 환자의 대항적 술책 - 성현상


 

신경학적 신체

신경학적 신체는 병리학적 신체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이자 파생물·확장이다. 장-마르탱 사르코는 ‘병을 위치결정하는 정신의 승리’라고 표현하였다. 다만 신경학 내지 신경학적 임상은 의학의 실천적 영역에서 완전히 다른 신체가 확립되어 환자와 의사의 신체는 일반의학과 완전히 이질적인 배치에 따라 마주보며 새로운 임상장치가 확립된다.

 

신경학적 검사 – 자극과 반응의 도식

새로운 장치는 무엇이며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18세기에 안색, 혈색, 볼이 빨간 정도, 눈의 출혈 등을 임상진단에서 중시했다. 그러나 마리-프랑수아-자비에 비샤와 르네-네오필 라에넥 사이에서 병리해부학이 형성될 때는 인상주의적인 서술은 축소되면서 한정된 수의 표면적 징후를 코드화하게 되었다. 제한된 표면적 징후는 임상의학의 코드에 따라 병변부위를 표착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병변부위는 외과수술이나 해부를 통해 상세하게 서술되었다. 병리해부학에서는 심층의 병변기관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반면 표면에 대해서는 한정된 징후의 격자화를 통해 물음이 던져졌다.

그러나 환자의 얼굴에 대한 샤르코의 학생이 적은 수기에서는 눈썹의 비대칭성, 피부의 주름, 패인 피부 등에 대한 서술이 나타나는데 18세기의 표면적, 유사인상주의적 시선으로 회귀하고 있다. 동시에 샤르코의 학생이 적은 수기에서는 의학적 담론 및 지식의 내부에서 표면의 가치가 다시 출현하고 있다. 표면의 요철이 표면을 향한 시선으로 답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경학에서 환자가 임상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포획되고 이와 상관하여 신경학적 신체가 구성될 때 우선적으로 반응이 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병리해부학에서 징후는 보는 즉시 포착할 수 있는 것으로 자극의 결과로 얻어진다. 즉 고전적 병리해부학에서 탐구되는 것은 자극과 효과로 이루어진 체계이다. 이 체계는 흉부를 타진하여 소리를 듣거나, 기침을 하게 해 소리의 날카로움을 듣거나, 촉진으로 열을 파악하는 등 자극과 효과로 이루어진다.

반면 신경학적 검사에서는 징후가 기계적인 효과로 해독되는 것이 아니라 반응으로 해독된다. 자극과 효과의 도식을 자극과 반응의 도식이 대체한 것이 매우 중요하다. 뒤셴느 드 불로뉴의 ‘국소감응통전법’은 초보적 수준에서 신경병리학의 토대가 되는 발견이다. 불로뉴는 두 개의 젖은 전극으로 피부 표면에 전기요법을 행하여 근육에 의한 반응을 얻었다. 피부 표면을 적심으로써 전기요법의 효과를 제한하여 단 하나의 근육에 의한 특이한 반응을 얻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에 입각하여 반사에 대한 연구, 다양한 자동성의 연쇄나 이전의 학습을 함의하는 복잡한 행동 양식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신경학적 포획장치의 확립 – 실어증과 척수로 환자의 보행 연구

이러한 연구를 통해 신경학적 포획장치가 완전히 확립된 두 거대한 연구 영역이 발견되었다. 폴 브로카의 실어증 연구와 뒤셴느 드 불로뉴의 척수로(脊髓癆) 환자 보행 연구이다.

불로뉴는 척수로 환자의 보행을 행동양식이라는 관점에서 행위가 구성하는 여러 에피소드와 행동양식의 연쇄라는 관점에서 기술하였다. 이를 통해 척수로에서 발견되는 평형감각 장애를 알코올 중독이나 소뇌장애에서 발견되는 현기증과 구별하였다. 1864년 논문에서 불로뉴는 척수로의 걸음걸이와 현기증에 의한 동요를 감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현기증 환자의 동요는 완만하고 환자가 흔들림에 몸을 맡긴다. 반면 척수로의 동요는 짧고 갑작스러우며 환자의 자세는 평형을 되찾으려는 줄타기 광대와 같다. 현기증은 근육의 수축이 없고, 근육 조직과 긴장이 느슨해지지만, 척수로는 언제나 균형을 잡으려고 하며 두 다리의 근육 조직이 일관되게 작고 짧은 연축(攣縮)이 발생한다. 현기증 환자는 지그재그로 걷지만, 척수로 환자는 곧바로 나아가되 신체가 직선위에서 흔들린다. 척수로 환자는 신체균형이 완전히 결여된 것이 아니라 양다리에만 국소적으로 평형이 결여되어 있다. 1859~65년에 브로카가 행한 실어증 분석에서도 한 지점에서 병변의 현전을 나타내는 효과에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기능부전을 나타내는 반응에 관련된 징후의 체계를 탐구하였다.

이를 통해 첫 번째로 신경과 의사들이 공조작용이라고 부르는 근육 간의 존재하는 여러 상관관계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로 분석해야 할 현상들을 의지적인 것과 자동적인 것의 축에 따라 단계적으로 분할할 수 있게 되었다. 자발적이고 의지적인 행동양식과 외부로부터 오는 명령에 의해 행해지는 의지적인 행동양식 사이에 어떤 기능상의 차이가 있는지, 신경이나 근육의 활동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의지적인 것과 의지적이지 않은 것, 자동적인 것과 자발적인 것, 명령에 의해 요구되는 것과 행동양식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연쇄되는 것 등 신체에서 나타나는 위계적 전체를 통해 개인의 의도에 기초하는 태도를 임상적 관점에서, 신체적 지정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주체의 태도, 의식, 의지를 신체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포획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신의학의 권력에서 의지는 규율의 거대한 상관물이었다. 그런데 그 의지의 수준에서 개인에 대한 임상분석을 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규율권력에서 의지는 규율권력이 적용되어야 할 대상이었고 규율권력은 바로 이 의지에 대항하고 있었지만, 보상과 처벌로 이루어진 체계에 의해서만 접근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이제 신경병리학에 의해 임상적 도구가 부여되어 개인을 그 의지 수준 자체에서 포획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신경학적 검사에서의 환자와 의사의 권력

의사는 신경학적 검사와 함께 고전적 병리해부학과 관련된 자신의 권력을 일부 잃게 된다. 병리해부학에서는 환자에게 눕기, 다리 구부리기, 기침 등 최소한의 지시를 내림으로써 환자의 의지에 최소한만 의존하고 있다. 반면 신경병리학에서 의사는 환자의 의지, 환자의 협력 내지 이해를 경유해야 한다. ‘걸으세요!, 다리를 뻗으세요!, 손을 내미세요!’ 등 명령이나 지시에 기초한 검사의 기술이 필요해진다. 따라서 환자의 의지가 검사의 핵심에서 발견된다. 즉 의사는 명령하고 자신의 의지를 부과하려고 하지만 환자는 따를 수 없는 척을 하면서 따르지 않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의사가 환자의 의지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신경학적 포획장치를 활용하면 행동양식이 의지적인지, 자동적인지, 자발적인지 등의 파악이 임상적으로 가능해지고 의지의 수준에서 행동양식의 임상적 해독이 가능해진다. 의사는 명령을 내릴 때 잃는 권력을 여기서 되찾게 된다. 이를 통해 의사는 대답의 질과 속성, 환자의 의지에 따른 대답의 변조 여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브로카 이래로 신경과 의사는 의지적인 침묵과 구어장애형 실어증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구어장애는 말하려는 시도와 함께 깊은 속에서 소리가 울리거나 자동작용이 생겨나고, 운동신경 장애 및 몸짓이나 글쓰기에서도 표현의 결함이 동반된다. 그러나 말하기를 거절하는 사람 더 나아가 히스테리 환자는 몸짓으로 표현하고 쓸 수 있으며 구어장애 따른 장애를 전혀 동반하지 않는다. 이처럼 임상적 관찰 수준에서 개인의 의지를 포획할 수 있다. 따라서 운용이 가능한 임상적 관찰 내지 임상적 해독으로 인해 의사는 환자를 우회하고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상을 요약하면, 하나의 새로운 임상의학적 장치가 그 본성과 기제, 효과 면에서 비샤 내지 라에넥적(병리해부학적)인 임상 장치도 다르고 정신의학적 장치와도 다른 것으로 확립된다. 기질적 의학에서는 환자에게 최소한의 지시가 내려질 뿐 그 밖의 것은 전적으로 의사의 검진에 맡겨진다. 자극과 효과로 이루어진 체계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심문만이 포획을 위한 본질적 부품이고 기질적 의학에서의 검진을 대체한다. 심문은 주체의 의미에 의존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응답은 단순히 현실의 시련, 즉 ‘그는 광인인가 아닌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일 뿐이다.

이에 비하여 신경학은 병리해부학적인 의미에서 검사도 아니고 심문도 아니다. 신경학은 심문을 명령으로 대체하고 명령을 통해 반응을 얻으려고 하는 장치이다. 반응은 심문에서와 같은 주체의 언어적 반응이 아니라 신체의 반응이다. 이는 신체의 수준에서 임상적으로 해독이 가능한 반응이며 따라서 주체에게 속아 넘어갈 염려 없이 감별적 검사에 첨부할 수 있는 반응이다.

요컨대 절대진단에 맡길 수밖에 없었던 행동양식에 감별진단을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실의 시련은 이제 필요하지 않고 신경학적 임상은 감별진단을 행할 가능성을 부여받게 되었다. “내 명령에 따르고 입을 다문다면 네 신체가 반응하리라.”

 

 

신경학적 임상의학 장치와 히스테리

신경학을 기원으로 하는 새로운 임상의학적 장치가 확립되어 새로운 덫이 장치되자 처음으로 의학적 영역에서 히스테리가 출현하고, 히스테리가 하나의 병이 되며, 히스테리를 의학적 방식으로 취급할 수 있게 되었다.

신경학과 신경학에 고유한 임상적 장치가 존재하게 되기까지 의학에는 병의 거대한 두 영역이 존재하였다. 정신질환과 여타의 병이다. 이는 정신의 병과 신체의 병이 대립하는 형태는 아니다. 1820년부터 1870~80년까지 정신과 의사들에게 정신의 병은 심적인 징후 내지 증후군을 동반하는 신체의 병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체와 정신의 대립, 기질적 병과 심적 병의 대립은 당시 의학을 분할한 구별은 아니었다.

그 구분은 1) 감별진단으로 파악될 수 있는 병, 즉 진정한 의사, 확실한 의사가 관여하는 좋은 병, 확고한 병과 2) 현실의 시련을 통해서만 의사가 손댈 수 있고 식별할 수 있을 것 같은 정신질환이라고 불리는 병, 즉 ‘그는 광인이다 아니다.’의 이항대립에 의해서만 다룰 수 있었던 병의 구분이다. 다시 말하여 감별진단에 통합되는 병과, 절대진단에 귀속되는 병 사이의 분할이다.

두 범주 사이에는 중간항이 존재한다. 우선 좋은 중간항은 전신성 마비이다. 인식론적으로 좋고, 매독에 의해 비롯된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도 좋은 병이었다. 전신성 마비는 심리학적 증후군과 혀의 떨림이나 근육의 점진적인 마비와 같은 운동성 증후군을 동시에 수반하였다. 그리고 두 증후군은 모두 병리해부학적 관점에서 뇌의 한 병변으로 회부된다. 따라서 전신성 마비는 현실의 시련에 맡겨져 있던 정신질환과 병리해부학을 준거로 감별적으로 지정되던 병 사이에 중간항을 이루는 좋은 병이었다. 인식론적으로 이로운 측면은 있지만 도덕적으로 부정적 측면은 없었다.

반대로 나쁜 영역이자 혐오해야 할 중간항으로 신경증의 영역이 있다. 1840년경 신경증은 ‘관계기능의 장애’라고 불리는 운동 내지 감각의 장애를 가지면서도 병리해부학적인 변형이 없는 여러 병으로 경련, 히스테리, 심기증 등이었다.

이 병들은 우선 인식론적으로 나쁜 병이었다. 징후의 혼동과 불규칙성 때문이다. 경련의 영역에서 다른 유형을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신체에 대한 세세한 해독이 불가능하여 혼동과 불규칙성의 ‘권력’이 있었다.

도덕적으로도 나쁜 것이었다. 위장하기 쉽고 성적인 행동양식이 끊임없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쥘 팔레는 1890년 자신의 『임상연구』에 수록된 논문에서 ‘히스테리 환자들의 삶은 끊임없는 거짓말에 불과하며, 남몰래 수치스러운 행동에 몰두한다. 그녀들은 소란을 일으키고, 천박한 말을 하거나 외설스러운 말은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경학의 임상적 포획기구와 그 상관물인 신경학적 신체로 구성된 체계의 출현하면서 감별진단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결코 광기에 적용시킬 수 없었고 진정한 의미에서 정신질환을 파고들 수 없었던 감별진단, 광기가 절대진단의 소관이었기 때문에 통상적 병과 광기 사이에 들어갈 수 없었던 감별진단을 해부학적으로 지정가능한 병변을 동반하는 신경학적 장애와 ‘신경증’이라고 불리는 장애 사이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인식론적으로 최악의 범주였던 신경증이 신경학적 분석과 임상이라는 새로운 도구에 의해 갑작스럽게 진정한 병, 확실한 병에 가까운 곳으로 지위가 ‘향상’되었다. 신경증이라는 지대가 병리학적으로 확립되는 것이다. 피넬이 광인을 족쇄에서 해방시킨 것처럼, 샤르코는 히스테리 환자를 병자로 인정받게 만들었고 히스테리 환자에 대해 병리학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히스테리를 둘러싼 거대한 술책

의사와 히스테리 환자 간의 싸움, 대결, 상호포위, 대칭적인 덫의 배치, 포위와 대항포위, 제어의 시도의 관점에 입각해 분석하려고 한다. 히스테리는 정신요양원과 정신요양원 밖에서 신경학적 임상이라는 새로운 의학적 장치를 중심으로 벌어진 투쟁 현상의 총체이다. 이러한 신경과 의사와 히스테리 환자 간의 투쟁 속에서 몇 가지 술책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술책 – 징후학적 시나리오

히스테리가 기질적 병이자 감별진단의 소관인 진정한 병이기 위해, 의사가 진정한 의사이기 위해서는 히스테리 환자가 안정된 징후의 총체를 제시해야 한다. 의사가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신경과 의사로 공인되기 위해서는 “나에게 징후를 내놓아라. 하지만 안정되고 코드화되고 규칙적인 징후를 내놓아라.”라는 명령이 은밀하게 지시된다.

징후의 규칙성과 안정성은 두 형태를 취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징후는 항상성의 형태를 취해서 신경학적 검사가 행해질 때 언제나 환자에게서 반드시 해독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 징후는 요구할 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것으로 샤르코와 그 후계자들이 히스테리의 ‘스티그마트’라고 불리는 것이다. ‘스티그마트’는 모든 히스테리 환자에게서 발견되는 현상으로 시야의 협착, 단순 반신마비 혹은 이중 반신마비, 인두지각마비, 연축 등이다. 그리고 모든 ‘스티그마트’는 신체를 움직이도록 하는 명령에 대한 반응이었다.

두 번째로 발작이 정연하고 규칙적이어야 했다. 따라서 전형적인 시나리오에 따라 발작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 결과 히스테리 발작이 간질을 모델로 코드화되었다. 샤르코 이전에는 ‘히스테리 간질’, ‘경련’ 등으로 불리던 거대한 영역이 두 개로 분할된다. 첫째 경직성 국면, 간헐성 국면. 마비기 등 간질 발작의 요소를 동반하는 병이 있다. 둘째 히스테리 고유의 요소도 동반한다고 여겨지는 병이 있다. 히스테리 고유의 요소는 1) 비논리적인 움직임의 국면, 2) 열정적인 태도의 국면(음란 혹은 공포의 감정을 재현하고 표현하기 때문에 ‘조형적’ 국면이라고 불림) 3) 망상의 국면이다.

이러한 술책에는 이중의 작용이 있다. 우선 의사는 히스테리의 항상적 스티그마트와 규칙적 발작에 호소하면서 ‘너는 광인이냐? 너의 광기를 내게 보여다오. 너의 광기를 현동화하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소거해 버린다. 이를 통해 의사는 감별진단이라는 의학적 행위를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해 달라고 환자에게 요구한다. 다른 한편으로 히스테리 환자의 이익이 있어서 환자는 의사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히스테리 환자의 이익은 감별진단을 할 수 있는 항상적이며 규칙적인 징후를 제공하면 그는 더 이상 정신요양원의 광인이 아니게 된다. 징후의 항상성과 규칙성으로 인하여 히스테리 환자는 광인이 아니라 환자일 권리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히스테리 환자가 획득하는 권리는 환자와 의사의 최종적 의존관계에 의거한다. 의사가 신경과 의사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 여부는 히스테리 환자가 자신의 규칙적인 징후를 의사에게 제공해주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자신의 징후를 제공함으로써 환자는 의사보다 우위에 서고 의사를 정신과 의사가 아닌 의사로서 공인하는 것이다. 히스테리 환자는 이런 추가적 권력 속으로 모든 쾌락을 신속히 돌진시킨다. 따라서 히스테리 환자가 요구되는 대로의 징후를 과잉제공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징후를 제공할수록 의사에 대한 환자의 초권력이 긍정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술책 - ‘기능적 마리오네트’의 술책

의사는 징후의 증식에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의존하기 때문에 지위를 얻는 동시에 패자가 된다. 히스테리 환자가 제공하는 증식된 징후(14일간 일으킨 17,083회의 발작 등)는 의사가 점검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따라서 의사는 적은 시간 동안 그토록 많은 수의 발작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서 히스테리의 전형적이고 특징적인 현상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한 도구가 필요하게 된다. 이를 위해 두 가지 기술이 확립되었다.

 

최면 및 암시

최면은 환자를 어떤 상태에 두어서 그 결과 의사가 정확하게 원하는 징후만을 원하는 때에 얻어내는 기술이다. 샤르코에게 최면은 뒤셴느 드 불로뉴의 국소감전법과 마찬가지로 히스테리 현상을 제한하고 원하는 대로 일어나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최면에 의한 징후의 유발은 의사의 강요에 의해 환자의 신체에 나타나게 되는 이면에 불과하다는 의심이 생긴다. 따라서 최면은 좋은 기술이지만 위험하다. 최면은 반응이 아닌 효과 즉, 명령이 부과되어 나타나는 효과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외상성 장애자와 대조

따라서 최면을 이용하는 순간 최면에 의한 현상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보증해주는 일종의 상관물을 최면기술 외부에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샤르코는 자연스러운 히스테리이고 최면의 개입에 의한 효과를 순화해서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환자를 보유하게 된다.

샤르코는 1872년 히스테리 간질에 관여하고 1878년 최면을 개시하였는데, 노동사고나 철도사고에 보험체계가 도입되는 시대이기도 했다. 의료비를 지불하지도 않고 구호를 받지도 않는 보험에 가입한 병자라는 새로운 범주가 나타난 것이다.

보험에 가입한 병자와 신경학적 신체가 나타나는 이중의 출현은 히스테리의 역사에서 중요한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사회는 최대한의 건강에서 이익을 이끌어 내기 위해 18세기 말 이래로 조금씩 병과 사고에 대해 감시, 격자화, 보장, 보험 등 일련의 기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19세기가 되어 병이 그 자체로 이익의 원전이 되고 일반적 보장체계로부터 이익을 끌어낼 수 있는 일정한 방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고 병은 이익과 관련된 경제적 문제 전체와 뒤얽히게 된다. 그 결과 새로운 병자가 출현한다. 바로 해부학적 토대가 없는 마비나 감각상실, 연축, 고통, 경련 등 외상성 장애라고 불리는 여러 장애가 나타나는 보험에 가입된 병자이다. 문제는 이들을 병자로 여겨야 하는지 병을 위장하고 있다고 간주해야 하는 지를 아는 것이다.

외상성 장애자는 히스테리 환자와 대치되어 양자가 상대를 위해 서로에게 이용된다. 여기에 1) 아직 병원에 들어가지 않았고, 의학적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자들, 따라서 최면이나 의학적 권력의 지배하래 있지 않은 자들, 자극을 받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현상을 보여주는 자들과 2) 병원체계의 내부에서 의학적 권력의 지배 아래 있으면서 최면이라는 수단을 통해 인위적인 병을 부과받은 히스테리 환자들이 있다. 히스테리 환자와 외상성 장애를 대조하여 외상성 장애자의 위장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외상성 장애자는 히스테리 환자와 동일한 징후를 보이는지의 여부로 병의 진실성이 가려진다. 히스테리 환자는 최면을 통해 얻어지는 징후가 외상성 장애자에게 발견되면 그 징후는 자연스러운 징후가 된다. 외상성 장애자에 의해 히스테리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고 히스테리에 의해 외상성 장애자의 위장이 드러난다.

이를 활용해 사르코는 무대 상연(표지의 그림)을 통해 히스테리 여성 환자와 외상성 장애자를 함께 보여준다. 샤르코는 여성 환자에게 최면을 걸고 몇몇 명령을 내림으로써 일종의 기능적 마리오네트로 만들고 철도청 직원(외상성 장애자)이 가진 외상성 고관절통증을 재현시켰다. 그 결과 철도청 직원은 히스테리를 앓고 있다고 간주되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사람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갔다. 우선 보험회사와 지불의무가 있던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었고, 병자 역시 자신의 병을 인정받았다. 의사도 위장을 하는 자에게 대한 감별진단을 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19세기 전반 의사들이 위장하는 자에 대해 가지고 있던 거대한 강박관념을 진정시킬 수 있게 되었고 위장에 대해 우위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히스테리 환자의 이익이 있다. 위장의 혐의를 피함과 동시에 역동적인 병과 위장을 구별하는 이중의 감별진단이 히스테리 환자 덕분에 가능해지고 결국 히스테리 환자는 다시 한번 의사보다 우위에 서게 된다. 왜냐하면 히스테리 환자는 소위 병과 거짓을 구별하기 위한 검증의 심급, 진실의 심급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술책 – 외상을 중심으로 한 재배치

히스테리 환자가 명령에 따르면서, 너그럽고, 과잉적으로 순종적임과 동시에 권력을 욕망하면서 장애를 재현한다면 이는 날조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의사는 히스테리 환자의 행동양식에 의존하지 않고 권력을 확보하고 관리통제하기 위해 최면상태에서 병리적 유형의 현상들이 재현된다는 사실을 병리학적 도식 내부에 편입시킴과 동시에 기능장애 역시 병리학적 틀 내부에 위치시킬 수 있어야 한다. 즉 최면과 최면의 내부에서 생겨나는 히스테리의 징후 및 최면에 걸리지 않은 병자에게 기능장애를 일으키게 하는 사건도 포괄하는 병리학적 틀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샤르코는 외상에 대한 생각을 고안하였다. 샤르코에게 외상은 사건, 재난, 전락(轉落), 공포, 정경 같은 것으로 국소적이지만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일종의 최면상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외상의 결과로 일종의 관념이 대뇌피질에 각인되어 항상적 명령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면 마차에 치인 아이는 바퀴가 자신의 몸을 짓밟았다고 믿기 때문에 마비상태에 빠졌다. 여기서 외상의 개념과 망상의 개념의 관계가 드러난다. 마비의 이유가 바퀴에 짓밟혔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은 광기가 언제나 망상을 포함한다는 사고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최면술은 순식간에 완전한 충격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외상이다. 따라서 일반화된 일시적 외상같은 것으로 의사의 의지나 말이 주체에게 관념이나 이미지를 주입시킬 수 있게 된다. 요컨대 최면에 의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외상에도 동일한 기능과 명령 효과를 발휘하는 관념이나 이미지를 주입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최면 내부에서 생겨나는 히스테리 현상과 사건 이후 발생하는 히스테리 현상 사이에서 외상이라는 근본적인 개념으로 나아가는 수렴 현상이 발견된다. 외상은 최면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최면은 의사의 의지에 의한 외상의 일반적 재활성화 같은 것이다.

따라서 히스테리 환자가 확실히 히스테리를 앓고 있고 모든 징후가 확실하게 병리적이라는 것을 확신하려면 병인을 발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병리적인 병변같은 것으로서의 외상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환자가 유년기나 그의 삶을 말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고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사건을 발견해 낼 필요성이 생긴다. 즉 히스테리 증후군에 의해 끊임없이 현동화되는 사건을 발견해낼 필요성이 생기는 것이다.

 

 

히스테리 환자의 대항적 술책 - 성현상

여기에서 히스테리 환자에 의한 대항적 술책이 발견된다. 징후 속에 존속하는 외상을 발견해내라는 명령을 내릴 때 환자들은 그 지시를 통해 열린 틈 속으로 자신들의 실제적 삶, 일상생활 즉 자신들의 성생활을 몰아 넣게 된다. 히스테리 환자들이 성생활을 이야기하고 병원과 성생활을 연결시켜 끊임없이 再현동화하는 것이다. 이는 샤르코의 텍스트에서는 보이지 않고 학생들의 관찰기록에 나온다.

유사간질 발작에 대한 기록에 나오는 히스테리 환자의 삶은 1) 눈깔 사탕을 얻기 위해 키스를 받아들임, 2) 부부싸움을 목격한 여성에게 남편이 키스와 강간을 시도하여 큰 공포를 불러일으킴, 3) 남동생이 순진한 자신에게 아이가 생기는 과정에 대해 설명, 4) 어머니가 어머니의 애인과 키스를 허용하며 아빠라고 부르도록 지시, 5) 어머니의 애인이 자신과 성관계를 시도와 같은 것들이었다. 샤르코가 간질 발작과 구별하기 어렵다고 말했던 발작 속에서도 역시 성폭행과 관련된 발언이 이어졌다. 다른 여성에게서도 ‘열정적 태도’의 ‘조형적’ 국면이라고 불리는 시기에서 성행위를 묘사하는 음란한 자세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히스테리 환자는 여기서 세 번째로 정신과 의사에 대한 지배력을 손에 넣게 된다(첫 번째는 증후를 제공하면서, 두 번째는 외상성 장애자를 통한 진실의 심급이 되면서). 샤르코는 ‘유사간질’내지 ‘히스테리 발작’이라는 용어로 환자의 발언이나 정경, 자세를 코드화하면서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신경증은 위장과 성적인 음란함 때문에 가치를 박탈당하고 있었다. 따라서 히스테리가 병이라는 지위에 이의제기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위장과 함께 성적인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샤르코에게 제공한 발작의 징후학적 표면이나 일반적인 시나리오는 샤르코가 만들어 놓은 규칙에 따랐다. 그러나 동시에 환자들은 시나리오를 구실로 개인적 삶 전체, 성현상 전체, 추억 전체를 마구 끌어내고 있었다. 샤르코는 성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말하지 않거나 정반대로 말을 하였다. 실제로 샤르코는 프로이트에게 히스테리에서 성현상이 문제라고 언급하였고, 프로이트 역시 성현상을 분명히 목격하였고 이것이 문제가 되었을 때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몇 년이 지나서 히스테리에서 성현상을 분명한 방식으로 발견하였다. 어쨌든 성현상을 놓고 샤르코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보지 않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샤르코와 관련된 또 다른 학생의 기록에서 샤르코는 히스테리성 연축을 앓는 환자를 통해 최면을 활용해 발작을 발생시키고 억제하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설명하였다. 이 과정에서 환자에게서 성현상이 발생하자 샤르코는 환자를 퇴장시킨다. 이러한 성적인 소동은 히스테리 증후군의 해독되지 않는 잔여가 아니라 환자의 대항적 술책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의사는 환자의 징후에 병리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의사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징후의 원인이 되는 외상을 찾아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의사는 환자의 삶 전체를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의사는 환자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을 듣지 않을 수 없고 환자가 자신의 삶을 몸짓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발적의 내용으로 부단히 再현동화하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성현상은 히스테리 환자의 승리의 외침이며, 신경과 의사를 최종적으로 제압하고 신경과 의사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한 최후의 술책이다. 의사는 히스테리 환자가 말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보고 듣지 않으면 안된다.

신경병리학의 임상적 장치를 중심으로 한 신경과 의사와 히스테리 환자의 싸움 끝에 포획된 것처럼 보이는 신경학적 신체, 신경과 의사가 진실 속에서 포획했기를 기대했고 포획했다고 믿었던 신경학적 신체 아래에서 성적 신체라는 새로운 신체가 출현합니다. 이러한 성적 신체와 대면하게 되면 두 가지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나는 조제프 프랑수아 펠릭스 바뱅스키와 같이 성적 함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히스테리는 병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의학을 통해 성적 신체를 포위공격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포위공격은 의학, 정신의학, 정신분석학이 성현상을 떠맡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히스테리 환자는 정신요양원의 문을 열어 광인이기를 중단하고 병자가 되어 마침내 진짜 의사인 신경과 의사에게 가서 진정한 기능상의 징후를 제공함으로써 최대의 쾌락을 얻어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의학에 성현상을 다룰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함으로써 우리에게 최대의 불행을 안겨주게 되었다.